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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어머니 살려주세요" 멕시코서 날아온 편지 한통의 기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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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어머니를 살려주세요. 폐이식이 꼭 필요합니다”

멕시코에 사는 교민 김충영(55)씨는 지난 6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멕시코시티의 ABC 병원에 입원했다. 3일 만에 폐렴이 악화한 김씨는 패혈성 쇼크 진단을 받았고 현지 의료진은 김씨 가족에게 치료가 어려우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건넸다. 김씨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폐이식뿐이었지만 현지에서는 수술이 불가능했다. 김씨의 아들 정재준(34)씨는 절박한 마음으로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에게 메일을 보냈다.

메일을 본 서울아산병원 폐이식팀은 멕시코 현지 의료진과 연락해 김씨의 상태를 파악했다. 폐이식 진행 가능성과 수술 후 회복 가능성이 낮은 상태였지만 김씨의 가족은 에어 앰뷸런스 전문 업체를 이용해 김씨를 이송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주멕시코 한국대사관도 이송 절차를 도왔다.

멕시코에 사는 김충영(55)씨는 지난 6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뒤 폐 기능이 손상돼 생명이 위독하다는 통보를 들었다. 김씨의 아들은 서울아산병원으로 메일을 보냈고 안전히 김씨를 우리나라로 옮겨 폐이식 수술에 성공했다. 제공 플라인닥터스

멕시코에 사는 김충영(55)씨는 지난 6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뒤 폐 기능이 손상돼 생명이 위독하다는 통보를 들었다. 김씨의 아들은 서울아산병원으로 메일을 보냈고 안전히 김씨를 우리나라로 옮겨 폐이식 수술에 성공했다. 제공 플라인닥터스

지난 8월 김씨는 에크모(ECMO,인공심폐기)와 산소호흡기에 의존한 채 크리스터스무구에르사병원 소속 의료진 2명과 함께 멕시코 몬테레이 공항을 출발했다. 캐나다 밴쿠버공항, 알래스카 앵커리지공항, 러시아 캄차카공항을 거쳐 24시간의 비행 끝에 8월 9일 오전 4시쯤이 돼서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후 김씨는 바로 폐이식 대기자로 등록했지만 수술을 바로 할 수는 없었다. 폐이식은 뇌사자 기증 폐가 나오더라도 항원·항체 반응 검사를 통해 수혜자에게 맞는 폐인지 거부반응 여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계속 이식 거부반응을 보이던 김씨는 9월 11일에야 이식 가능 판정이 나왔다.

20여명의 의료진이 10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한 끝에 김씨는 폐이식에 성공했다. 이후 폐기능이 예상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 했지만 적절한 중환자 치료와 재활치료를 받은 김씨는 8일 퇴원할 수 있었다. 제공 서울아산병원

20여명의 의료진이 10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한 끝에 김씨는 폐이식에 성공했다. 이후 폐기능이 예상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 했지만 적절한 중환자 치료와 재활치료를 받은 김씨는 8일 퇴원할 수 있었다. 제공 서울아산병원

20여명의 의료진이 10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한 끝에 김씨는 폐이식에 성공했다. 이후 폐기능이 예상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 했지만 적절한 중환자 치료와 재활치료를 받은 김씨는 8일 퇴원할 수 있었다. 김씨는 “멕시코에서 코로나19에 걸린 후 폐렴과 패혈증, 폐섬유증까지 생겨 삶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가족과 서울아산병원 폐이식팀 의료진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폐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며“다시 태어난 것 같은 감격과 가족과 모든 의료진에게 감사한 생각뿐이다”고 밝혔다.

아들 정씨는 “폐이식 진행이 불가능한 멕시코에서 다시는 어머니를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매일 지옥 같았다”며 “다시 건강을 회복하고 있는 어머니를 보니 꿈만 같다. 폐이식팀 의료진들의 따뜻한 마음이 깜깜했던 우리 가족의 앞날을 다시 밝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폐이식팀이 2008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폐이식을 받은 환자 130명 이상을 분석한 결과 5년 생존율은 62%로 세계적인 수준이었다. 1년, 3년 생존율도 각각 78%, 67%로 그동안 간이나 심장 등 타 장기보다 생존율이 낮아 이식수술을 망설였던 말기 폐부전환자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충영씨(가운데)가 서울아산병원 폐이식팀 의료진들과 입국 100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제공 서울아산병원

김충영씨(가운데)가 서울아산병원 폐이식팀 의료진들과 입국 100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제공 서울아산병원

수술을 집도한 박승일 흉부외과 교수는 “멕시코에서 코로나19 후유증에 의한 폐 섬유화로 에크모에 의존하며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재외국민을 고국에서 폐이식으로 살리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 메일 한 통이지만 환자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과 가족들의 강한 의지가 만나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칠 수 있었고, 김씨는 현재 건강을 회복해 일상으로 돌아갈 예정이다”고 밝혔다.

홍상범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김씨는 이송 당시 워낙 위중한 상태였지만 폐이식 수술 후 환자와 모든 의료진의 철저한 관리를 통해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특히 폐이식 후 중환자실과 병동에서 모든 간호사의 팀워크가 있었기에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 앞으로도 폐이식팀은 팀워크와 유기적인 다학제 시스템 구축으로 폐이식 환자들의 질 높은 통합관리를 이어가며 생존율을 높여갈 것이다”고 말했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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