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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부 출신' 尹 너무 얕봤나, 秋에 5전 5승 거둔 숨은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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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인파이터 추미애, 아웃복서 윤석열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 찍어내기의 행동대장으로 나섰다가 번번이 판정패를 당하고 있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전국 검사의 98%가 등을 돌리며 들고 일어났다는 점이다. 감찰위원회-행정법원-법학교수회-법관회의도 잇달아 윤 총장의 손을 들어주었다. 완패다. 어설픈 도발로 5전 5패의 망신을 당한 것이다. 민주당에서도 “추 장관이 망나니 칼춤을 추다가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은 망쳐 놓고 윤 총장 몸값만 올려놓았다”는 한탄이 흘러나온다. 판사 출신에다 5선 의원·당 대표까지 지낸 추 장관이 검찰을 노련하게 요리하기는커녕 연이은 헛발질로 검찰 개혁의 명분만 잃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철호의 퍼스펙티브] #추미애, 정치적 근육으로 무리수 #윤석열 비밀 병기는 치밀한 법리 #양측 참모 능력도 하늘과 땅 차이 #윤의 대선지지율 1위가 새 변수 #민심을 잃으면 정권을 잃을 수도

우격다짐의 무리수 … 추 장관 판정패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법조계 관계자들은 가장 큰 문제는 추 장관 본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법리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추 장관의 판사 경험은 10년 남짓이고 훨씬 긴 25년을 정치판에서 보냈다. 이번에도 허겁지겁 윤 총장을 쫓아내기 위해 정치적 근육만 마구 사용했다. 잦은 코드 인사, 6건의 지휘권 발동, 사상 초유의 직무 정지라는 무리수를 거듭한 것이다. “제 지시를 절반이나 잘라먹었다” “대권 후보 1위로 등극했으니 사퇴하고 정치나 하라”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차분한 법리 논쟁보다 상대방을 마구 헐뜯고 공개적인 망신을 주기에 급급했다.  정치판의 진흙탕 싸움이 따로 없었다. “기업의 정리해고도 이렇게는 안 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우격다짐은 자충수로 이어졌다. 추 장관은 지난달 24일 ‘판사 성향 문건’을 흔들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혼자 자가발전한 셈이었다. 감찰위도 판사회의도 충격은커녕 “별일 아니다”는 판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문건은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한동수 대검 감찰부장-박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 순으로 제보·전달된 것이 드러나 서울고검이 수사에 착수했다. 허술한 판사 문건을 악용하려다 역풍을 맞은 것이다. 치명적인 패착이다.

특수부 출신 윤 총장의 비밀 병기

상대적으로 윤 총장 측 싸움의 기술이 돋보인다. 사태 초기에 거친 맞대응을 자제하고 추 장관 측의 절차적 불법·부당함을 법리적으로 집요하게 파헤쳤다. 전국의 검사들이 여기에 공감해 집단 성명이 꼬리를 물었다. 이정화 검사는 양심선언을 하고 법무차관과 서울중앙지검 1차장 등이 사표를 던졌다. 관건이던 법관 성향 문건은 곧바로 서류를 공개해 국민의 판단에 맡겨 버렸다. 오해와 선동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한 것이다. 윤 총장이 직무 복귀 후 검찰징계법 위헌 소송을 낸 것도 징계의 불공정성을 널리 알리는 묘수였다. 원전 사건 구속영장을 발부받은 것 역시 신의 한 수였다. 원전 사건이 정치적 수사가 아니었음을 공증받은 셈이다.

법조계 인사들은 문재인 정권이 윤 총장의 역량을 너무 얕잡아 본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윤 총장은 특수부 검사 출신이다. 특수부는 검찰 내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모여 대형 사건을 파헤치는 칼잡이 집단이다. 구체적 증거와 치밀한 법리로 상대방을 꼼짝 못 하게 만드는 싸움닭으로 커간다. 특수부는 다른 검사들과 달리 소송이 끝날 때까지 재판에 직관(직접 관여)하는 것도 차이점이다. 피고인 권력자나 자본가들이 최고의 변호사들을 동원하는 만큼 이에 맞서는 특수부 검사들도 법리적 내공이 깊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그의 지인들은 윤 총장이 국정원 댓글 수사로 고검에 좌천돼 오랫동안 유배 생활을 하면서 법리 내공이 더 깊어졌다고 전한다. 성찰의 시간을 가진 것이다.

윤석열 5전 5승 12/10

윤석열 5전 5승 12/10

비교되는 주변 참모들

양측의 주변 인물 차이도 도드라진다. 추 장관은 법무부에 발탁된 능력 있는 검사들을 대부분 패싱했다. 이들은 결국 양심선언을 하거나 지휘부 방침에 반발해 등을 돌렸다. 대신 추 장관은 자신과 운명을 같이할 극소수의 검사들과 은밀히 윤 총장 찍어내기 공작을 벌였다. 대부분 운동권 출신이거나 지연·학연으로 맺어진 폐쇄적 집단이다. 대개 검찰 내에서 2~3류로 주변을 떠돌다 정권 교체와 함께 벼락출세한 인물들이다. 법리보다는 충성심과 진영 논리로 똘똘 뭉쳐 무작정 밀어붙이다 보니 곳곳에 허점투성이였다.

