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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조국은 모세, 秋는 여호수아…신흥종교 된 檢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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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청새치. 노인이 항구를 돌아왔을 때 그 거대한 물고기는 상어 떼에 뜯어먹혀 앙상한 가시만 남은 상태였다. 검찰 개혁이 지금 딱 그 꼴이 되었다. 살이 모두 뜯겨나간 채 달랑 ‘공수처’ 하나 남았다. 앙상한 가시만 남은 그 물고기는 청와대 벽에 트로피로 걸려 각하의 개혁 위업을 후세에 전하는 데에 쓰일 예정이다.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환상의 공간에 사는 이들의 눈에는 #조국이 백성을 검찰 땅에서 해방시킨 모세로 #추미애는 약속의 땅으로 이끌 여호수아로 보일 게다 #그들은 공수처가 있는 가나안 땅에는 #젖과 꿀이 흐른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두 개의 검찰 개혁

우리가 생각하는 개혁 검찰의 상은 원래 이런 것이었다. “산 권력에 대한 수사와 기소도 주저하지 않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검찰, 누구를 어떻게 수사하고 기소할지 형사사법 절차와 관련해 정치적 통제에 좌우되지 않는 독립적인 검찰, 대배심제를 통해 기소권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받는 검찰, 구속제도 개혁을 통해 인질사법의 오명을 벗는 검찰.” (SBS 임찬종 기자)

하지만 이 모든 내용이 사라지고 검찰 개혁이 어느새 ‘윤석열 자르기’로 전락해 버렸다.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55%가 검찰 개혁이 “변질됐다”고 대답했다. 애초의 취지에 맞게 진행된다는 응답은 고작 28%. 대표적인 진보 매체마저 검찰 개혁을 ‘실패’로 단정했고, 검찰 개혁의 설계자 김인회 교수 또한 검찰 개혁을 “원점에서 다시 생각할 때”라고 말한다.

왜 이 꼴이 됐을까? 동상이몽이라고, 애초에 시민사회와 민주당이 생각하는 검찰 개혁의 상이 달랐기 때문이다. 시민사회가 원한 것은 (1)권력에서 독립한 중립적 검찰, (2)절제된 권한을 행사하고 ‘국민’의 감시를 받는 민주적 검찰이었다. 반면 문재인 정권이 원한 것은 독립성을 고집하지 않고 자신들의 통제에 순순히 따르는 그런 검찰이었다.

그럴 만도 하다. 고 정두언 의원의 증언에 따르면 MB정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구속에 반대했으나, 이인규·우병우 등 검찰 중수부에서 구속을 고집했단다. 이 원체험 때문에 검찰의 ‘독립성’ 자체를 위협으로 여기게 된 모양이다. 그래서 “선출된 권력”임을 내세워 “민주적 통제” 운운하며 억지로 검찰을 길들이려고 무리수를 두는 것이리라.

실패한 검찰 개혁

퍼스펙티브 12/9

퍼스펙티브 12/9

이 정권은 실은 진정한 검찰 개혁에는 관심이 없었다. 검찰권의 과도함을 문제로 봤다면 애초에 특수통인 윤석열을 기용하지 말았어야 한다. “적폐 청산”의 칼을 든 그에게 검찰권의 절제된 행사를 주문한 이는 없었다. 그들은 외려 철저한 수사로 전직 대통령을 구속시킨 공로를 높이 평가해 기수까지 파괴해가며 그를 검찰총장 자리에 앉혔다.

개혁의 취지 중에서 남은 것은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인데, 그마저 무너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살아 있는 권력에도 칼을 대라”고 호기를 부리더니, 정작 검찰의 날이 자기들을 향하자 온갖 트집을 잡아 총장을 내치려 한다. 개혁의 두 기둥이 모두 무너진 것이다. 그 결과 검찰 개혁은 ‘윤석열 파면’의 동의어가 되어 버렸다.

추미애 사단의 검사들은 이 정권이 원하는 검찰 개혁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증거도 없이 무리한 수사를 벌이고, 상관에게 독직폭행을 가하고, 총장을 음해하기 위해 계통과 절차를 무시하고 하나회처럼 움직인다. 심지어 총장 부인의 통화 내역까지 들여다봤단다.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이 정권에서 원하는 개혁 검찰의 상을 보게 된다.

사실 윤 총장은 검찰 개혁에 저항한 적이 없다. 공수처 설치 등 제도적 개혁은 원래 입법부 소관이고, 검찰 인사는 어차피 장관 맘대로 했으니 그에겐 저항의 기회조차 없었다. 그는 외려 부하들에게 개혁에 적응할 것을 촉구해 왔다. 그가 했다는 ‘저항’이란 결국 권력 비리 수사를 중단하라는 지시를 거부한 것이었다. 이게 ‘개혁’에 대한 저항이던가?

‘검찰개혁교’의 성도들

여당의 원내대표는 윤 총장이 “살아 있는 권력이 아닌 검찰 개혁에 맞서다가” 징계위에 회부된 것이라 주장한다. 검찰 개혁이 실패했다고 보는 55%에게 한 말은 아닐 터, 이 거짓말은 아직도 개혁을 믿는 28%만을 위한 것이리라. 이들 콘크리트 지지층은 종교적 감수성이 남달라 검찰은 악마요, 추미애는 주의 전사 ‘추다르크’라 굳게 믿는다.

