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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보수 우파여, 헛물켜지 마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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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대훈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1국장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내년 4월 서울·부산 시장 선거에선 우파가 이기겠지요?” 기자라는 이유로 요즘 이런 질문을 부쩍 많이 받는다. ‘뭘 해도 콘크리트’라던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 40%가 깨졌다는 사실에 고무된 보수 성향 인사들이 묻곤 한다. 좌파 운동권 정권의 폭주에 분노하는 분들이다. 자신들의 기대와 희망에 맞장구를 쳐주고 정신적 동지로 동행하길 바라는 눈치다.

대통령 지지율 추락에 고무된 보수 #‘서울시장 선거 승리’ 확증편향 빠져 #대반전 꾀하는 정권의 카드 얕보고 #중도층 민심 못 얻으면 물거품된다

이런 행위를 호모필리(Homophily, 동종애·同種愛) 현상으로 학계에선 설명한다. 서로 비슷한 정치적 가치·신념·편견을 가진 사람들끼리 소셜 미디어(SNS)를 통해 정보와 의견을 교환하며 동질성을 확인하고 뭉치는 현상이다.  SNS 시대의 특징 중 하나다. 정파적 성향에 맞는 유튜브를 공유하고,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눌러대고, 단톡방에서 이모티콘으로 날리며 연대의식을 다지는 게 그런 예다. 그런 배타적 집단에선 보고 싶은 세상만 본다.

지금 보수 세력이 딱 요 모양새다. 자신의 이념과 일치하면 받아들이고 그 반대인 경우는 배척하는 확증편향에 갇혀 현실을 왜곡해 읽는다. 정부를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뉴스와 정보만을 소비하는 유유상종(類類相從)의 집단이 되고, 상황을 아전인수(我田引水)로 재단한다. ‘싸가지 없는 진보 정권이 민심의 심판을 받고 몰락할 것이기에 내년 선거는 보나마나’라는 집단착시에 지배당하고 있다.

침묵하는 합리적 중도층이 돌아서면서 정권의 콘크리트 지지층에 균열이 생긴 건 맞다. ‘빵뜨와네트’라고 조롱을 받을 만큼 엉망진창이 된 부동산 참사, 넌더리가 나는 추미애 활극, 권력형 비리의 냄새가 풍기는 월성 원전과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기 등에 학을 떼고 있다. 자기편만 챙기는 친문·팬덤 정치, 공정과 상식이 죽은 사회, 오만과 궤변의 내로남불을 훈장으로 여기는 운동권 문화에 염증을 안 느낀다면 정신상태를 의심해야 할 지경이다.

30%대(갤럽 39%, 리얼미터 37.1%)로 추락한 문 대통령 지지율은 민심 이반의 방증이다. 윤석열의 대선 선호도가 이낙연·이재명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고, 정권심판론이 정권지지론보다 우세해지고 있다. 하지만 문파와 팬덤을 주축으로 아직도 10명 중 4명이나 떠받치고 있는 점에 오히려 주목해야 한다. 문 대통령의 대선 득표율인 41.1%이었다. 잠시 가출한 지지층을 다시 껴안으면 쉽게 만회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정권은 여론 뒤집기를 위해 반격에 이미 나섰다. 어제 집권 여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정권 보위용 친위대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윤석열 찍어내기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울산시장선거 개입 의혹·월성 1호기 문건 삭제 사건에는 문 대통령의 이름이 거론된다. 윤석열도 없는 마당에 공수처가 정권의 급소를 겨냥한 이런 수사를 다 가져와 덮어버리면 속수무책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이 열리는 역사적 시간”이라는 문 대통령의 말은 진정 역사에 남을 명언이다.

내년 시장선거를 앞두고 재난지원금과 코로나 백신을 팍팍 푸는 ‘코로나 정치’도 열세를 뒤집을 카드다. 지난 4월 총선 때 가구당 100만원의 재난지원금을 뿌려 재미를 좀 봤다. 내년엔 지원금에다 ‘전 국민의 무료 백신 접종’이란 2종 세트가 민심을 흔들 수 있다. 토건 돈잔치도 기다린다. 이 정부에서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면제 규모가 이미 88조원이다. 여기에 10조원대 가덕도 신공항 건설도 예타가 면제되면 그 규모가 100조원에 이르는 돈벼락이 여기저기 쏟아진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삽질 정부’라면 문재인 정부는 ‘포클레인 정부’라고 불러도 손색없다.

“자기 돈이라면 이렇게 쓰겠나”라는 질책은 부질없다. “세금 펑펑 뿌려대는 정부”, 그게 권력 가진 자의 특권이라며 당당하다. 전국 시도에 모두 하나씩 공항을 지어 꽁치를 말리든 멸치를 말리든 훗날을 누가 신경 쓰겠는가. 국민도 어차피 없어질 공돈이라면 받아 챙기자는 공짜심리를 작동한다. ‘매표 행위’라고 겉으론 욕하면서도 한몫 잡을 게 없나 두리번거리는 민초의 나약한 심리를 어찌 탓하랴. 푼돈 매수인 줄 알면서도 보은하는 게 우리 국민의 착한 심성이다. 4·15 총선 때 흔들렸던 내 마음처럼 말이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서울·부산 시장선거에서 좌파 정권이 질까?” 기자의 대답은 “아니올시다. 이민 가겠다는 사람 많을 것”이다. 문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진보·호남·40대·여성이 떠나고 있다는데 과연 어디로 가겠는가. 보수-진보를 오락가락하는 낡은 인물이 이끄는 정체불명의 국민의힘을 대안세력으로 볼까. 문재인 정권 최대의 치적으로 꼽히는 이분법의 양극화 사회에선 웬만해선 진영을 바꾸지 않는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2020년의 비열한 신세계는 맛보기에 불과할지 모른다. 내년 4·7 보궐선거 이후 승패에 따라 ‘운동권 전체주의 시대’라는 쓰나미가 밀어닥칠 수 있다. 상식적인 중도층이 균형을 잡아주지 않으면 우파의 기대는 물거품이 된다. 호모필리와 확증편향에 기댄 어설픈 착각은 달콤하다. 하지만 내편 밖의 현실을 차갑게 보고 외연을 넓혀야 기회가 열린다. 보수 우파여, 섣불리 헛물을 켜지 마시라.

고대훈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