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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 불법 화장장, 사체 모아서 소각 유골 바꿔치기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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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5호 08면

반려인 울리는 장례업체 

반려동물 장례 메인

반려동물 장례 메인

B씨는 5년 전 반려견 하쿠를 갑작스레 떠나보냈다. 당시만 해도 반려동물의 장례를 치를 수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동물병원에 맡기면 의료폐기물로 처리돼 다른 쓰레기들과 같이 소각된다고 했다. B씨는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한적한 공원 구석에 하쿠를 묻어주고 생각날 때마다 찾아가곤 했다. 그러나 1년 전 그곳을 찾았을 때 B씨는 가슴이 내려앉았다. 하쿠를 묻은 자리에 표지판 공사를 하느라 시멘트가 메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B씨는 “시간이 흘러 사체의 흔적은 이미 사라진 뒤였겠지만 그래도 눈물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등록된 펫 장묘업체 전국에 53곳 #무허가 화장장 난립, 소비자 현혹 #“돈 더 내라” 바가지 씌우기 일쑤 #“국공립 동물 장묘시설 만들어야”

현행법상 반려동물의 사체를 개인의 소유지가 아닌 곳에 묻는 것은 불법이다. 법령에 따르면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담아 생활폐기물로 배출하거나, 동물병원 또는 허가받은 동물 장묘업체에 위탁해야 한다. 반려동물을 폐기물로 처리하는 것에 반감을 갖는 보호자들은 장례업체를 찾게 된다. 최근 몇 년 사이 수요가 늘면서 동물 장묘업체도 증가했다. 11일 현재 농림축산검역본부의 동물보호관리시스템(www.animal.go.kr)에 등록된 동물 장묘업체는 전국에 총 53곳이다. 화장시설 없이 장례·봉안 허가만 받은 3곳(광주·대구·인천)을 제외하면, 절반 정도인 21곳이 경기도에 있고 나머지는 경상(13)·충청(9)·강원·전라(2)·부산·세종·울산(1) 등에 있다.

종량제 봉투에 담아 배출하기도

반려동물이 죽으면 장례식을 치르며 추모와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보호자들이 늘고 있다. 이에 따라 동물 장례업체도 증가하는 추세다. [사진 펫포레스트]

반려동물이 죽으면 장례식을 치르며 추모와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보호자들이 늘고 있다. 이에 따라 동물 장례업체도 증가하는 추세다. [사진 펫포레스트]

한 동물 장묘업체 관계자는 “수도권은 이제 포화상태”라고 했다. 업체끼리 경쟁하다 보니 동물병원에 리베이트(뇌물·사례금)를 주면서 영업하거나, 전국에 지점을 보유한 것처럼 홍보하며 중간에서 소비자 알선 수수료만 챙기는 중개업소가 나타나기도 했다. 반대로 서울·제주처럼 업체가 전혀 없거나 숫자가 적은 지역을 중심으로 ‘방문형 장례 서비스’ ‘이동 장례식장’이라고 광고하는 불법 업체도 생겨났다. 차량을 개조한 이동식 화장장은 법정 기준을 준수하지 않은 무허가 시설이다. 이들은 “허가는 받았는데 아직 업데이트가 안 됐다”거나 “합법 업체와 똑같은 시설”이라는 말로 소비자를 현혹하기도 한다.

불법으로 운영하다 적발이 되면 벌금을 내고 다시 버젓이 영업하거나 단속을 피해 밤 시간에만 화장을 하는 곳도 있다. 조용환 한국동물장례협회장은 “법적 기준을 충족하는 화장 시설을 갖추려면 상당한 자본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적은 돈으로 수익을 내려는 업체들이 불법 영업을 하고 있다”면서 “열악한 시설과 서비스로 영업하는 일부 불법 업체들 때문에 합법적으로 운영하는 업체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동물 장묘업 불법 운영에 대한 처벌을 현행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반려동물 보호자들은 장례업체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 피해를 당하기 쉽다. 보호자가 참관하지 않을 경우 동물 사체를 냉장고에 쌓아뒀다가 다른 건이 들어왔을 때 한꺼번에 소각하거나, 화장 후 유골을 전달할 때 일부 뼛조각을 버리거나 다른 동물의 유골을 섞어 양을 맞추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메모리얼스톤’이라고 불리는 추모 보석 피해 사례도 나타났다. 유골을 고온에서 녹이고 압축해 보석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모양이 예쁘지 않은 건 임의로 버리고 다른 동물로 만든 보석을 섞어서 주는 경우다.