드디어 십자군의 공세가 시작됐다. “윤석열을 파면하라. 국민은 추미애를 응원한다.” 어용 매체들이 지원사격을 하고, 어용단체가 총장을 잡으려 저격수로 나섰다. 초선 의원이 법관들의 봉기를 촉구하자 몇몇 판사가 그 부르심에 응했다. 일부 종교인들도 ‘검찰 개혁=윤석열 해임’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왜들 요란하게 바람을 잡는 걸까?

그럴 만도 하다. 법원에서는 윤 총장이 신청한 집행정지를 인용했다. 감찰위에서는 윤 총장에 대한 징계가 부당하다고 의결했다. 법관회의에서는 이른바 ‘사찰’ 안건을 부결시켰다. 징계에 필요한 합리적 사유가 모두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신앙은 이성을 초월한다. 성서에 이르기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라 하지 않았던가.

징계의 사유는 없어도 징계위는 열린다. 과연 믿음은 그들에게 바라는 것의 실상을,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해임의 증거를 보여주었다. 그 증거가 무려 여섯 가지란다. 그 재판은 세속의 증거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 신성한 증거 앞에서 세속의 법률과 절차는 어차피 효력을 잃는 법. 재인천국 불신지옥. 이 성스러운 믿음 앞에선 헌법마저 무력하다.

약속의 땅 공수처

나라 꼴이 엘 그레코의 그림을 닮아간다. 이 16세기의 화가의 그림에는 한 화면에 두 개의 공간이 병존한다. 하나는 세속의 물리적 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신학적 환상의 공간이다. 이 나라 백성들은 이미 두 개의 공간에 나뉘어 살고 있다. 55%는 법의 지배를 받는 세속의 공간에, 28%는 정치신학이 지배하는 환상의 공간에.

환상의 공간에 사는 이들의 눈에는 조국이 백성을 검찰 땅에서 해방시킨 모세로, 추미애는 그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이끌 여호수아로 보일 게다. 그들은 공수처가 있는 가나안 땅에는 젖과 꿀이 흐른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믿음의 근거가 뭐냐고 따져 물어야 아무 소용이 없다. 그들의 믿음은 어차피 이성에서 나온 게 아니니까.

그들의 머리는 정치신학적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에게 윤 총장은 파라오요, 검사들은 그들을 이집트의 병사들, 공수처에 반대하는 이들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물리쳐야 할 아말렉의 군대다. 그들은 믿음을 공유하지 않는 이교도들에게 혐오와 증오를 표출한다. 이교도는 밖에만 있는 게 아니다. 신앙촌 안에도 이단은 존재한다.

며칠 전 유튜브 탁발승 김용민이 나꼼수 동료였던 주진우를 종교재판에 넘겼다. 주 기자가 은밀한 사탄(윤석열) 숭배자란다. 신학 전공자답다. 주 기자는 울먹이며 결백을 호소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사함을 받지는 못했다. 원래 신학적 성격을 띤 의심은 쉽게 풀리는 게 아니다. 그가 윤 총장 사진을 밟고 지나간들 그들은 의심을 풀지 않을 것이다.

종교와 정치의 중첩

곧 열릴 징계위도 이 종교재판과 다르지 않다. 심의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결론이 내려져 있음을 우리는 잘 안다. 그 어떤 세속의 증거나 변론도 신이 석판에 새겨주신 여섯 혐의를 반박하지는 못한다. 종교재판은 원래 그런 것이다. 손을 묶어 물에 던져 익사하면 신의 버림을 받았으니 마녀인 것이고, 용케 헤엄쳐 나오면 악마의 도움을 받았으니 마녀인 것이다.

이 나라에는 정치와 종교의 중첩 상태에 사는 두 부류의 집단이 존재한다. 사랑제일교회와 민주당이다. 증상은 비슷하나 경로는 상이하다. 전광훈 목사가 신앙생활을 정치활동으로 바꾸어 놓는다면, 민주당 사람들은 정치활동을 신앙생활로 바꾸어 놓는다. 그 결과 ‘검찰 개혁’은 공수처를 섬기는 신흥종교가 되었다.

검찰이 악이라면 공수처는 왜 선인가. 검찰은 통제가 안 되는데 같은 공수처는 왜 통제가 되는가. 검찰이 권력의 개라면 공수처는 왜 개가 아닌가. 한 자루의 칼이 무서운데 왜 두 자루의 칼은 무섭지 않은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제도가 왜 이 나라에만 필요한가. 이런 이성적 질문을 던진 이는 이단으로 몰려 추방되었다.

이른바 ‘검찰 개혁’의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의 비리에는 손도 대지 말라는 것이다. 권력은 이 추잡한 세속적 욕망에 용케 성스러운 종교적 광휘를 뒤집어씌웠다. 그 광휘에 뒤에 숨은 욕망을 보지 못하고 성도들은 최후의 결전에 나선다. 종교적 열정은 교회에 가서 해소하고 정치는 맨정신으로 하면 안 되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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