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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반스앤노블, 오프라인 서점의 재기 전략은…세렌디피티

중앙일보

입력

중국 베이징의 한 서점. 아마존에 이어 팬데믹은 오프라인 서점의 또 다른 도전을 안겼다. [중앙포토]

중국 베이징의 한 서점. 아마존에 이어 팬데믹은 오프라인 서점의 또 다른 도전을 안겼다. [중앙포토]

아마존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상거래 시대에 오프라인 서점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미국 대형 서점 체인 반스앤드노블의 답은 ‘예스’다.

반스앤드노블 최고경영자(CEO)인 제임스 던트(57)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온라인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경험을 극대화하면 된다”며 ‘세렌디피티(serendipityㆍ우연)’을 키워드로 제시했다. 특정한 책의 구입을 목적으로 방문하는 온라인 서점과 달리, 오프라인 서점에선 몰랐던 책이나 작가를 우연히 발견하는 기쁨의 경험이 성공의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일부 서점 애호가들만의 생각이 아니다. 수익이 최대 목적인 행동주의 미국 펀드 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도 반스앤드노블에서 희망을 읽었다. 던트는 지난해 8월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반스앤드노블을 사들인 뒤 CEO에 취임했다.

아마존 등장으로 미국 반스앤노블 매출액 반토막.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아마존 등장으로 미국 반스앤노블 매출액 반토막.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던트가 취임 후 꾀한 가장 큰 변화는 미국 전역의 서점을 각 지역의 특색에 맞게 ‘맞춤형’으로 운영한 것이다. 그 전까지 미국 반스앤드노블은 뉴욕시 주재 바이어들이 정한 목록에 따라 도서 매입 여부를 관리했다. 미국 전역에 600개가 넘는 지점이 있는 상황에서 효율을 추구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지역색이 무시되면서 매출 감소에도 영향을 준 것이다. 아이다호 반스앤드노블 지점의 존 래드포드는 “뉴욕의 지시에 따라 존 그리샴과 같은 작가를 수십권 구비해야 했는데 지역 독자들은 도통 흥미를 보이지 않아 모두 재고가 됐다”며 “하지만 지금은 내가 스스로 지역 특색에 맞게 도서를 구비해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제프 베조스가 아마존을 창립한 건 1994년. 이후 도서를 시작으로 아마존이 전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동안 오프라인 서점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반스앤드노블이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매출은 2010년대에 들어 뚝 떨어졌다. 2012년 71억3000만 달러(약 7조 7600억원)를 찍었던 매출은 2016년 41억6000만 달러로 감소했고, 이후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반스앤노블 피츠버그 지점. AP=연합뉴스

반스앤노블 피츠버그 지점. AP=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미국 내 확산이 본격화한 지난봄엔 봉쇄령으로 휴점이라는 치명타도 입었다. 던트 CEO에게 위기는 기회였다. 휴점 동안 대대적 리모델링에 나선 것이다. WSJ은 “서점마다 지역 독자들 특색에 맞게 싹 바꿨다”며 “일례로 영국에서 반스앤드노블이 운영하는 워터스톤스 서점은 기존의 크고 사각형의 서가에서 탈피해 작고 둥근 책장을 들여왔다”고 전했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도 단행했다. 반스앤드노블의 상징과도 같았던 뉴욕 맨해튼 중심부 지점을 폐점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지점은 예술 관련 서적을 방대하게 갖춘 것으로 유명했지만 CEO 입장에선 골칫거리였다고 WSJ은 전했다. 던트 CEO는 “솔직히 우리 입장에선 큰 문제였던 지점들을 여럿 닫아야 했다”고 말했다.

물론 문제는 여전히 산적해 있다. 유명 출판사인 사이먼 앤 슈스터가 곧 펭귄 랜덤하우스에 매각된다는 소식 역시 반스앤드노블에겐 골치다. 독일 베텔스만이 소유한 펭귄 랜덤하우스가 사이먼 앤 슈스터를 매입하면 미국 내 유통되는 종이책의 3분의 1을 좌지우지하게 되고, 이들이 가격 인상을 결정하면 반스앤드노블의 수익은 악화할 수밖에 없다.

반스앤노블 CEO 제임스 던즈. [WSJ 캡처]

반스앤노블 CEO 제임스 던즈. [WSJ 캡처]

그럼에도 던트 CEO는 오프라인 서점의 힘을 믿는다고 WSJ에 강조했다. 영국인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난 던트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뒤 뉴욕에서 투자은행(IB) JP모건에서 근무했다. 그러다 “금융은 당신과 안 어울려”라는 당시 여자친구의 조언을 듣고 업종을 바꿨다. 둘은 결혼해서 두 딸을 두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오프라인 서점에도 볕 들 날이 올 거라고 던트는 강조했다. 그는 WSJ에 “책 애호가들은 서점에 사람이 별로 없고 자신만을 위한 책이 있다는 믿음으로 오프라인 서점에 온다”며 “팬데믹이 마무리되면 잘 풀릴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WSJ은 던트 CEO가 최근 업계 관계자들에게 “사실 서점이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라며 “그런 이유는 없다”는 내용의 강연을 했다고 전했다. 이어 “아마존의 시대에 서점이 자신의 존재를 합리화하기 위해선 발견의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디지털의 편리함에 지지 않는 아날로그만의 즐거움으로 차별화해야 한다는 전략이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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