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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불시착’‘니쥬’ 돌풍에 4차 한류 붐, 한국선 잘 몰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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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5호 27면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

JYP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일본인 9인조 걸 그룹 니쥬. [사진 JYP 엔터테인먼트]

JYP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일본인 9인조 걸 그룹 니쥬. [사진 JYP 엔터테인먼트]

지난 10~11월 한국에 있는 동안에 오프라인으로 강연한 적이 있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강연은 주로 온라인으로만 하는데 오랜만에 대면으로 하니까 사람들의 표정이 잘 보여서 역시 소통이 잘되는 느낌이었다. 참석자들의 표정을 보고 알았는데, 최근 일본에서 엄청난 제4차 한류 붐이 일고 있는 것을 아직도 잘 모르는 듯했다. 멍한 표정으로 “왜요”라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인식 격차가 큰 건 코로나19 때문에 인적 교류가 적어져서일까. 지금은 문화만 보면 일본이 한국을 짝사랑하는 것 같다. 게다가 그 사랑이 얼마나 뜨거운지 잘 전달되지 않고 있다.

‘사랑의 …’ 올해 유행어 2위 올라 #K팝풍 일본 아이돌 ‘니쥬’ 인기 #코로나 탓 한·일 교류 뜸하지만 #일본은 ‘K컬처 짝사랑’ 앓이 중 #한국서 잘 활용 못해 안타까워

연예잡지, 박진영 비즈니스 매력 분석

일본 타워 레코드에 걸린 그룹 ‘니쥬’의 홍보물. [사진 나리카와 아야]

일본 타워 레코드에 걸린 그룹 ‘니쥬’의 홍보물. [사진 나리카와 아야]

일본에서는 그해 유행이나 사람들의 관심도를 알 수 있는 지표로 ‘유캔 신어·유행어 대상’이라는 게 있다. 올해는 ‘3밀(密)’이 대상으로 선정됐다. 3밀이라는 것은 후생노동성이 코로나19 방역 목적으로 밀폐·밀집·밀접을 피하자고 국민에게 호소하려고 만든 말이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가 적극적으로 이 말을 쓰면서 퍼졌다.

‘사랑의 불시착’이나 ‘NiziU(니쥬)’도 대상 후보에 들어갔다. 제4차 한류 붐을 상징하는 드라마와 아이돌그룹 이름이다. ‘사랑의 불시착’은 3밀에 이어 2위에 선정됐다. 니쥬는 올해 탄생한 걸그룹인데 일본에서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인기를 얻었다. 프리 데뷔곡 ‘메이크 유 해피(Make you happy)’의 뮤직비디오가 유튜브로 공개된 후 5개월 만에 1억8000만 조회수를 기록했을 정도로 대단했다. 12월 2일 정식으로 데뷔했고 오는 31일 NHK 홍백가합전에 출연하는 것도 확정돼 있다. 홍백가합전은 시청률이 높은 연말 음악프로그램으로 지금까지 K팝 아이돌로는 동방신기, KARA, 소녀시대, TWICE 등이 출연했다.

니쥬는 멤버 9명 모두가 일본사람이지만 K팝풍 아이돌이다. JYP 엔터테인먼트와 소니뮤직의 ‘니지 프로젝트(Nizi Project)’에서 배출됐다. 이 프로젝트는 닛폰TV에서 지난 4~6월에 방송됐고 유튜브로도 공개돼 많은 사람이 시청했다.

나는 2018년 IZ*ONE을 탄생시킨 오디션 프로그램 ‘PRODUCE48’에 빠져 있었다. 이 프로그램에는 일본 아이돌 AKB48 그룹 멤버들과 한국 연습생들이 참가했다. AKB48 그룹 멤버들은 이미 데뷔하고 프로로 활동하는 아이돌이었지만 데뷔 전의 한국 연습생들보다 노래나 춤 실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한국 트레이너들의 훈련을 받으면서 눈에 띄게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고 일본에서 아이돌이 제대로 훈련을 못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본에서 인기 많은 K팝 아이돌 중 걸그룹 TWICE와 IZ*ONE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했고 멤버 중에 일본인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고 나도 할 수 있다는 꿈을 꾸는 일본 젊은이들이 많아진 것 같다. 이제 일본 아이돌보다 K팝 아이돌이 되고 싶은 10대가 많은 듯하다. 니쥬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메이크업이나 헤어스타일, 패션 등 외모가 K팝 아이돌처럼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일본어 가사인데도 한국사람이 일본어로 노래하는 것 같은 발음이나 억양으로 들린다. 영화 ‘박열’에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역으로 출연한 최희서 배우가 한국어 대사를 일본인이 말하는 발음과 억양처럼 한 것 때문에 많은 관객이 일본인 배우로 여겼던 것이 생각났다.

