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후예 아발족, 유럽에 대제국 세워 금속 기술 전파

중앙선데이

입력 2020.12.12 00:20

지면보기

715호 24면

유럽으로 간 고조선 문명 〈3〉

6세기 유럽에 제국을 건설한 아발족(Avars) 기병대 모습. 말머리의 새털 장식은 고조선식이다. [사진 노르만 핀켈쉬타인]

6세기 유럽에 제국을 건설한 아발족(Avars) 기병대 모습. 말머리의 새털 장식은 고조선식이다. [사진 노르만 핀켈쉬타인]

유럽 중세에 훈족이 사라진 약 1세기 후, 한 동양 민족이 기마 부대를 이끌고 유럽의 중부·동부에 들어와 대제국을 건설했다. 비잔틴 동로마 제국과 프랑코 왕국에 맞서는 거대한 규모였다. 이들은 높은 수준의 새로운 문명과 기술을 유럽에 전파하고 가르쳐 주면서 무려 230년 동안이나 통치하다가 갑자기 역사에서 사라졌다. 아발족(Avars)이 세운 ‘아발 대제국’이다. 유럽 학자들은 아발족이 멀리 동방에서 기원하여 훈족(Huns)이 온 길을 따라 왔다고만 이야기할 뿐, 그들이 실제 누구인지에 대해선 지금도 논쟁이 무성하다.

동로마 제국 위협한 기마 민족
압록강 위 지역 ‘우구려’서 기원
429년 유연족, 서방 대이동 결행
230년간 중·동부 유럽서 번영

대장장이 출신, 철제 무기 제조
식품·전술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

아발족이 바로 고조선 문명의 후국 ‘구려(句麗)’의 후예였다. ‘구려’는 압록강 상·중류 양안에 위치했다. 중국에서는 ‘구루’(溝樓)라고도 표기했고, 조선에서는 ‘졸본 부여’라고도 불렀다. 압록강 위 지역을 ‘우구려’라고도 했다. 뒤에 북부여에서 ‘주몽’ 세력이 내려와 고구려를 건국한 오녀산성이 있는 곳인데, 지금의 환인현 일대다. ‘아발족’과 ‘위구루족’은 ‘우구려’(우구루)에서 기원하였다. 이것은 유라시아 역사를 밝히는데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일찍이 고조선은 중원지방에 진출하면서 압록강 중·상류 지역 구려·부여 출신 기마 부대를 다수 서변 국경에 배치했었다. 『삼국지』 ‘위서 연연(蠕蠕)전’에 의하면, 북위군이 동이족 기병 한 명을 생포했는데 기억상실증이라며 이름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그를 노예로 삼은 주인이 그의 출신 지역 이름으로 ‘우구려(郁久閭, 郁의 종성은 묵음)’라고 불렀다. 그의 재주를 높이 본 주인이 신분을 해방시켜 기병대 졸병을 삼았더니, 자기 부족 100여명을 인솔하고 멀리 산융(흉노)이 통치하고 있는 몽골 고원으로 도망가서 세력을 길러 부족장이 되었다.

유연, 중국 북방 지배자로 부상

‘우구려’가 출신지 별칭이라는 필자의 판단은 뒤에 그의 후손이 제위에 오를 때의 호칭에서 다시 확인된다. 우구려 사망 후 그의 아들 거록회(車鹿會)가 부족의 세력을 크게 키우면서 부족 호칭을 ‘유’(柔, 兪)라고 했다. 이를 고중국에서는 유연(柔然), 연연(蠕蠕), 예예(芮芮) 등으로 불렀다.

아발족의 화려한 금세공 유물(6~8세기). [사진 위키피디아]

아발족의 화려한 금세공 유물(6~8세기). [사진 위키피디아]

거록회의 후손 사륜(社崙)은 독립국가를 세우고 스스로 ‘구두벌가한(丘豆伐可汗, Kuteleburi Khaghan)’이 되었다. ‘가한은 ·칸’(왕, 황제)을 뜻한다. 유연은 여러 차례 북위를 공격해 대승을 거두고 중국 북방의 지배자가 되었다. 사륜이 죽고 아들 사이에 권력승계 투쟁이 일어나자, AD 410년 사륜의 사촌 동생 ‘대단’(大檀, 구려 발음 ‘아발’)이 신망을 모아 권력을 장악하고 ‘흘승개가한(紇升蓋可汗)’ 호칭의 칸에 올랐다. 위의 칸 호칭에서 ‘구두벌’은 지명인데 아직 찾지 못했고, ‘흘승개’는 ‘구려’의 압록강 상류 북쪽 환인천(桓因川)이다. ‘흘승골’은 환인(桓因)이다. 이것은 그들의 기원이 ’우구려‘임을 명확히 재확인시켜준다.

흘승개가한은 막강한 기병대로 북위를 공격해 유연을 북위보다 우위의 국가로 만들었다. 428년 8월 대단(아발)은 아들에게 기병 1만 명을 주어 만리장성 넘어 북위를 공격했다. 이듬해(429년) 4월 북위의 세조는 대군을 동원하고 신속한 고차정령(高車丁零) 기병대와 연합해 흘승개가한의 유연족을 공격했다. 이때 북위군이 유연족 대인(大人)들을 수백 명 살해하면서 침입해 들어가자, “아발은 위험을 깨달아 천막을 태워 종적을 감춘 뒤 일족을 이끌고 서쪽으로 도주(西走)하여 행방을 알 수 없이 되었다”고 『삼국지』 ‘연연전’은 기록했다.

