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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방역 아닌 ’백신 리더십‘···스타된 정상, 스타일 구긴 정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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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과정에서 세계 각국 지도자들의 리더십을 평가하는 기준은 '얼마나 효과적으로 확산을 막느냐'였다. 이른바 '방역 리더십'이다.

백신 성공적 확보·접종 이끄는 'V 리더십' 주목 #'분산 구매' 모리슨, '선제 확보·무료 접종' 아던 #'인구 1인당 구매량 1위' 트뤼도, "다음주 접종" #존슨 세계 첫 화이자 투여, 오바마 "라이브 접종" #선수 빼앗긴 트럼프, 자국 백신 안 맞는 푸틴

이제 영국을 시작으로 백신 접종이 본격화하면서 또 다른 기준이 주목받고 있다. 바로 성공적인 백신 확보와 접종을 이끌어가는 'V(백신) 리더십'이다. 체계적으로 백신을 확보하고 국민이 자발적으로 접종에 나서도록 설득하는 지도자가 있는 반면, 불안과 불신을 조장하며 체면을 구기고 있는 지도자도 있다.

8일부터 세계 최초로 화이자 백신 접종을 시작한 영국에서 간호사가 화이자 백신을 들어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8일부터 세계 최초로 화이자 백신 접종을 시작한 영국에서 간호사가 화이자 백신을 들어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스콧 모리슨 '백신 구매, 투자 포트폴리오 짜듯'    

“우리의 전략은 우리 국민이 (백신) 대기 행렬의 앞에 서도록 하는 것입니다.”

지난달 5일(현지시간)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백신 선제 구매에 나선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구매 순서대로 백신을 공급받을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국민을 오래 기다리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이날 호주 정부가 미국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개발한 백신 1000만회 분과 노바백스(미국) 백신 4000만회 분을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호주는 앞서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호주 퀸즐랜드대가 개발한 백신도 구매했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모리슨 총리는 이로써 호주가 4종의 백신 총 1억 3480만회 분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호주의 일일 신규 확진자 수는 10명 안팎이었다. 그런데도 인구(약 2550만 명) 1인당 5.3회분이란 넉넉한 양을 미리 확보해 놓은 것이다.

호주 정부는 체계적인 백신 구매를 위해 '분산 투자' 개념을 도입하기도 했다. 모리슨 총리는 제조 방식이 서로 다른 여러 종의 백신을 구매한 것에 대해 “우리는 모든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전문가들이 추천하면 백신을 추가 도입할 것"이라고도 했다. 어떤 백신이 더 효과적이고 더 안전할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다양한 백신을 구매해 위험을 줄이겠다는 뜻이다.

그는 2015~2018년 호주 재무장관을 지냈다. 그레그 헌트 호주 보건부 장관은 "호주는 '백신 포트폴리오'를 mRNA(화이자), 바이러스 벡터(아스트라제네카), 단백질 재조합(노바백스)으로 짰다"고 설명했다.

호주는 백신을 전 국민에 무료 접종할 계획이다. 호주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2만7984명(8일 기준)으로 한국(3만8755명)보다 1만771명 적다.

저신다 아던 '선제 확보, 무료 공급, 공개 접종'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신화통신=연합뉴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신화통신=연합뉴스]

'방역 모범국'으로 꼽히는 뉴질랜드의 저신다 아던 총리는 지난 4일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스스로 "백신을 공개적으로 맞겠다"고 말했다. "솔선수범을 보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면서다.

이어 그는 "백신을 확보하는 데는 돈이 든다. 하지만 (코로나로) 목숨을 잃거나 우리 경제가 입는 타격과 손실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백신을 모든 국민에게 무료로 접종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이를 위해 정부는 많은 돈을 비축했다"고도 했다. 뉴질랜드는 지난 10월 화이자 백신 150만회 분(75만 명분, 2회 접종)을 계약했고, 11월엔 미국 얀센(존슨앤드존슨 계열사) 백신 200만회 분(1회 접종) 구매와 300만회 분 추가 확보에 성공했다.

뉴질랜드는 이미 지난 5월 코로나 백신 확보를 위한 범정부 차원의 태스크포스(FT)를 꾸리고 백신 개발사들과 협상에 나섰다. 1차로 3700만 뉴질랜드달러(약 280억여원)를 투입해 '가능한 한 빨리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을 충분히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당시 뉴질랜드의 하루 확진자는 0~6명을 기록하던 때였다. 결국 인구 약 480만 명인 뉴질랜드는 총 650만회 분의 백신을 손에 넣었다.

이렇게 화이자 백신을 서둘러 확보한 뉴질랜드도 접종 시작은 내년 3월부터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아던 총리는 "개발사의 초기 공급 물량이 모든 사람에게 투약하기엔 모자라기 때문에 백신 접종까진 시간이 좀 걸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코로나 사태 전반에서 리더십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뉴질랜드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2085명이다.

