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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권력기관 개혁 완성이 아닌 법치 파괴의 날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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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공수처법)이 어제 국회를 통과했다. 법무부는 기어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일 공수처법에 대해 “권력기관의 제도적 개혁을 완성할 기회”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 많은 법안을 힘으로 밀어붙여 통과시키고, 절차와 내용에 하자가 큰 징계위를 강행한 이날은 ‘법치 파괴의 날’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공수처법 개정…인사위 막히면 또 바꾸나 #총장 징계위원 부적절, 기피신청도 기각

국회는 정기국회 종료 하루 만인 어제 임시회를 열었다. 정기국회 마지막 날 야당이 필리버스터를 신청하자 표결을 미뤘던 공수처법 개정안 등을 본회의에 상정해 통과시켰다. 공수처법을 만들 때 정권 방패막이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는 우려가 나오자 처장 후보 추천 과정에서 야당에 비토권을 주는 보완장치를 뒀다. 하지만 공수처가 출범하기도 전에 보완장치마저 없애버린 것이다. 야당이 비토권을 공수처 출범 지연 수단으로 쓰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댔다.

정말 민주주의를 위해 권력기관을 개혁하는 것이 목표라면 시간을 들여서라도 야당을 설득했어야 옳다. 회의 몇 번 해보지도 않고 법부터 개정하는 것은 입맛대로 움직이는 수사기관을 만드는 것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더구나 수사검사 자격조건을 턱없이 낮추는 조항을 개정안에 슬쩍 끼워 넣었다. 자기편 인물로 수사검사를 채우겠다는 노골적인 의사표시다.

그렇다고 뜻대로 연내 공수처가 출범할 것 같지도 않다. 수사검사를 뽑으려면 야당이 추천한 위원 2명을 포함하는 인사위원회를 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사위 구성이 안 되면 수사검사 없이 처장과 차장만으로 공수처 출범을 선언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인사위 규정을 고치는 법 개정을 시도할 것인가.

검찰총장 징계위원회도 만만치 않다. 그동안 오로지 윤 총장을 잘라내기 위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폭주하는 바람에 부작용이 심각했다. 거의 모든 검사가 반대 성명을 냈다. 감찰위원회의 부적절 권고도 무시하고 직무배제 결정을 내렸다가 법원에서 효력을 정지당했다. 보다 못한 문 대통령이 절차적 정당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어제 열린 징계위도 정당성·공정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징계위원 자체가 부적절했다. 외부 위원 중 한 명은 사퇴했고, 다른 한 명은 불참했다. 부랴부랴 한 명을 구해 다섯 명으로 회의를 열었다. 그런데 위원 모두가 기피 대상이었다. 친여 활동이나 윤 총장을 공개 비난한 경력이 있고, 징계 추진 과정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윤 총장 측 요청에도 명단을 알려주지 않았다. 윤 총장 측은 이 중 네 명에 대해 기피신청을 했지만 기각됐다. 기피 대상은 결정에 참여할 수 없다는 규정과 판례를 제시했지만 묵살됐다고 한다.

회의를 속개한 징계위는 논의를 다 마치지 못하고 이날 오후 8시쯤 마쳤다. 증인 심문과 징계사유 심의는 모두 15일 회의로 미뤄졌다.

하지만 논의 내용과 상관없이 부적절한 인물들로 구성된 징계위는 중징계를 결정할 것으로 법조계는 전망한다. 결과를 정해놓고 하는 요식행위이기 때문이다. 결국 징계 결정 역시 법원으로 가는 게 정해진 수순이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로서 부끄럽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