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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수능장 들어가던 아들이 건낸 카드 한장의 위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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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51)

가림막이 설치된 책상에 앉아 마스크를 쓰고 시험을 치뤄야 했던 학생들. 사진은 코로나19 비말 차단용 수능 가림막이 설치된 책상 모습. [중앙포토]

가림막이 설치된 책상에 앉아 마스크를 쓰고 시험을 치뤄야 했던 학생들. 사진은 코로나19 비말 차단용 수능 가림막이 설치된 책상 모습. [중앙포토]

코로나19 3차 유행을 앞두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이 치러졌다. 안 그래도 힘든 시기에 학교도 제대로 등교하지 못하고 친구도 못 만나며 1년여를 집 안 책상 앞에서 보내야 했던 수험생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그 옆을 지키는 부모의 마음은 또 어땠으랴. 수험생 자녀를 둔 주변 지인의 모습만 봐도 느낄 수 있었다. 수능을 앞둔 한 두 달 전부터 집안 식구 이외의 사람은 아예 안 만나려 했고, 심지어 의료장갑을 끼고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동료도 있었다. 수능 며칠 전부터는 가족들조차 수험생 자녀와 접촉을 가능한 안 했다고 한다. 얼마 안 남은 기간, 혹시라도 하는 마음이 수험생과 가족을 극도로 조심하게 한 것이다. 그렇게 맞이한 수능 당일 뉴스에서는 방역체계 안에서 시험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연신 보도되었다.

“고3 수험생들이 마스크를 단단히 착용하고 긴장된 표정으로 시험장으로 들어갑니다. 학부모들은 쉽사리 발걸음을 옮기지 못한 채 애틋한 눈길을 보냅니다. 후배들의 열띤 응원전은 자취를 감췄고, 연이은 수험생 확진자 발생 소식에 고사장엔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발열 체크와 2m 거리두기, 책상마다 설치된 가림막. 코로나19로 달라진 수능 풍경입니다.”

기자의 리포트 뒤로 수험생을 들여보내는 부모의 모습이 보였다. 등을 두드리며 고사장으로 아이를 들여보낸 뒤 붙박이처럼 서 있는 아빠, 시험시간 내내 교문 앞을 떠나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이 방송 화면에 고스란히 잡혔다. ‘12년간 준비한 것, 잘 풀고 와’라는 어느 학부모의 응원 인터뷰처럼 우리나라 교육은 이날 하루를 위해 달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교육의 폐해를 개선하기 위해 입시요강을 비롯한 교육제도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하지만, 30여 년 전 수험생이었던 그때 나의 모습과 지금 교문을 들어서는 학생의 모습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자녀가 시험을 마치는 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부모까지도 말이다.

마침 수능 당일, 수험생을 둔 선배와 점심 약속이 있었다. 만나도 괜찮겠냐는 나의 질문에 선배는 ‘괜찮아, 잘 보고 올 거야. 어차피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나가봐야 해’라고 쿨하게 답했지만, 마주 앉자마자 수능장에 들어간 아들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자녀의 손을 꼭 잡아주는 것 밖에 해 줄 수 없는 수험생의 부모의 마음도 짐작이 간다. 몇 년 뒤 나 역시 저 자리에 그 모습으로 서 있을 것이기에. [사진 unsplash]

자녀의 손을 꼭 잡아주는 것 밖에 해 줄 수 없는 수험생의 부모의 마음도 짐작이 간다. 몇 년 뒤 나 역시 저 자리에 그 모습으로 서 있을 것이기에. [사진 unsplash]

“어떻게 일 년이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작년과 비교해 보면 마지막까지 집중해 준비하더라.” 선배는 재수 기간을 꿋꿋하게 잘 버텨 준 아들이 고맙다고 했다. “가끔 나도 아이도 재수 생활에 대해 회의를 갖기는 했지만, 우리도 알잖아. 돌이켜 보면 이 시간이 단지 점수를 올리기 위한 기간만은 아니라는걸. 난생 처음 느껴 보는 실패와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 그러면서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게 된다는 걸 말이야.”

“맞아요, 선배. 나는 아직 중학생 학부모라 잘 모르지만, 수능을 마친 후 아이가 진지하게 한 번만 더 집중해 공부해보겠다고 말하면 그걸 말릴 수 있는 부모는 없다고 하더라고요.”

고개를 끄덕이던 선배는 휴대폰에 담긴 사진 한장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카네이션 꽃이 달린 작은 카드 한장이 찍혀 있었다. “오늘 학교 앞에 아이를 내려 주는 데, 가방에서 이걸 꺼내서 나한테 주더라고. 우리 애가 다 컸다는 생각이 들더라.” 카드 안에는 지난 일 년 동안 부모님 고생하신 것을 안다, 그 시간 동안 옆자리를 지켜줘서 감사하다는 인사가 적혀 있었다. 같은 엄마 입장에서 마음이 뭉클했다.

“이 카드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남편과 여러 이야기를 했어. 이렇게 잘 자라 준 아이를 앞으로 어떻게 서포트하면 좋을지 말이야. 그래서 몇 가지 계획을 세웠지. 우선 논술까지 시험이 다 끝나면 요리를 좀 가르쳐 보려고. 남자도 자기 먹거리는 스스로 챙길 수 있어야 하잖아.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부터 시작해야지. 그리고 집 안 청소도 본격적으로 시켜볼 생각이야.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 되기 위한 기본기가 필요하잖니. 지금까지는 공부하느라 다른 걸 돌아볼 여유가 없었으니까 이제부터라도 해야지. 이런 것들이 몸에 익으면 대학 생활을 할 때나 졸업 이후 어디에서든지 자기 일상을 정돈할 수 있지 않을까. 나중에 결혼할 때도 좋을 것 같고. 하하.”

‘결혼할 여자친구도 이런 걸 배워와야 하는데’, ‘아니다, 와이프가 못하면 남편이 하면 되지’, ‘아들이 결혼해 손주를 낳게 되면 지금까지 해왔던 일 다 정리하고 손주 보면서 살고 싶다’ 등 몇 가지라던 선배의 계획은 풍선처럼 커져만 갔다. ‘카드 한장’의 위력이 이토록 힘이 세다니! 선배는 이렇게 앞으로의 시간을 그리며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 있는지도 모른다. 머릿속 그림처럼 아들과 맞이하게 될 즐거운 변화를 기원하면서 말이다.

코로나 19 사태 속에서 수능과 논술을 마친 올해의 수험생들에게 수고했다는 박수를 보낸다. [사진 unsplash]

코로나 19 사태 속에서 수능과 논술을 마친 올해의 수험생들에게 수고했다는 박수를 보낸다. [사진 unsplash]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가림막에 시험지를 불편하게 들춰가며 수능을 보았을 올해의 수험생들에게 ‘정말 수고 많았다’란 말을 전하고 싶다. 준비한 만큼만 치러 주기를 바라며 학교 밖에서 서성이고 있던 부모님들에게도!

우먼센스 편집국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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