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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영암 F1 경기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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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동현
이동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동현 산업1팀 차장

이동현 산업1팀 차장

자동차 콘텐트 촬영을 위해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을 다녀왔다. 모터스포츠에 관심이 없다면 이름조차 생소할 이곳은 2010~2013년 포뮬러 원(F1) 그랑프리 자동차 경주가 열렸던 곳이다. 정식 명칭보단  더 익숙하게 들린다.

이곳은 국내 유일의 FIA(국제자동차연맹) 1등급 서킷(자동차 경주장)이다. 모든 모터스포츠 경기를 국제 규정에 따라 치를 수 있다. 자동차 기자를 하면서 유명한 서킷을 많이 다녀봤다. 이탈리아의 몬차 서킷, 일본의 후지 스피드웨이, 지난해엔 스페인 리카르도 토르모 서킷도 방문했다.

2006년 F1 대회 유치 당시도 자동차 기자였던지라 기억이 생생하다. 대회 관계자들은 특급호텔에 귀빈들을 초청해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 성공적인 개최를 확신한다며 말 그대로 비싼 샴페인을 터뜨리기도 했다.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전남 영암에서 대회가 가능할지, 모터스포츠 저변이 부족한 한국에서 흥행이 될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많았다.

주최 측은 ‘5조원 넘는 생산유발 효과’ ‘국가 브랜드 가치 상승이 올림픽의 2배’ 같은 장밋빛 전망만 내놨다.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는 모두 알고 있다. 대회는 4년 만에 중단됐고 4300억원의 혈세를 쏟아붓고도 1000억원 넘는 빚이 남았다.

고층 빌딩과 호텔이 들어설 거라던 주변은 황량하기만 했다. 크고 작은 모터스포츠 대회가 열린다지만 14년 전 청사진에서 봤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시설과 규모는 훌륭했으나 많이 낡았고 관리도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준비한 차로 서킷을 몇 바퀴 돌았는데 오가는 이가 없어 을씨년스러웠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정부의 모빌리티 로드맵에 참여하는 전문가의 말이 떠올랐다. “드론 택시든 수소경제든, 자율주행차든 장밋빛 전망 일색입니다. 정작 우리보다 앞서있는 선진국들은 가능성을 보수적으로 보는데 말이죠.”

F1 경기장은 수천억원이 들지만 미래차 투자엔 수십조원이 든다. 미래차 투자가 ‘영암 서킷’처럼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모두 성공을 꿈꾸지만 문은 바늘구멍처럼 좁다. 장밋빛 전망만 늘어놓을 일이 아니라, 진짜 냉정한 계산이 필요하다. 실패 사례는 영암 하나로 족하다.

이동현 산업1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