필자는 이 구절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연족 황제 대단(大檀, 아발, 흘승개가한)은 429년 여름에 북위군과 고차정령 기병대의 총공격을 받자 전투를 피해 자기를 따르는 유연족을 이끌고 서방으로 대이동을 단행했다. 그들은 중앙아시아 카프카스 지역에 도착해 새 정착지로 삼았다. 이때부터 유연족 발음대로 칸의 이름을 취하여 아발족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카프카스의 아발족이 553년 유럽의 동로마 변경으로 다시 이동을 감행했다. 그러므로 아발족·유연족·우구르족은 동일한 민족의 다른 갈래 명칭인 것이다. 이 사실은 세계사 이해에 주목해야 할 매우 중요한 점이다.

아발족이 동로마 제국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 1세 때 정치적 망명족처럼 찾아온 것은 558년이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변경 부족들의 공격을 진압하는데  아발족 기병 부대를 고용했다. 아발족은 임무를 잘 수행했으며, 동로마 황제는 그때마다 보상 지불 약속을 잘 이행했다. 아발족 칸 바얀(Bayan) 1세는 다뉴브강 남쪽 연안에 정착을 요청했으나 동로마 황제는 이를 거절했다. 바얀은 북쪽으로 향했으나 프랑크 왕국이 그들을 저지했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 사망 후 즉위한 유스티니아누스 2세는 아발족과의 약속을 파기했다. 아발족은 독립을 결의하고 판노니아 평원으로 가서 567년 그곳에 살고 있던 게르만계 게피드(Gepid)족을 몰아냈다. 100년 전 훈족이 그랬던 것처럼 판노니아(지금의 헝가리)에 정착해 ‘아발 제국’을 수립하고 영토를 크게 확장했고 수공업·목축업·농업을 발전시켰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아발 제국은 약 230년간 번영을 지속하다가, 796년 서쪽 프랑크 왕국 샤르마뉴(Charlemagne) 대왕과 동쪽 불가르 제국의 공격을 동시에 받고, 프랑크 왕국에 항복하며 속령이 되었다. 샤르마뉴 아들 페핀(Pepin)의 수탈과 이교도(단군 신앙) 탄압이 극심하여 아발족은 799년 반란을 일으켰으나 결국 패하고 말았다. 반란을 일으킨 아발족 수장은 항복 후 805년 샤르마뉴로부터 테오도르라는 새 이름을 받고 기독교로 개종했다. 프랑크 왕국 정복자들은 개종을 거부한 아발족 이교도들을 모두 학살했으며, 아발족 궁궐에서 금은 보배를 15대의 마차에 실어갔다고 기록돼 있다. 슬라브 속담에 “아발족 같이 갑자기 모두 사라졌다”는 말이 있는데, 항복하지 않은 아발족이 일시에 동서남북으로 급속히 사라진 일을 가리킨다.

아발 제국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것이 많지 않으나, 230년 동안 중부 및 동부 유럽을 통치하며 끼친 영향은 매우 컸다. 아발 제국이 유럽에 남긴 금속 기술의 영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발은 동아시아에 있었을 때부터 ’대장장이‘였다. 그들은 우수한 철제 무기를 제조하여 소수 기병 부대로도 유럽에 대제국을 수립할 수 있었다. 그들이 왕권을 장악했을 때 우수한 철제 무기뿐 아니라, 매우 뛰어난 금·은 귀금속 세공 기술을 발전시켰다. 아발족 무덤에서 출토된 1000여 점 귀금속 보물들의 공예 수준은 오늘날의 눈으로도 감탄을 금할 수 없는 우수한 것이었다.

아발족 귀금속들 눈부신 세공 기술 자랑

아발 제국은 또 슬라브 민족에게 제국의 농업을 맡기어 분산 거주케 했다. 그들이 오늘날과 같이 분포하며 발전하는 역사적 기초를 만들어 주었다. 아발족은 중세 유럽에 우수한 수공업기술과 함께 목축과 유제(乳製) 식품, 기마 문화, 기병대 전술, 철제 마구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유럽에 인도·유러피안 어족의 말로는 전혀 풀리지 않는 다수의 전통 지명들이 있는데 대부분 아발족이 남긴 지명들이다. 이 지명들은 고대 한국어로는 상당수가 풀리게 된다. 

유연(柔然)족
고조선 후국의 하나. 압록강 상·중류 양안에 있던 ‘구려’(句麗, 졸본 부여)의 북쪽에서 기원했다. 스스로 ‘유’(柔, 兪)라고 호칭했다. ‘현명하고 친절한 지식 있는 사람’의 뜻이다. 고대 중국 사가들은 이웃 민족에 나쁜 글자를 붙여 비칭 하는 악습이 있어서, ‘유연’(柔然, 현명하고 지식 있는 체 하는 사람들), ‘연연’(蠕蠕, 벌레 같은 사람들), ‘예예’(芮芮, 풀 같은 사람들) 등으로 폄하해 기록해 놓았다. ‘아발’‘위구르’(Ughurs), ‘檀檀’(달달, Tartars, Tatars) 등은 ‘유연’에서 나온 갈래들이다.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서울대 교수(1965~2003) 정년퇴임. 한양대·이화여대·울산대 석좌교수(2003~2018) 역임. 저서 『독립협회 연구』 『한국독립운동사 연구』 『3·1운동과 독립운동의 사회사』 『한국 민족의 기원과 형성』 『고조선 문명의 사회사』 등 다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