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도 푼다" "보너스 문제냐" 조롱 쏟아진 수능 한국사

중앙일보

입력 2020.12.09 17:00

업데이트 2020.12.09 17:43

지난 3일 오전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입실 전 시험실을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일 오전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입실 전 시험실을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겨우 이런 문제를 내려고 한 달 넘게 갇혀있어야 하나, 자괴감이 듭니다. 이런 수준의 시험을 언제까지 봐야합니까"(수능 한국사 출제위원 출신 A교수)

"역사교육 강화", "학습부담 축소"
'두 마리 토끼' 잡으려 절대평가로
역사교사 "이젠 아무도 공부 안해"
전문가들 "출제방식 재검토 필요"

코로나19 '3차 대유행' 중 치러진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가장 화제가 된 건 한국사 20번 문제였다. 수험생을 힘들게 하는 '킬러문항'(초고난도 문항)이 주목 받았던 예년과 달리 '너무 쉬워' 논란이 됐다. 역사 교사들은 절대평가 도입 후 한국사 시험의 수준이 너무 낮아졌다며 출제 방식 등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 모았다.

2021학년도 수능 한국사 영역 20번 문제 [사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21학년도 수능 한국사 영역 20번 문제 [사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입시업체 메가스터디에 따르면 올해 치러진 수능 한국사 20번의 예상 정답률은 96%다. 20번 문제는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1992년 발표한 담화문을 지문으로 제시하고, 이때 이뤄진 정책을 고르게 한 문제다. 5개의 보기 가운데 1~4번은 현대사와 관련이 없어서 노태우 정부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쉽게 답을 유추할 수 있다.

"한국사 몰라도 풀어…보너스 문제냐" 비판

2021학년도 수능 한국사 영역 1번 문제 [사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21학년도 수능 한국사 영역 1번 문제 [사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뿐만 아니다. 한국사 문제 중엔 정답률이 20번보다 더 높은 문제도 있다. 메가스터디에 따르면 한국사 1번은 예상 정답률이 98%다. 뗀석기를 사용한 시대의 유물을 고르라고 한 문제다. 정답인 1번 '주먹도끼'를 제외한 보기는 비파형 동검·덩이쇠 등 석기가 아닌 유물이다. 20번과 마찬가지로 3점짜리 문제다.

사실상 한국사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풀 수 있는 문제가 나왔다는 점 때문에 온라인 커뮤니티 등엔 "초등생도 풀 수 있는 문제", "보너스 문제"라는 조롱 섞인 지적이 쏟아졌다. 낮은 난이도 때문에 한국사 시험, 과목 자체가 희화화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수능을 출제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측은 한국사 난이도 논란에 대해 "출제 기본 방향에 충실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사 영역은 절대평가가 이뤄지기 때문에 교육과정만 충실히 이수했으면 풀 수 있도록 평이하게 출제하는 게 원칙"이란 설명이다.

"'수능 필수' 첫해부터 문제 수준 떨어져…학생 관심 낮아"

지난달 24일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4일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3년 교육부는 2017년 수능부터 한국사를 응시하지 않으면 수능 성적을 무효로 한다고 밝혔다. 선택과목이던 한국사가 고등학교에서 사실상 외면받는 현실을 개선하자는 국민 여론에 따른 결정이었다.

하지만 교육계 안팎에서 수능 과목 한 과목이 늘어남에 따라 그만큼 시험부담도 늘어난다는 지적이 나왔다. 때문에 이듬해 교육부는 수능 필수과목이 된 한국사를 절대평가 방식으로 출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당시엔 '두 마리 토끼(역사교육 강화+학습부담 축소)'로 보였지만, '공부하지 않아도 풀 수 있는' 문제 출제가 거듭되면서 학생들의 관심을 낮아졌다. 역사교사 남모(35) 씨는 "요즘은 학생들이 아예 한국사 교재를 사지도 않는다"면서 "이런 수준의 문제가 나오는데, 교실서 아이들한테 대체 뭘 가르치겠냐"고 하소연했다.

교사 김모(40)씨도 "필수과목이 되기 전엔 정말 역사에 관심 있거나 국사를 입시에 반영하는 서울대에 가려는 상위권 학생만 공부했다"면서 "그런데 오히려 절대평가가 된 후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과목이 됐다"고 말했다.

한국사의 변별력이 줄면서 입시에서의 영향력이 사실상 사라졌다. 현재 많은 주요 대학은 수능 한국사 1~4등급에 같은 점수를 주고 있다. 2017년 이후 한국사 4등급 이내 학생 비율은 매년 50% 내외다.

인증시험 대체·등급 기준 조정 목소리…"출제 과정 재검토해야"

성기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2021학년도 수능이 치러진 3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브리핑실에서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방향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성기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2021학년도 수능이 치러진 3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브리핑실에서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방향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전문가들은 출제 과정을 점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문제를 내면 다른 출제위원들과 함께 여러번 검토한다"면서 "이런 수준 이하의 문제가 3점짜리로 나왔다는 건 평가원의 검토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사 출제 경험이 있는 A교수는 "출제를 들어가면 초등학생도 풀 만큼 쉬운 문제를 내달라는 요구를 받는다"며 "쉬운 문제만 내게 할 게 아니라 변별력을 갖춘 높은 품질의 문제를 내는 방향으로 출제 기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절대평가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송호정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절대평가 제도를 유지하더라도 등급별 점수 기준을 높여서 학생들의 학습 의욕을 키워야 한다"며 "또는 별도의 인증시험을 통과하게 해서 수능을 대체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 하다"고 말했다.

남궁민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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