반려동물 한 해 57만 마리 사망 추정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슬픔에 빠진 보호자의 처지를 이용해 과도한 비용을 청구하는 사례도 있다. C씨는 반려묘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찾은 업체에서 불쾌한 경험을 했다. 홈페이지에는 픽업 서비스(시신을 화장장까지 옮겨주는 것)가 무료라고 광고했지만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비용을 요구했다. 그뿐만 아니라 업체 직원은 C씨에게 다짜고짜 “수의와 관을 어떤 종류로 할 건지” 물었다. 종류에 따라 수십만 원의 추가 금액을 내야 한다고 했다. C씨는 직원의 강압적인 분위기와 반려묘에 대한 죄책감이 더해져 어쩔 수 없이 50만원의 추가 비용을 지불했다. C씨는 “그땐 경황이 없었고 우느라 지쳐 싸울 힘도 없었지만 지금 와서 떠올리면 화가 난다”면서 “반려인 입장에서는 자식처럼 키운 아이의 마지막 길을 두고 가격을 흥정한다는 것 자체가 내키지 않는 일인데, 그런 마음을 이용해 돈벌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반려동물 문화에서 죽음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반려인 중에는 자신의 반려동물의 마지막 순간을 미리 생각해 준비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반려동물 사망 개체 수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다만 반려견·반려묘의 수명을 평균 15년으로 가정해 산술적으로 나눠보면 연간 약 57만 마리가 사망하는 셈이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반려견 수는 약 598만 마리, 반려묘는 258만여 마리로 추정된다. 강성일 펫포레스트 반려동물장례지도사는 사망한 반려동물 중 장례식장을 이용하는 비율은 약 12%, 평균 사망 나이는 12.5살로 추산했다. 강 지도사는 “반려동물 장례문화가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한 단계지만 앞으로는 점차 보편화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장기적으로는 국·공립 동물 장묘시설이 필요하다”고 했다.

‘펫로스 증후군’ 탓 극단적 선택도…심하면 심리치료 받아야

‘언젠가 떠날 줄은 알았지만 이별을 미리 준비하지는 못했다.’ 반려동물의 죽음을 겪은 사람들이 대부분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반려동물의 죽음은 미디어에서도 잘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반려동물을 잃은 보호자의 심리적 고통은 ‘펫로스(pet loss) 증후군’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만큼 정신적 후유증을 남기는 일이다. 정신건강의학에서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불러올 수 있는 요인 중 하나로 본다.

『안녕, 우리들의 반려동물 : 펫로스 이야기』(시대인)의 저자인 강성일 반려동물장례지도사는 “유골을 안치한 봉안당에 두 달 넘게 매일 찾아온 보호자도 있고, 심각한 경우 극단적인 선택에 이른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강 지도사는 “우리나라 정서상 반려동물을 잃은 슬픔은 잘 이해받지 못해 겉으로 표현하지 못할 때가 많다보니 아픔이 치유되지 않아 ‘다시는 동물을 못 키우겠다’는 경우가 흔한 상황”이라며 “보호자들이 반려동물을 잘 떠나보내는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족 중 적어도 한 명은 반려동물의 사후 수습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반려동물이 사망한 후에는 사체를 처리하려고 너무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몸에 상처가 없다면 최대 72시간 동안 부패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함께 애도의 시간을 갖고 일정을 맞춰 장례식장을 예약하는 등 절차를 진행하면 된다.

간혹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이나, 함께 반려동물을 키웠던 가족조차 “유난 떤다”는 반응을 보일 때도 있다. “똑같이 생긴 개 다시 키우면 되지” “빨리 잊어버려”와 같은 말도 상처가 될 수 있다. 강 지도사는 “반려동물과의 추억을 함께 이야기하거나 보호자의 슬픈 감정을 조용히 공감해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는 반려동물의 죽음이나 그로 인한 부모의 우울한 감정이 아이에게 악영향을 줄까봐 걱정하기도 한다. 천근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반려동물이 죽어서 무척 슬프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임을 아이에게 설명하고 애도의 과정을 겪어나가도록 하는 것이 좋다”면서 “죽음을 맞는 과정에 대해 생각해보고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은 교육적·정서적으로 나쁜 일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천 교수는 다만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증상이 심각할 경우에는 반드시 전문의 상담을 통해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은혜 기자 choi.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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