재미있는 건 니지 프로젝트가 젊은 사람들한테만 인기가 많았던 것이 아니라 중년 남성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다는 점이다. 그들의 관심은 아이돌 지망생들보다는 박진영 프로듀서에 대한 것이었다. 그가 지망생들에게 던져 주는 조언이나 평가가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고 용기를 주는 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대를 넘어 마음을 울렸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JY Park’이라고 불리며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일본 음반점에 전시된 박진영 앨범. [사진 JYP 엔터테인먼트]

일본 음반점에 전시된 박진영 앨범. [사진 JYP 엔터테인먼트]

서점이나 음반점으로 가면 니쥬나 박진영이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를 느낄 수가 있다. 특히 니쥬가 정식 데뷔한 12월 초 니쥬 멤버들이 표지에 실린 패션 잡지가 많았다. 정치 등 일반 뉴스를 다루는 주간지 ‘아에라(AERA)’의 표지도 니쥬였다. ‘글로벌 걸그룹’이라고 소개됐다. J팝인지 K팝인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분류하기로 했나 보다. 아에라에 따르면 멤버는 약 1년 동안 한국에서 공동생활을 하면서 데뷔 준비를 해 왔다고 한다. 역시 한국에서 지내야 K팝풍이 되는 걸까?

‘주간 문춘 엔터!(週刊文春エンタ!)’는 6페이지에 걸쳐서 박진영의 매력을 분석했다. 예를 들어 박진영이 지망생에게 조언할 때 먼저 장점을 이야기한 다음에 단점을 이야기하는 방식을 효과적이라고 평가했다. 회사에서는 상사가 부하에게 그 반대 순서로 이야기할 때가 많은데 그러면 마음을 닫아 버리기 때문에 소통이 잘 안 된다는 것이다. 박진영의 방식을 비즈니스 기술로 배우자는 취지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한 장면. [사진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한 장면. [사진 tvN]

한국사람들은 일본에 아직도 음반점이 있다면 놀랄 수도 있겠다. 물론 옛날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꽤 있다. 음반점에도 니쥬뿐만 아니라 박진영의 앨범이 눈에 띄게 진열돼 있었다. 일본에서 첫 앨범이 2020년 10월 7일에 발매됐다고 하니 니지 프로젝트의 영향인 것은 틀림없다. 앨범 표지에 JY Park의 어록 별책이 붙어 있다고 적혀 있다. 내 남편은 원래 한류에 별로 관심이 없는데도 JY Park이 어떤 말을 했는지는 SNS를 통해 화제가 돼서 알고 있었고 감명받았다고 한다. 오히려 니쥬에 대해서는 새로 나온 K팝 아이돌 정도로만 알고 있었고 전원 일본인인 줄 몰랐다고 한다.

일본에 있으면 “니쥬는 한국에서도 인기 많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내가 10~11월에 한국에서 지내면서 느낀 바로는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IZ*ONE이 탄생한 ‘PRODUCE48’처럼 오디션 프로그램이 한국 TV에서 방송되지 않았던 것이 큰 원인인 듯하다. 아무리 JYP엔터테인먼트의 프로젝트라고 해도 전원 일본인이면 방송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양국 간의 인식이 다르다고 느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건 코로나19로 인해 인적 교류가 적어진 것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 최근 나는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 2019년 7월 일본정부의 수출규제에 관한 것이다. 나는 솔직히 강제 징용이나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에 관한 문제보다 한국 측 반응이 더 컸던 것이 의외였다. 그전까지 한·일 관계가 나쁘다고 해도 그렇게 많이 일본을 찾았던 한국사람들이 갑자기 여행을 중단하는 걸 보면서 이해가 잘 안 됐다. 수출 규제 대상이 반도체 관련이었다는 것이 한국사람들의 감정을 크게 건드린 거라고 들었다. 반도체는 한국의 주요 산업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5년 반 산 내가 최근까지 이 사실을 몰랐는데 대부분 일본인이 이해 못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양국 서로 민감한 곳은 건드리면 안 돼

2012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면서 한참 뜨거웠던 제2차 한류 붐이 갑자기 식어 버린 적이 있었다. 그때도 사실 일본사람들은 대부분 독도에 관심이 없었는데 그 타이밍에 이 대통령이 천황에게 사과를 요구한 것이 일본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린 것이다. 서로 민감한 곳을 건드리면 안 되는 부분이 있는데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일본에 대한 감정이 악화된 상태로 코로나가 퍼진 것이 인식 격차의 주원인인 듯하다. 수출 규제 이후 일본 한류 팬들은 아무 변화도 없었지만 한국 아이돌이나 배우들은 일본에서 공연이나 팬미팅을 하는 것을 한국 쪽에 알리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였다. 지금도 그런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본에서 인기 많다는 것을 한국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한국 쪽에 전달이 안 되는 것이다. 일본 내 한류 붐을 한국 쪽이 보다 잘 활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멀리서 답답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나리카와 아야(成川彩) 2008~2017년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주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했다.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한국영화에 빠졌다. 한국에서 영화를 배우면서 프리랜서로 일본(아사히신문 GLOBE+ 등)의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칼럼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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