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건조정제도, 날치기 방지법" 7년전 이랬던 민주당의 독주

중앙일보

입력 2020.12.08 17:27

업데이트 2020.12.09 15:59

“안건조정제도는 여당이 다수로 날치기 하는 것을 막기 위한 말 그대로 국회선진화법입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3월 5일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원내대책회의에서 안건조정위원회의 의미를 강조했다. 여당인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에 대화와 타협을 요구하면서다. 당시 과반 의석을 차지했던 새누리당이 경제부총리 부활 및 미래창조과학부·해양수산부 신설 등의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일방 처리하려 하자 민주당은 안건조정제도를 활용해 이를 막아섰다. 그러자 새누리당은 안건조정제도를 “소수파 발목잡기법”(심재철 최고위원)이라 비판하며 제도 자체를 고쳐야 한다고 맞섰다.

2011년 11월 한미 FTA비준안 상정을 막기 위해 국회 외통위 회의실 봉쇄를 시도하는 민주당과 이를 막는 국회 경위들 간 몸싸움이 벌어졌다. 18대 국회의 이같은 모습은 '동물국회'란 비판을 받으며 2012년 안건조정제도 등의 내용이 담긴 국회선진화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중앙포토

2011년 11월 한미 FTA비준안 상정을 막기 위해 국회 외통위 회의실 봉쇄를 시도하는 민주당과 이를 막는 국회 경위들 간 몸싸움이 벌어졌다. 18대 국회의 이같은 모습은 '동물국회'란 비판을 받으며 2012년 안건조정제도 등의 내용이 담긴 국회선진화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중앙포토

2012년 '국회선진화법'의 일부로 도입된 안건조정위원회(국회법제57조의2)는 상임위원회에 올라온 법안에 대한 이견을 조율하기 위한 일종의 이의 신청 기구다. 상임위 재적위원 3분의 1 이상 동의하면 특정 법안에 대한 안건조정위원회를 열어야 하고, 최장 90일까지 법안 처리를 지연시킬 수 있다. 안건조정위는  여야 동수(각 3명)로 구성되고 위원 3분의 2(4명) 이상 찬성으로 법안을 의결한다.

안건조정위 놓고 7년 만에 공수 교대

8일 오전 국회 법사위 안건조정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에 항의하고 있는 국민의힘 의원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안건조정위를 거쳐 전체회의를 열고 공수처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뉴스1

8일 오전 국회 법사위 안건조정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에 항의하고 있는 국민의힘 의원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안건조정위를 거쳐 전체회의를 열고 공수처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뉴스1

여야가 교대되면서 안건조정제도를 둘러싼 거대 양당의 입장은 7년 만에 180도 뒤바뀌었다. 이번엔 법제사법위원회와 정무위원회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과 경제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등에 대한 강행 처리 시도를 국민의힘이 이 제도로 막아섰다. 7년 전 안건조정제도의 의미를 강조했던 박범계 의원은 이날 법사위 안건조정위원으로 참여해 공수처법 개정안 일방 처리의 주역이 됐다.

안건조정위를 무력화하는 기술은 한층 발전했다. 8일 민주당은 법사위에 야당 몫 안건조정위원으로 최근 사보임으로 법사위원이 된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를 끌어들였고 '여야 동수'의 걸림돌을 피했다. 최 대표는 안건조정위원으로 지명된 전날부터 민주당에서 "히든 히어로"(김용민 의원)로 불렸다. 안건 조정은 90일이 아니라 90분만에 종결됐다. 이후 법사위 전체회의 상정과 의결은 일사천리였다.

지난해 6월 소방공무원 국가진 전환 법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위원들. 행안위는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요청으로 해당 법안에 대한 안건조정위원회를 열었다. 뉴스1

지난해 6월 소방공무원 국가진 전환 법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위원들. 행안위는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요청으로 해당 법안에 대한 안건조정위원회를 열었다. 뉴스1

공수처법 의결은 여야가 팽팽히 맞섰던 지난해 6월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 관련 법안 처리 때보다 훨씬 손쉬운 과정이었다. 당시 행정안전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는 더불어민주당에선 홍익표·김민기·이재정 의원이, 야당 몫으론 각각 자유한국당 이채익·윤재옥 의원과 바른미래당 권은희 의원이 임명돼 외관상으로 이날 법사위보단 더 팽팽한 구도였다. 그러나 결국 권 의원이 민주당과 손잡으면서 자유한국당의 시도는 무력화됐다. 이날 최형두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개정안 의결 직후 논평을 통해 “안건조정위원회는 여야의 쟁점이 팽팽할 때 여야 동수 3:3으로 최장 90일간 숙의하도록 한 것인데 민주당은 이 원칙조차 짓밟았다”고 지적했다.

정무위, 사참위법에 대한 안건조정위원회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8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사참위법에 대한 안건조정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2020.12.8   zji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정무위, 사참위법에 대한 안건조정위원회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8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사참위법에 대한 안건조정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2020.12.8 zji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반면 이날 정무위에선 안건조정위가 변수가 됐다. 8일 배진교 정의당 의원이 안건조정위원으로 참여하면서다. 배 의원은 이날 안건조정위 첫 법안인 사회적참사진상규명법(사회적참사법)부터 반대 의견을 명확히 했다. 사회적참사법에서 조사관에게 특별사법경찰관 지위를 부여해 수사권을 부여하는 내용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법사위의 '히든 히어로'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당초 민주당은 이 법안을 포함해 3개의 법안을 30분 간격으로 안건조정위에 올린 뒤 오후 2시에 전체회의 의결을 시도할 예정이지만 배 의원이 버티면서 사회적참사법은 오후 4시45분에야 안건조정위 문턱을 넘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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