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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기업 IR 자료…보이는 것 다 아니니 ‘삐딱선’타라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장지웅의 친애하는 소액주주에게(1)

이 땅에 주식거래 앱이 등장한 지 10년. 이젠 정보의 홍수가 성공 투자의 발목을 잡는다. 정보 너머의 진실과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관건이 된 것이다. 보이는 것만 믿다가 실패의 쓴잔을 들이킨 투자자가 부지기수다. 그래서 일단 의심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의심과 불신은 다르다. 한국 증시의 메카 여의도에서 수십 년 M&A에 몸담은 필자가 투자자의 가려운 데를 긁어준다. 〈편집자〉  

인 비노 베리타스(In vino VERITAS). ‘와인에는 진실이 있다’는 라틴어 문구다. 사람에게서 고문보다 술이 진실을 끌어내기 쉽다. 금융계에는 수많은 말과 정보가 떠돈다. 2010년 2월 주식거래 앱이 최초로 선보인 이후 강산도 변하는 10년이 훌쩍 지났다. 이제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아닌 정보의 홍수가 성공 투자의 발목을 잡는다. 투자자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건 가짜 정보가 아니라 정보 너머의 진실과 의도다.

현재 몸담은 대한민국 금융의 중심지 여의도에는 ‘여의도 보호색’이란 게 있다. 흰 셔츠와 넥타이, 검은색이나 감색의 양복 차림을 말한다. 이 보호색을 뒤집어쓰면 여의도 어느 곳이든 금세 섞일 수 있고 여간해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군인이 그러하듯 보호색을 뒤집어쓰면 개인은 사라지고 집단의 일부라는 정체성을 얻게 된다. 내가 곧 집단이고, 집단이 곧 나인 셈이다. 여의도 보호색을 뒤집어쓴 소위 전문가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다. 스마트해진 일반 투자자는 펀드매니저와 운용사의 이익이 투자자의 이익과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금융투자협회 기준 2019년 6월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던 사모펀드 액은 8월 기준 전년 최대치 대비 반 토막이 됐다. 사모펀드의 연이은 대형 사고가 한몫했음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재무제표를 믿어도 되는 것일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눈에 보이는 건 거짓이 아닐지라도 보이지 않는 것에 진실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사진 pxhere]

재무제표를 믿어도 되는 것일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눈에 보이는 건 거짓이 아닐지라도 보이지 않는 것에 진실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사진 pxhere]

일반 투자자가 실패하는 건 정보를 잘못 해석하거나 옥석을 가려 걸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공 투자의 기본은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것이다. 내 손에 들어온 정보가 아무리 안전해 보일지라도 의심해야 한다. 불신이 아닌 의심이다. 투자의 모든 책임은 개인인 나에게 귀속된다. ‘낙장불입’인 엄중한 투자의 세계에서 의심은 미덕이다.

첫 시작이니 가볍게 묻고 싶다. 재무제표를 믿어도 되는 것일까? 기업 IR 담당자가 제공하는 정보를 믿어도 될까? 재무제표나 기업 IR 담당자를 믿지 못하면 대체 누굴 믿어야 하느냐 묻고 싶을 것이다. 정답부터 말하자면 눈에 보이는 건 거짓이 아닐지라도 보이지 않는 것에 진실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재무제표는 회계사의 검증을 받기 전까지는 진실이다. 검증을 받은 후에도 어떤 종목을 사라거나 이미 틀렸으니 빨리 매도하라고 알려주지 않는다. 분식회계는 잘못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분식 여부를 알 수 없다. 망할 것 같은 회사가 앞으로 망할지도 모른다는 재무제표를 작성하면 적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IR 담당자의 회사 소개는 기업의 비전과 성장성 측면에서는 진실이다. 꿈을 꾸는 건 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꿈과 비전은 진실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룰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얼마 전 볼일이 있어 강남에 갔다가 우연히 상장 A사의 사옥 앞을 지나게 되었다. 회사 주차장에는 일반 회사원은 꿈도 꿀 수 없을 고가의 수입차가 즐비했다. 럭셔리 세단부터 남자라면 한 번쯤 꿈꾼다는 늘씬하게 잘빠진 스포츠 세단까지 마치 자동차 전시장과도 같았다. 저런 비싼 몸값의 차를 영업용으로 사원에게 내줄 리는 만무하다. 그렇게 법인차량은 사주 일가의 자가용으로 전락한 경우가 많다.

십수 년을 기업 M&A에 몸담은 나도 모르게 직업병이 발동했다. MTS에 접속해 A사의 최근 주가와 시가총액을 살폈다. 주가든 시총이든 결코 낙관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주차장에 늘어선 법인 차량만 보면 A사는 남부러울 것 없이 장사가 잘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당장의 매출과 실적이 주가와 늘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재무제표는 어떨까? 변경된 리스 회계기준은 2019년부터 적용됐다.

A사의 주차장을 채운 고급 수입차는 2018년까지만 해도 재무제표에서 찾아볼 수 없는 있으나 없는 존재였다. K-IFRS 변경 적용 이후에야 고급 수입차가 재무제표에 부채로 잡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A사의 2018년 재무제표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회계기준을 어긴 위법이 아니므로 수입차의 존재를 숨긴 것도 아니다. 만약 당신이 A사의 IR 담당자를 만나 회사의 비전이 담긴 브로슈어를 받고 내년 매출은 올해보다 몇십 퍼센트 상향한 수준이라고 희망찬 목표를 듣는다 해도 거짓말에 속은 게 아니다. 내년 말에 설령 목표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이는 마치 모든 프로 스포츠팀의 목표는 우승이고 그 우승을 위해 구슬땀을 흘린다는 말을 듣는 것과 같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봐야 할 것은 땀의 흔적, 진정성 있는 노력, 나아지는 모습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보인다 해도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결과가 도출되기도 한다. [사진 pixabay]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보인다 해도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결과가 도출되기도 한다. [사진 pixabay]

결국 유니콘이 되는 스타트업이나 말만 번지르르한 기업은 겉으로만 보면 몹시 닮았다. 목표가 너무 찬란해 천재 사기꾼처럼 보이는 일론 머스크가 전자기학의 혁명적인 발전을 가능케 한 니콜라 테슬라의 아우라로 부족한 내실을 덮으려 한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현재 일론 머스크는 자신의 말을 하나씩 증명해 나가고 있다. 오히려 뒤이어 등장한 수소 전기차 업체인 니콜라가 테슬라의 꿈에 무임승차했고, 진실인 것처럼 보였던 니콜라의 말은 사기임이 밝혀지고 주가는 폭락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보인다 해도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결과가 도출되기도 한다. ‘취중주담(醉中株談)’을 말한 것은 경제와 투자에 대해 제대로 해석해 금융의 속성과 진실에 다가가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물론 취한 사람은 취하지 않은 사람보다 말과 행동으로 실수할 확률이 더 높다. 하지만 실수를 통해, 실수를 시행착오 삼아 잃지 않는 투자에 가까워질 수도 있다. 내가 하는 말과 내가 쓰는 글 역시 의심하기 바란다.

검증은 두렵지 않다. 투자자 모두가 두려워할 건 틀림 그 자체가 아니라 틀린 걸 바르다고 믿는 어리석음이다. 취중진담이 아닌 취중주담으로, 한잔 술에 취한 듯 투자와 주식에 대해 투자자가 궁금해하거나 묻지 못하는 것에 대해 술술 풀어놓을 것이다. 이런 과정으로 한 분이라도 더 성공 투자의 축배를 들기 바랄 뿐이다. 인 비노 베리타스!

이상미디랩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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