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오영환의 지방시대

첫 민간 주도 공항…토요타 출신 사장이 건설비 20% 절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오영환
오영환 기자 중앙일보 지역전문기자

세계 지방공항 평가 1위 일본 주부공항

일본 아이치현 주부국제공항은 2017~18년 전체 매출에서 항공 외 매출이 절반을 넘었다. 보잉 항공기를 전시해둔 공항내 상업시설에서 ‘영상과 소리의 쇼’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지지통신]

일본 아이치현 주부국제공항은 2017~18년 전체 매출에서 항공 외 매출이 절반을 넘었다. 보잉 항공기를 전시해둔 공항내 상업시설에서 ‘영상과 소리의 쇼’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지지통신]

영국의 항공 서비스 조사기관 스카이트랙스(Skytrax)의 공항 평가는 아시아 세가 두드러진다. 올해 상위 10위에 싱가포르 창이(1위), 일본 하네다(2위), 한국 인천(4위), 홍콩(6위), 일본 나리타(7위)·주부(8위)·간사이(10위)가 포진했다. 평가는 공항 접근성, 청결, 시설, 친절도 등 39개 항목에 걸친 설문으로 이뤄진다.

4개 자치단체장 합의로 부지 선정 #민간·정부·지자체 5:4:1 비율 출자 #주식회사가 운영…상업매출이 절반 #주변 9개현 관광 루트로 관문 굳혀

창이 공항은 2013년 이래 8년 연속 1위다. 인천공항은 2009년, 2012년 1위를 비롯해 톱 3의 고정 멤버였다가 올해 한 계단 떨어졌다. 김포공항은 49위이고, 한국의 나머지 지방공항은 100위 안에 없다. 일본은 100위권이 후쿠오카 공항(39위)을 더해 5곳이다. 중국은 상하이 홍차오(22위), 광저우(30위), 시안(47위) 등 7곳이 100위권이다. 하늘을 잇는 관문의 세계도 아시아 시대가 됐다. 아시아 공항 간 하늘길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게 분명하다.

스카이트랙스는 지방(Regional) 공항 10위 순위도 발표한다. 수도권 거점공항 외 중·근거리 노선 중심의 공항이 대상이다. 일본 아이치(愛知)현 도코나메(常滑)시 주부(中部)국제공항은 올해를 포함해 6년 연속 세계 1위였다. 2005년 개항한 이래 놀라운 약진이다. 주부공항은 2006년 노무현 정부 때 검토하기 시작한 동남권 신공항 연구 조사의 한 모델이기도 하다.

공항은 이세만 동부에 인공섬으로 조성됐다. [사진 주부국제공항주식회사]

공항은 이세만 동부에 인공섬으로 조성됐다. [사진 주부국제공항주식회사]

한국은 그새 영남 5개 단체장 합의와 세계 굴지의 공항설계업체(ADPi) 조사를 거쳐 정부가 확정한 김해공항 확장이 지난달 정치로 뒤집혔다. 여당 의원 138명, 야당 의원 15명이 용역에서 꼴찌를 한 부산 가덕도 신공항 건설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그것도 일반법에 우선하는 형태로 국책 사업의 지도를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다. 국토 균형 발전을 명분으로 예비 타당성 조사의 벽을 우회하고 주무부처를 허수아비로 만든 선거 지상주의의 입법부 폭주다. 여당 법안은 김해공항의 장래에 대한 언급도 없다. 인천공항에 이어 내국인 출국(지난해 385만명)과 외국인 입국(135만명)에서 2위 자리를 굳힌 동남권 관문인데도 그렇다. 특별법안은 뚝딱 제출됐지만, 종합 과학의 한 영역인 공항 건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경구에 휘말릴지 모른다.

주부공항 탄생 과정과 운영 방식은 적잖은 시사점을 준다. 공항은 반세기에 걸친 주변 지역민 총화의 결실이다. 구상은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일본 중부권 경제단체인 주부경제인연합회가 아이치(愛知)현 미카와(三河)만에 국제화물공항 신설을 주창했다. 고도 성장기였지만 아이치현 운영 나고야공항이 주변의 택지화로 확장이 어려워지면서다. 연합회는 76년 나고야 상공회의소와 더불어 연구회를 세웠고, 연구회는 78년 아이치현과 미에(三重)현 사이의 이세(伊勢)만 내 공항 건설을 제안했다. 하지만 구상은 겉돌았다. 주부경제인연합회는 82년 ‘중부의 21세기 비전’을 내면서 다시 신공항 건설을 꺼내 들었다. 이를 계기로 나고야(名古屋)시와 아이치·미에·기후(岐阜)현의 장기종합계획에 신공항 건설이 차례로 반영됐다.

