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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때 청계천 준설처럼 ‘계층 사다리’ 복원 인프라 절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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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5호 26면

도시와 건축

도시공간 구조의 변화는 사회 발전을 촉발한다. 나폴레옹 3세는 파리에 지하 하수도 시스템을 구축해서  장티푸스나 콜레라 같은 수인성 전염병에 강한 도시로 만들었다. 그렇게 되면 인구가 늘어나고 이에 따라 상업이 발달한다. 그 결과 신흥부호 계급이 생겨나고 사회가 변화·발전한다. 이러한 진화의 패턴을 보여준 시기가 조선에도 있었다. 영조와 정조시대다.

전염병 막기 위해 청계천 준설 #인구 늘고 상업 발전 밑거름 돼 #고속도·인터넷망처럼 경제 활로 #코로나 시대, 새로운 공간 필요 #과거를 거울 삼아 미래 창조해야

1592년 임진왜란과 1636년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지방의 많은 유민이 한양 도성으로 모여들었다. 1637년 효종 때 인구 8만 명에서 10년 만에 2배가 넘는 19만 명으로 늘어났다.

당시 수도 한양의 상수도 시스템은 우물이었다. 서울 주변은 북한산과 인왕산 같은 거대한 바위산이 둘러싸고 있다. 한양은 화강암 암반에서 만들어 내는 깨끗한 우물이 많았기 때문에 로마처럼 아퀴덕트 같은 상수도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아도 물 공급을 해결할 수 있었다.

전염병에 강한 한양, 조선 르네상스 토대

일러스트=전유리 jeon.yuri1@joins.com

일러스트=전유리 jeon.yuri1@joins.com

문제는 하수도였다. 당시에는 하수도 시설이 없어서 청계천 같은 하천이 하수도 시설로 사용되었다. 한양 인구가 두 배 늘어나자 생활폐수가 많아지면서 하천 오염이 심해졌고, 각종 전염병이 돌았다. 땔감으로 나무를 베어 사용하자 민둥산이 되었다. 비가 올 때마다 산의 토사가 개천으로 유입되었고, 이는 하천의 흐름을 막아서 하천 오염을 증가시켰다. 하천바닥이 높아지자 비가 조금만 와도 범람을 하여 더러운 물이 우물로 들어가 식수를 오염시켜 전염병을 일으켰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조는 1760년 청계천의 준설작업을 시작했다. 청계천 준설작업은 도시가 전염병에 맞설 수 있는 인프라 구조를 만든 시도였다. 덕분에 한양은 다시 하수 시스템을 보완할 수 있었고 19만 명의 인구를 가지고도 전염병이 적은 도시를 만들 수 있었다.

영조 때 한양의 도시공간 인프라를 재정비한 덕분에 19만 명의 인구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자 정조 때에 이르러 상업 수요가 폭증했다. 당시에는 금난전권이라고 해서 한양 내 37개 시전들이 도성 안팎 4㎞ 이내에는 허가 없이 열리는 시장을 금지시키는 법이 있었다. 기득권을 가진 상인들이 독점권을 가지려는 악법이었다.

도시의 인구가 늘어나고 상거래가 활발해지자 정조는 금난전권을 폐지했다. 이로 인해 상업이 발달하자 조선 후기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청계천 준설이라는 도시정비가 고밀하면서도 전염병에 강한 도시공간을 만들었고, 새로운 도시공간은 상업을 발달시켰고, 상업의 발달이 조선 후기의 르네상스의 토대가 된 것이다. 농업 중심의 경제에서 누구나가 상업을 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국가운영방식이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공간을 압축하는 인프라를 구축하면 사회가 발전한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경부고속도로를 만들면서 서울과 부산 간의 시간거리를 4시간으로 줄였고 이를 통해서 1970~80년대 경제성장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후 김대중 대통령 시절 고속 인터넷망 인프라를 구축하여 물리적 이동 없이도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의 압축을 만들었다. 이전에 없던 인터넷 상거래가 생겨났고 각종 IT벤처회사가 창업되었다. 아스팔트 도로가 섬유, 철강, 자동차 산업을 만들어서 경제를 활성화시켰다면 인터넷망은 IT산업을 탄생시켜서 경제를 발전시켰다.

영조는 1760년 청계천을 준설했다. 사진은 현재 복원된 청계천. [중앙포토]

영조는 1760년 청계천을 준설했다. 사진은 현재 복원된 청계천. [중앙포토]

도로와 인터넷통신망은 멀리 떨어진 사람들 사이를 연결해 주는 공간을 압축하는 도구다. 이들은 더 많은 사람이 만나서 관계를 맺고 상거래를 하게 만든다.