'인구 1인당 확보량 1위' 트뤼도, '화이자 세계 첫 접종' 존슨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7일 기자회견을 열고 "화이자 백신이 긴급 사용 승인을 받으면 이르면 다음 주 첫 접종을 시작, 이달 안에 최대 24만9000회분을 접종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힘든 한 해였고 우리는 아직 이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이제 백신이 오고 있다"는 위로와 희망도 전했다.

캐나다는 국민 1인당 코로나 백신 확보량(9.5회분)에서 전 세계 1위다. 잠재 구매량까지 더하면 1인당 10.9회분으로 늘어난다. 인구 약 3770만 명인 캐나다는 지금까지 4억 1400만회 분(5600만회 분은 잠재 구매 물량)의 백신을 확보했다.

종류도 7가지나 된다. 임상 3상 결과가 나온 아스트라제네카·화이자·모더나 백신은 물론이고, 3상을 진행 중이거나 앞둔 얀센·사노피(프랑스)·메디카고(캐나다)·노바백스의 코로나19 백신도 샀다.

'백신 과잉 구매'라는 일각에 지적에 대해 트뤼도 총리는 “어떤 백신이 더 효과적인지, 어떤 백신이 먼저 도착하는지에 상관없이 국민에게 수천만 개의 백신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캐나다 역시 백신을 전 국민에 무료 접종한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8일 화이자 백신 접종 현장을 찾았다. [AFP=연합뉴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8일 화이자 백신 접종 현장을 찾았다. [AFP=연합뉴스]

영국은 지난 2일 세계 최초로 화이자 백신을 긴급 사용 승인한 데 이어 8일부터 접종을 시작했다. 영국 가디언은 이에 대해 “보리스 존슨 총리의 ‘정치적 승리’”라고 평했다. 존슨 총리가 영국 의약품건강관리제품규제청(MHRA)이 빠르게 코로나19 백신 긴급 사용 승인을 내릴 수 있도록 허용하는 규정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영국은 자국이 개발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포함해 총 7종의 백신을 구매했다. 인구 1인당 백신 구매량이 5.23회분으로, 캐나다 다음으로 많다. 또 존슨 총리는 백신에 대한 대중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백신 접종 장면을 생중계할 가능성도 있다.

'라이브 접종' 모범 보인 美 전직 대통령 3인방 

왼쪽부터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EPA=연합뉴스]

왼쪽부터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EPA=연합뉴스]

미국에선 버락 오바마, 조지 W 부시, 빌 클린턴 전 대통령들이 백신을 카메라 앞에서 접종하겠다고 밝혔다. 백신에 대한 대중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라이브 접종’을 자청한 것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한 방송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대중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방송에 출연해 백신을 맞거나 이 모습을 촬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시 전 대통령의 대변인 프레디 포드는 "우선 백신이 승인받고, 우선순위 그룹이 투여받은 뒤 (부시 전 대통령은) 기꺼이 카메라 앞에서 맞을 것"이라고 밝혔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대변인 앵겔 우레나도 "클린턴 전 대통령은 방역 당국이 정한 백신 접종 우선순위에 근거해 가능한 한 빨리 백신을 맞을 것"이라면서 "모든 미국인에게 접종을 권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공개적으로 접종하겠다"고 말했다.

7일 워싱턴포스트(WP)는 “백신 접종의 역사는 의학에 대한 공신력 형성이 과학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이러한 전직 대통령들의 공개 접종에 대해 "백신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높일 것”이라고 논평했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이달 10일 화이자 백신의 긴급 사용 승인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체면 구긴 정상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제약사가 개발한 화이자 백신에 대한 세계 최초 승인·접종이란 타이틀을 존슨 총리에게 빼앗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화이자 백신 임상 최종 결과가 대선 이후에 발표된 것에도 분노하면서 개발 성과가 자신의 공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EPA=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EPA=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8월 11일 러시아가 자체 개발한 백신 '스푸트니크 V'의 사용을 승인했다고 밝히면서 “내 딸도 접종했다”고 말했다. 3상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사용을 승인해 사람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려 한 것이다.

하지만 승인된 지 3개월이 넘고, 지난달 3상 결과 발표(면역 효과 95%)가 나왔지만, 정작 푸틴 대통령은 접종하지 않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CNN 등 외신의 지적이 잇따랐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연설에서 “나는 백신을 맞지 않겠다. 그건 내 권리”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나서서 백신에 대한 불신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브라질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662만여 명, 누적 사망자는 17만여 명에 달한다. 보우소나르 대통령은 마스크 착용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의견을 밝히다 지난 7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바 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백신 확보를 위해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7월 중국이 코로나 백신을 주면 필리핀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접을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또 지난 8월엔 러시아 백신에 대해 전폭적인 신뢰를 표명하면서 "내가 먼저 맞겠다"고 했다가 갑자기 내년 5월로 접종 시기를 미뤘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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