일본 아이치현 주부국제공항

일본 아이치현 주부국제공항

85년은 신공항 건설의 사실상 원년이다. 4개 지자체와 경제단체는 신공항 건설촉진동맹회를 결성했고, 재단법인 주부공항조사회를 설립했다. 조사회는 88년 당초의 7개 후보지를 4곳으로 압축했다. 이세만 동부·북부·서부 해상과 미카와만이었다. 이세만 동부와 미카와만은 아이치현에, 서부는 미에현에 가까운 입지였다. 북부는 하구(河口)로 아이치현과 미에현 중간쯤에 기후현과도 가깝다. 최종 입지 선정은 진통을 겪었다. 미에현이 이세만 북부를, 아이치현이 동부를 고집하면서다. 결국 입지는 이듬해 4개 단체장 합의로 이세만 동부로 낙점됐다. D자형 인공섬(5.8㎢)에 T자형 터미널과 활주로 1본(3500m)으로 된 현재의 주부공항이다.

당시 조사회는 입지가 정치 문제화하는 것을 막는 데 온 힘을 쏟았다고 한다(주니치신문). 입지 선정과 타당성 조사를 재단법인이 맡은 것도 그 일환이다. 재단 이사장은 미야케 시게미츠 도카이은행장이었다. 신공항 건설은 중앙 정부 차원의 ‘조사 공항(90년)’, ‘착공 공항(95년)’ 절차를 거쳐 조성됐다. 공항은 4개 지자체와 경제계가 하나로 뭉쳐 중앙 정부를 움직여 만든 공든 탑이다.

주부공항은 일본의 첫 민간 주도 공항이기도 하다. 회사법 적용을 받는 주부국제공항주식회사가 98년 설립돼 공항을 건설했고, 소유·운영하고 있다. 회사 출자금 비율은 민간 50%, 정부 40%, 지자체 10%다. 초대 사장은 토요타 영국법인장 출신의 히라노 유키히사였다.

영국 스카이트랙스 2020 세계 공항 평가

영국 스카이트랙스 2020 세계 공항 평가

생산부문 기술자 출신인 그는 당초 공항건설 총사업비가 7680억엔이었지만 5950억엔으로 완공했다. 당시 운수성 사무차관이 “7680억엔으로 공항을 만들어도 혁명적”이라던 사업비를 20% 넘게 절감했다. 토요타 방식의 철저한 비용 삭감이 위력을 발휘하면서다. 예산을 통째로 쓰는 공공사업의 상식이 주부공항 건설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주부공항은 테마파크형 상업시설 등 항공 외 매출이 2017~18년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 회사는 2017년에 내놓은 ‘비전 2027’에서 공항 운영회사에서 공항 활용회사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주부공항 사장은 5대째로 모두 토요타 출신이다. 주부공항의 경쟁력에는 민간이 불어넣은 새 바람을 빼놓을 수 없다.

공항 주변 지역의 관광권 정비도 순풍으로 작용했다. 중북부권 9개 현과 관광단체가 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한 쇼류도(昇龍道) 프로젝트를 출범시키면서 주부공항은 인바운드의 관문이 됐다. 이 프로젝트는 용이 승천하는 모습의 지형을 딴 관광 주유 루트 사업으로 인기가 높다. 전체 관광지를 4개 코스로 나눠 5~9일간 체류를 꾀하고 있다. 지난해 주부공항을 통한 외국인 입국자 수는 177만명으로 나리타·간사이·하네다·후쿠오카 공항에 이어 5번째다. 해외관광객 유치를 통한 지방 활성화에 주부공항이 견인차가 되고 있는 셈이다.

공항은 경제 활동,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인프라다. 저출산·고령화·저성장과 지방소멸의 메가트렌드를 헤쳐나오기 위해선 국내외 교류는 불가결하다. 공항은 그 현관이다. 공항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선 최대 다수의 접근성과 축복이 긴요하다. 인프라 개발·유치의 토건형 사고는 인프라의 역습을 부를지 모른다. 더구나 지금은 재정 압박의 시기가 아닌가. 돌다리도 두드려야 할 대역사(大役事)의 정치 주도는 재고돼야 한다.

목적지·도착 시한만 있고 항로는 없는 가덕도 신공항

지난달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의원들이 발의한 가덕도 공항 관련 법안은 큰 차이가 없다. 법안 이름이 ‘가덕도 신공항 건설 촉진 특별법안’과 ‘부산가덕도신공항 특별법안’으로 동남권 신공항 부지를 가덕도로 못 박았다.

그동안의 과정을 무시하고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공항 부지를 의원들이 선정한 꼴이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민주당 법안은 사실상 건설 시한도 정했다. 법안에 ‘2030년 부산세계박람회의 성공 개최를 위한 조기 건설’을 담았다. 늦어도 2030년까지가 되는 셈이다.

특별법 형식은 기존의 SOC 관련 일반법과 충돌할 시 우선한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여야 법안 모두 ‘국가재정법 38조에도 불구하고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 조사의 핵심은 비용 대 편익 분석인 만큼 경제성에 구애받지 않고 건설하겠다는 뜻이다. 2016년 용역 당시 가덕도의 경우 활주로 1본 건설 때 7조여원, 2본 땐 10조여원이 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김해공항 확장 땐 4조여원이다.

여기에 민주당 법안은 신공항 관련 교통시설, 신도시 조성·물류기반 산업단지 인프라 건설에 대한 국가 예산 우선 지원과 지역 기업 우대도 담았다. 조성 비용을 가늠하기 어렵다. 목적지와 도착 시한만 있고 항로(기본 계획)가 없는 상태에서 비행이 시작됐다.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