학생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나의 꿈은 재벌 2세인데, 우리 아버지가 노력을 안 하신다”라는 농담을 한다. 내가 부자가 되는 길은 부자의 자녀로 태어나는 길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 사회는 자신의 노력으로 부자가 될 가능성이 희박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는 계층 간 이동 사다리가 없는 사회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정치에서는 포퓰리즘이 판을 치고, 베스트셀러 가판대에는 각종 위로하는 서적만 넘쳐난다. 이런 사회는 계층 간의 갈등으로 붕괴되거나 성장 동력을 잃기 쉽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부자가 만들어지고, 계층 간 이동 사다리가 복원될 수 있을까? 새로운 공간을 만들면 된다. 우리는 소셜믹스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단순한 소셜믹스만으로는 부족하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같이 어울려서 사는 소셜믹스는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단순히 소셜믹스로만 그친다면 너는 계속 가난하게 살고 나는 계속 부자로 살면서 우리 이대로 잘 지내자는 것으로 끝날 수 있다.

유력 정치가들이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만들자고 하면서 자기 자식들은 편법으로 부와 교육의 대물림을 해 주는 것에 국민이 공분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진정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만들려면 부의 이동이 많은 사회가 되어야 한다. 나는 가난하지만 내 자식은 부자가 될 수 있는 세상 말이다. 그래야 아이도 낳는 것이다.

부의 이동이 쉽고 계층 간 이동의 사다리를 복원하려면 상업이 발달해야 하고, 그러려면 새로운 공간을 만들면 된다. 새로운 공간을 만들면 새로운 부자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진다.

19세기 유럽사회에서 하층민으로 천대받던 사람들은 북아메리카 신대륙에서 새로운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들은 미국을 만들고 유럽 전통 부호를 능가하는 부를 구축할 수 있었다. 미국 동부에서 기회를 가질 수 없었던 사회 하층민은 서부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해서 실리콘밸리를 만들고 엄청난 부를 구축했다.

우리나라는 70년대에 아파트를 지으면서 과거에는 쓸모없던 허공에 부동산 자산을 만들어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자 중산층이 생겨나고 근대사회가 완성되었다. 90년대 들어서 기성세대와 기존 재벌에 밀려서 오프라인 공간에서 기회를 가질 수 없었던 사람들은 인터넷 인프라 구축으로 온라인 공간이 만들어지자 네이버, 카카오, 다음, 넥슨, 엔씨소프트 같은 기업을 만들 수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자본이 필요하다. 자본은 동산과 부동산으로 나누어진다. 저소득층 사람들은 둘 다 없다. 이때 국가가 새롭게 저렴한 공간을 제공해 주는 것은 저소득층 사람에게 부동산 자산을 주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 공간이라는 자산으로 부를 만들 수 있다. 그렇게 새로운 공간은 계층 간 이동의 사다리가 된다.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하고 사회의 계층 간 이동 사다리를 만들려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오프라인 세상에서 만들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은 사람 간의 만남의 밀도가 높아지면서도 동시에 전염병에 강한 도시공간이다.

새 공간 서부로 간 미 하층민들 부 일궈

우리 시대에 영조의 청계천 준설 같은 사업은 무엇일까? 선형의 공원, 자율주행지하물류터널, 발코니가 있는 아파트, 규모는 작아지고 다양성은 많아진 학교들, 다양한 부도심들이 만들어져야 한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비전 없는 부동산정책들과 세금 정책들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공간, 새로운 도시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코로나로 인해서 전 세계 모든 국가와 사회는 새로운 미래를 만들 출발 선상에 섰다. 100년 전 근대화 때처럼 선진국의 모델만 답습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처음으로 만든 새로운 도시공간 시스템, 우리만의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서 세계를 리드해 나갈 것인가?

우리 국민은 지난 수십 년간 과거사 문제로 싸우면서 빨갱이와 토착왜구로 양분되었다. 역사를 모르는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 하지만 역사만 이야기하는 사람에게도 미래는 없다.

미래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미래는 미래에 대해 구체적인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다. 바라보는 초점을 과거에서 옮겨 미래를 향할 때다.

코로나는 그런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역사를 보면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대가 있다. 지금이 그런 시대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100년 후의 인류의 역사를 결정하는 거룩한 책임을 짊어진 세대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하버드·MIT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30여 개의 국내외 건축가상을 수상했고 『어디서 살 것인가』 『공간이 만든 공간』 등 저술활동도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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