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베리아반도 최남단 스페인 끝 영국령 지브롤터가 세계 젊은이들의 '웨딩 핫스팟'으로 떠올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유럽 국가들의 관공서가 문을 닫으며 혼인신고를 할 수 없게 되자, 마음 급한 커플들이 '초스피드 결혼'을 위해 이곳에 온 탓이다.
8일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결혼을 위해 지브롤터를 찾은 외지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혼인신고에 최소한의 절차를 요구하고, 다른 지역보다 국경제한이 적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독일·프랑스 등 유럽 다른 나라는 혼인신고를 위한 최소 거주요건으로 2~3주가 소요된다. 하지만 이곳에선 '단 하룻밤'이면 된다. 외국인 여행객의 자가격리 기간도 단 5일뿐이다.
현지 웨딩플래너 레샴 마흐타니는 "지브롤터는 공공장소에서의 마스크 사용 의무화 등 사교 모임 제한조치가 다른 곳보다 엄격하지 않아 스페인 등 이웃 지역에서 많은 커플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지브롤터는 울릉도의 약 10분의 1 면적인 6.8㎢에 불과한 섬이다.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기원후까지도 유럽·아시아·아프리카의 여러 민족이 쟁탈전을 벌인 격전지였다. 비틀스의 존 레넌과 부인 오노 요코가 1969년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린 바 있다.
아일랜드 더블린에 거주하는 사진작가 브루노 미아니(40)는 지난달 여자친구 나탈리아와 이곳에 찾아 혼인신고를 마쳤다. 미아니는 "지금 결혼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지브롤터에 가는 것"이라며 "이미 부부로 함께 살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만들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지브롤터의 웨딩플래너들도 불현듯 찾아온 호황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현지 웨딩 이벤트업체 이사 린 힌들은 "우리는 충분한 결혼공간을 확보하지 못할 지경"이라고 밝혔다.
이곳에서 치러지는 결혼식은 대부분 여행제한으로 서로의 나라를 찾지 못하는 롱디(장거리 연애) 커플들이다. 힌들은 "일반적으로 합법적으로 혼인신고를 해야 연인을 자국에 데려올 수 있다"며 "혼인신고를 하지 않으면 아이를 낳는 데 필요한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결혼이 절실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미국인 여성 스콧 제로(41)도 이달 초 지브롤터의 식물원에서 러시아인 남자친구와 결혼식을 올렸다. 이제 '혼인 증명'을 할 수 있게 돼, 남편이 된 그와 미국에 입국할 수 있게 됐다. 제로는 "지브롤터에서 결혼하지 못했다면, 우린 여전히 화상채팅으로 대화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브롤터 당국도 등기소에서 결혼식 행사를 치르는 횟수를 늘리고, 야외행사장을 확대하는 등 수요급증에 대응해왔다. 파비안 피카르도 지브롤터 수석장관은 "지브롤터가 분단의 장소가 아닌, 사랑의 장소로 알려지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