이에 비해 이완규 변호사는 윤 총장과 서울대 법대 동문이자 사법연수원 동기다. 그는 문 대통령이 윤석열을 중앙지검장으로 발탁하자 검찰 내부 통신망에 “인사의 적법 절차를 어겼다”는 글을 올리고 옷을 벗었다. 대단한 악연이다. 그럼에도 윤 총장이 이 변호사와 손잡은 것은 그가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에 가장 밝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형사소송법연구’ ‘검찰실무’ 등을 저술하며 직권남용죄에 관한 한 국내 최고의 이론가로 꼽힌다. 그 덕분에 윤 총장은 연일 추 장관을 향해 날카로운 연타를 퍼부으며 그로기 상태로 몰고 있다.

정치 vs 법치의 대결

이번 사태에 임하는 추 장관과 윤 총장의 자세도 대조적이다. 여권 내부에선 “추 장관이 지나치게 자기 정치를 하다 일을 그르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차기 대선을 노려 친문 진영의 구애에 목을 맨다는 것이다. 그래서 친문의 목에 가시인 윤 총장의 목을 쳐 은쟁반에 받쳐 들고 진상하는 데 온통 신경을 쏟아붓고 있다고 혀를 찬다. 추 장관은 자신이 탄핵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사진까지 동원해 이미지 정치를 하고 있다. 추 장관의 진영논리에는 논리가 없다. 또 그의 눈에는 국민 정서는 안 보이고 친문 정서만 보일 뿐이다. 이러니 여론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반면 윤 총장은 31살 늦깎이로 사법시험에 합격하기까지 10년간 ‘신림9동의 전설’로 불렸다. 그만큼 검찰에 대한 애착도 남다르다. 그는 한때 검사를 그만두고 잠시 로펌 변호사로 활동하다 “검찰청 복도에서 문득 자장면 냄새를 맡고서 내가 있어야 할 곳은 검찰 조사실이라고 생각했다”며 복귀했을 정도다. 그는 술을 좋아하고 보학(譜學)에 능통하며 기억력도 뛰어났다고 한다. 말을 잘하는 달변가에다 주변을 잘 챙겨후배들이 끊임없이 따랐다고 한다. 이제 윤 총장은 전국 검사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다. 이미 개인의 유불리를 떠나 법치의 상징처럼 돼 버렸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윤 총장도 “이왕 이렇게 됐으니 끝까지 최선을 다해 보겠다”며 배수의 진을 쳤다고 한다.

공수처가 만능의 보검 될까

아직은 인파이터 추 장관이 아무리 창을 휘둘러도 아웃복서 윤 총장의 방패를 못 뚫고 있다. 오늘은 법무부 징계위원회가 열리는 운명의 날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주말부터 법무부 징계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는 분위기다. 이른바 투 트랙이다. 그 밑에는 추 장관의 무딘 칼날에 대한 불신이 어른거린다. 징계 사안이 안 되는데 무리하게 징계까지 몰고 갔다는 여론도 부담스런 분위기다. 만약 법원이 윤 총장의 해임 처분 무효 소송을 받아들이면 보통 낭패가 아니다. 그래서 민심 악화의 부메랑을 피하면서 원전·울산 시장 선거 수사를 막으려면 공수처를 빨리 발족시키는 게 더 낫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공수처가 만능의 보검이 될지는 의문이다. 2001년 발족한 부패방지위원회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2005년 국가청렴위원회로 개편되었다가 2008년 국민권익위원회에 흡수돼 폐지되었다. 그만큼 새 조직이 제자리를 잡기 힘들다는 방증이다. 공수처도 입법 과정에서 무리하게 되면 어떤 역풍이 불지 모른다.

여기에다 최강욱 열린우리당 대표는 “윤 총장 부부가 공수처 1호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거칠게 협박한다. 하지만 법조계의 시각은 다르다. 우선 윤 총장은 추미애 사단이 지난 1년 동안 탈탈 털었지만 나온 게 거의 없다. 그의 지인들은 윤 총장이 지난 10년간 극도로 주변을 관리해 왔다고 전한다. 특히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이후에는 칼날 위에 서 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공수처가 그를 1호 수사의 제물로 삼았다가 허탕 칠 경우 자칫 부패방지위처럼 존립 근거가 뿌리째 흔들릴지 모른다.

여기에다 새롭게 감안해야 할 변수가 생겼다. 윤 총장이 오차 범위 밖에서 대선 지지율 1위로 올라선 것이다. 이미 비슷한 선례도 있다. 1997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이 김대중 후보가 67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폭로하면서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하루 만에 전격적으로 비자금 수사를 중단하고 대선 이후로 미룬다고 발표했다. 자칫 대선에 영향을 미쳤다가 후유증을 걷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윤 총장도 함부로 찍어내기 힘든 위치로 올라가고 있다.

공수처 얻고 민심 버리나

문재인 정권은 윤석열의 덫에 빠졌다. 징계와 공수처라는 두 개의 칼을 휘두르며 정치적 도박에 나섰지만 과연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마지막 심판관은 민심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4번 위기를 맞았다. 각각 평양의 남북 정상회담(2018년 10월)-조국 장관 사퇴와 모친상에 따른 동정여론(2019년 10월)-코로나 사태(2020년 3월)-전광훈 목사의 광화문 집회(2020년 8월) 등의 반사이익으로 위기 탈출에 성공했다. 이젠 그런 특수를 기대하기 힘들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 등장으로 남북 이벤트는 물 건너갔고, 부동산값 폭등이라는 기저질환이 문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여기에다 윤 총장 측 싸움의 기술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도 큰 부담이다. 자칫 문 대통령은 공수처를 얻고 민심을 잃을 수 있다. 민심이 돌아서면 정권을 잃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