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소문 포럼

문재인 정부 뺄셈 정치의 귀결

중앙일보

입력 2020.12.10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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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재홍 기자 중앙일보 부데스크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다른 사람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은 외톨이가 되기 쉽다.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생각을 공유하는 가운데 인간관계는 발전한다. 정부와 국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시행하면 국민은 소외감을 느끼고 정부에 반감을 갖는다. 또 국민 의견을 듣지 않으면 탁상 정책이 만들어져 낭비와 비효율을 초래한다. 민주 사회에선 정부가 정책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 소통을 통해 국민이 정책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게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정부는 소통을 통해 지지층을 넓히고 정책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문 정부 집단사고에 지지율 추락
진보 인사도 속속 비판으로 돌아서
에코 체임버서 나와 현실 직시해야

문재인 정부는 지지층을 넓히려 하기보다는 내부 결집에 치중해 왔다. 집권 3년 반 동안 내 편, 네 편으로 가르며 국민 분열과 대립이 심해졌다. 집권 초반 매진한 적폐 청산은 지지층이 아니면 적폐로 몰아 단죄했다. 기득권의 반칙과 특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문 대통령의 약속은 자기편은 눈 감아 주고 상대편만 공격하며 공허한 울림이 됐다. 브라질의 독재자 제툴리우 바르가스의 “친구에게는 무엇이든지, 적에게는 법으로”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다.

문 정부는 과거 진보 진영의 전통과는 결별한 듯하다. 과거 진보 진영은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비판에 열려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문 정부는 조국(전 법무부 장관) 사태에서 보듯 자기편의 편법과 반칙에 관대하고,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다. 정부·여권과 다른 소리를 내는 내부자는 축출되거나 침묵을 강요당한다. ‘에코 체임버’(메아리 방)에 갇혀 지지층의 소리만 들을 뿐 다른 의견은 듣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국정 전반에서 관찰된다. 문 대통령이 지난 7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 희망을 피력하자 다음 날 더불어민주당은 법사위에서 야당의 비토권을 무력화하는 공수처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실체적 증거도 없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를 밀어붙이고, 대부분의 여당 의원은 추 장관의 막무가내 조처에 박수를 보낸다. 청와대의 원전 폐쇄 방침에 따라 월성 1호기 원전 조기 폐쇄가 무리하게 진행됐고, 이를 감사원이 감찰하자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내부 자료를 삭제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발생했다.

서소문 포럼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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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번의 대책에도 잡히지 않는 부동산 정책이나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윤미향 의원의 정의기억연대 후원금 횡령 의혹, 남북 대화에 치중한 비핵화 정책, 가덕도 신공항 추진 논란 등에서도 정부·여당의 폭주가 끊이지 않는다.

문 정부가 집단사고에 빠져 내부 비판이 실종되자 문 정부를 지지했던 진보 인사들이 속속 이탈했다. 진보학계의 원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조국 흑서’로 불리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쓴 권경애 변호사, 김경율 회계사,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등이 대표적이다.

문 정부 지지자들은 이들을 배신자라고 낙인 찍으며 공격하고 있다. 그러나 내부 논쟁을 통해 비판을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온 과거 진보의 전통을 배신한 건 오히려 문 정부라 할 수 있다.

진영 논리에 갇힌 문 정부는 국민의 외면을 받고 있다. 최근 갤럽과 리얼미터가 각각 조사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40%를 밑돌아 2017년 5월 취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콘크리트 지지율이라던 40%대가 깨진 건 진보층과 호남의 지지율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브렛 스티븐스는 지난달 16일자 칼럼에서 비판을 수용하지 않는 미국 진보 진영의 편협함이 ‘트럼프 현상’을 낳았다고 진단했다. 미국의 과거 진보 진영은 현실의 복잡성과 모호성, 회색 영역을 인정하고 비판에 열려 있었는데 새로운 진보는 인종이나 계급·성 같은 이분법 잣대로 모든 걸 재단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면이 많아졌고 이를 지적하는 진보 인사들은 적으로 돌렸으며, 진보의 편협함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은 트럼프 지지로 돌아섰다는 지적이다.

현대는 변동성(Volatile),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을 특징으로 하는 뷰카(VUCA)의 세계다. 에코 체임버에선 복잡다단한 현실에 대응할 수 없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엄마(Mutti) 리더십’이 주목받는 건 현실을 직시하는 솔직함을 통해 이념에 갇히지 않고 실용적인 해결책을 찾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성과를 내려면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인 방에서 나와 현실을 직시하는 게 첫걸음이다.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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