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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수 있는 건 ‘동작 그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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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창규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김창규 경제 디렉터

김창규 경제 디렉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된 8일 오전. 집을 나와 전철역으로 향했다. 거리는 전주보다 한산했다. 하지만 전철역으로 들어서니 전과 다를 바 없이 사람들로 붐볐다. 몇 분 후 전동차에 몸을 실었다. 발 디딜 틈이 없다. 주변 사람과 몸이 닿지 않게 하려고 발버둥(?)쳤지만 뒤에서 밀고 들어오는 사람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닿는 부위를 최대한 줄이려고 몸을 움츠러뜨렸다. 등에선 땀이 주르륵 흘렀다.

‘풀고 조이고’ 반복된 거리두기 #예측할 수 없는 정부 방역 탓 #소상공인·자영업자 초토화돼

몇 정거장 지나니 공간이 넉넉해졌다. 자리에 앉아 있는 승객을 보니 7명 중 6명은 휴대전화를 뚫어지라 보고 있었다. 애써 주변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했다. 5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은 전동차가 움직일 때마다 고개가 좌우로 흔들릴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 있다. 고단한 직장인의 하루가 묻어난다.

갈아타기 위해 다른 노선으로 향했다. ‘어 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정거장마다 2~3명씩 줄 서 있었다. 잠시 후 전동차 문이 열리자 사람이 와르르 쏟아져나왔다. 몇 정거장을 더 가니 자리가 났다. ‘앉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자리에 앉았다. 피곤함이 거리두기를 눌렀다. 옆자리에 앉은 여성과 남성은 두꺼운 외투가 서로 닿지 않을까 조심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된 첫날 풍경은 여느 출근길과 다르지 않았다. 코로나19 확산에도 재택 근무가 어려운 보통 사람은 ‘사회적 거리두기’도, ‘집에 머무르기’도 여의치 않다. 전동차 안에선 2m는 고사하고 30cm 거리두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도 이들은 마스크와 세정제로 중무장하고 주변 사람과 접촉을 최대한 자제한다.

서소문 포럼 12/9

서소문 포럼 12/9

고 3 수험생 자녀를 둔 사람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과 관계를 끊은 채’ 몇 달씩 ‘혼밥’을 하거나 자신의 방에서 자발적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회식 등이 사라진 직장인은 ‘랜선 회식’ ‘랜선 송년회’를 하거나 ‘혼술’을 하며 외로움과 싸운다. 피트니스 센터에 갈 수 없는 사람은 ‘홈 트레이닝’을 하며 날마다 솟아오르는 뱃살과 전쟁을 치른다. 어떤 회사에서는 직원 간 접촉 자체를 없애기 위해 몇 달째 모든 직원이 도시락만 시켜 먹기도 한다. 마스크 한 겹으로 주변과 담을 쌓으며 어떻게든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이겨보려는 노력이 눈물겹다.

하지만 지쳤다. 벌써 11개월째다. 올 1월20일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발생한 후 초기엔 코로나19 확산세가 더뎠다. 국민이 방역수칙을 잘 따른 덕에 모범이 될 정도라며 ‘K 방역’이란 표현까지 나왔다. 이때 많은 사람이 희망을 가졌다. 조금만 고생하면 코로나19를 물리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그 후에 확진자가 줄었다 늘었다를 쉴 새 없이 반복했다. 확진자가 줄면 정부는 소비 진작을 위해 활동하도록 유도했고 확진자가 늘면 활동을 줄이도록 ‘동작 그만’을 외쳤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국에 퍼져 있는 상황에서 어중간하게 규제를 풀었다 조였다를 반복한 것은 오히려 코로나 확산세와 불안감만 증폭시켰다. 전염성 강한 바이러스가 사라지지 않는 한 코로나19는 언제든 창궐할 수 있어서다. 강력한 방역으로 확진자 0명의 행진을 벌이고 있는 대만과 대조된다.

모든 국민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가 없게 됐다. 확진자가 늘면 정부는 며칠 뒤부터 ‘○○업종’을 문 닫아야 한다는 식의 발표를 되풀이했다. 가장 큰 타격은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인 서민에게 갔다. 사업이 다 그렇지만 자영업은 언제, 얼마만큼 사업을 할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맞춰 재료도 준비하고 종업원도 고용하며 건물을 빌리기도 한다. 하지만 짧게는 2~3주, 길게는 2~3달마다 반복되는 ‘동작 그만’에 자영업과 소상공업은 말 그대로 초토화됐다. 서울 명동 등 주요지역에선 폐업이 속출한다. 실내 체육시설이나 학원은 환불 요구가 빗발친다. 이들은 차라리 일정 기간 아예 영업하지 말라고 했다면 피해는 크지 않았을 것이라고 울상이다. “확진자가 늘 때 동작 그만을 외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볼멘소리도 한다.

정부는 서민경제를 최우선으로 두고 거리두기 단계를 보수적으로 조정한다는 입장이었다. 코로나19 방역이 서민경제를 중시한다면서 서민 경제부터 나락에 빠뜨린 건 아이러니다. 코로나19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건 발생 초기에나 통하는 변명이다. 국민도, 경제도 지쳤다. 국민이 예측할 수 없게 하는 건 정책이 아니라 횡포다.

김창규 경제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