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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로메오… 한국 중년 남자들은 어떤 화장품을 써야하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남성화장품 '오탑(OHTOP)'의 오성호 대표 인터뷰가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열렸다. 임현동 기자

남성화장품 '오탑(OHTOP)'의 오성호 대표 인터뷰가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열렸다. 임현동 기자

“한국 중년 남자들의 피부는 고무인가요? 왜 아무도 관심을 안 갖죠?”
화장품 브랜드 ‘오탑(OHTOP)’ 오성호(58) 대표의 말이다. 그는 같은 중년 남성으로서 억울하다고도 했다.
“중년 여성용 화장품은 피부타입, 나이 대별로 다양한 제품이 있는데, 중년 남성들을 위한 화장품은 없어요. 그나마 있는 남성 화장품도 2030세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더욱 소외될 밖에요. 한국 중년 남성들이 자신을 꾸미는 데 게으른 것도 문제긴 하죠. 사회에서 누굴 만나더라도 좋은 냄새 나고 피부 깔끔한 사람의 첫인상이 더 좋은데 말이죠.”
오 대표가 말끔하게 잘 정돈된 남성에 유달리 예민한 건 특별한 이력도 한몫 한다. 모델라인 12기 출신인 그는 1985~86년에 잘 나가는 모델이었다. 한국 패션 광고 사진계의 전설같은 김용호, 정용선, 조남룡, 조세현 사진가들과 함께 어울리며 하루에 5~6개의 쇼와 광고를 소화했다.
“나를 찾는 횟수가 점점 줄어드는 게 불안해서 2년 만에 모델 일을 그만뒀어요. 그리고 패션 수입 회사 홍보팀에 입사했죠. 당시 ‘게스’ 진이 한창 인기를 끌고 있을 때인데 제 역할은 ‘마리떼 프랑소와저버’로 게스를 무너뜨리는 거였어요. 하하.”
해외촬영이 드물던 시절, 모델 이종휘를 데리고 태국에서 찍어온 잡지화보가 대박이 났다. 화보 속 데님 버뮤다팬츠(무릎길이 반바지)가 3번이나 완판 됐다. 마리떼 프랑소와저버가 한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릴 때 그는 돌연 파리유학을 결심했다.
“미국에서 홍보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신입사원을 보고 ‘이렇게는 안 되겠다. 나도 공부를 하자’ 생각한 거예요.”
89년 프랑스 남부 도시 빼삐냥에서 어학 공부를 시작했다. 한국인은커녕 아시아인도 찾기 드문 곳에서 8개월을 보냈다.
“미역국 정말 많이 끓였어요. 저녁마다 기숙사로 프랑스 친구들을 초대했는데 요리는 할 줄 모르니 물·미역·소고기만 넣고 끓이면 되는 미역국을 대접한 거죠. 다행히 그들은 신기해하며 좋아했어요. 하하.”

남성화장품 '오탑(OHTOP)'의 오성호 대표 인터뷰가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열렸다. 임현동 기자

남성화장품 '오탑(OHTOP)'의 오성호 대표 인터뷰가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열렸다. 임현동 기자

파리에서 홍보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관련 업체들에서 일했다. 그리고 98년 패션 쇼룸 ‘로메오’를 열었다. 쇼룸이란 전 세계 디자이너와 바이어를 연결시켜주는 일종의 패션 복덕방이다. 자기 옷을 팔고 싶은 디자이너들이 쇼룸에 옷을 맡기면, 새로운 감각의 디자이너를 찾는 바이어들이 쇼룸에 들러 구매를 결정한다. 덴마크 디자이너 헨릭 빕스코브, 일본 디자이너 키미노리 모리시타를 발굴해 전 세계에 소개한 사람이 바로 오 대표다. 프랑스 이름 ‘로메오(ROMEO)’는 셰익스피어의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의 바로 그 로미오를 불어로 발음한 것.
“초등학교 때 동네 교회에서 연극을 하면서 제가 맡았던 배역이 로미오였어요. 참 순수하고 아름다운 청년이라는 기억이 있어요.”
22년간 전 세계 패션 업계와 네트워크를 쌓은 그는 6년 전부터 ‘서울패션위크’ 컨설턴트로도 활약했다. 유럽·미국의 유명 바이어와 기자들을 서울패션위크에 초대하는 일을 맡았다. 정기적으로 서울을 오가게 되면서 ‘뷰티 강국’이라는 한국의 장점이 눈에 띄었다고 한다. 뷰티 브랜드 ‘오탑’은 그렇게 전위적이면서도 개성 있는 로메오 쇼룸의 옷들에 어울리는 화장품으로 기획됐다. 지난해 선보인 첫 상품은 립밤과 쿠션이었다.

남성화장품 브랜드 '오탑'의 립밤과 BB쿠션. 사진 오탑

남성화장품 브랜드 '오탑'의 립밤과 BB쿠션. 사진 오탑

“빠르고 간편하게 얼룩덜룩한 피부를 환하고 생기있게 만들 수 있다면 출근길 남자들한테 큰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장을 분석해보니 한국 중년 남성들을 위한 화장품이 없더라고요. 젊은 친구들은 기초 화장품 안 발라도 피부가 좋으니까 오히려 윤곽을 또렷하게 해주는 메이크업 제품에 더 관심이 많고요.”

1985~86년에 모델로 활동했던 오성호 대표가 지난해 출시한 남성화장품 '오탑'. 심플하고 모던한 패키지 디자인은 각이 깔끔하게 잡히는 네모와 차분한 분위기의 셉그린(암록색) 컬러를 좋아하는 오 대표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다. 사진 오탑

1985~86년에 모델로 활동했던 오성호 대표가 지난해 출시한 남성화장품 '오탑'. 심플하고 모던한 패키지 디자인은 각이 깔끔하게 잡히는 네모와 차분한 분위기의 셉그린(암록색) 컬러를 좋아하는 오 대표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다. 사진 오탑

올해 11월 토너·에멀전·세안제 스킨케어 3종을 내놓은 이유다. 아저씨들 특유의 냄새인 ‘사우나용 스킨향’에서 멀어지기 위해 프랑스 최고의 향수를 생산하는 그라스 지방까지 뛰어갔다. 에르메스 향수를 만드는 조향사의 딸이자 ‘향의 시인’이라 불리는 셀린 엘레나와 함께 7개월간 연구·개발한 것이 지금의 향 ‘블랙스톤’이다.
“며칠 전 한국 TV 프로그램에서 중년의 남자 연예인들이 ‘아내의 화장품을 발라보니 진짜 좋다’는 말을 하더군요. 온갖 좋다는 건 다 쓰는 연예인들조차 딱 맘에 드는 제품을 못 찾았아서 아내의 화장품을 쓰는 거예요. 물론 첫 번째 순서는 남성들 자신이 스스로를 가꾸는 데 게으르지 않고 긴장을 늦추지 않는 거예요. 두 번째는 아내들이 화장대 한 구석을 남편에게 양보하고 기회를 주는 거죠. 남편이 자신의 피부에 잘 맞고 좋아하는 화장품을 골라 채울 수 있도록 말이죠.”
글=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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