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잠재적 피의자 분들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조강수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조강수 사회에디터

조강수 사회에디터

대선 주자급 유력 정치인 곁에는 인간군상들이 몰려든다. 그 중엔 유독 오랜 성상을 주군과 함께하며 열과 성과 땀을 다해 보좌해온 측근이 있다. ‘집사’ ‘가신’ ‘충복’ ‘실장님’ 등이 귀에 익은 호칭이다. 이들은 행정부나 국회 고위직을 굴비 꿰듯 해온 어르신을 위해선 궂은일도 마다치 않는다. ‘조직이 아니라 사람에게 충성’하는 게 특징이다.

정치인과 최측근은 공생관계 #수사 막으려 홀로 떠안고 가기도 #사람 아니라 조직에 충성해야

코로나19 밀접접촉자로 지정돼 자가격리 중 섭렵한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충성파 보좌관의 대표자를 발견했다. 권력 욕구가 충만한 그의 상전 부부는 책략, 권모술수는 기본이고 추잡한 범죄까지 저지르며 권력의 정점을 탐한다. 상전이 하원 원내부총무를 거쳐 부통령·대통령이 되는 동안, 그는 낮에는 의원들 약점을 캐고 으르거나 상전의 지역구 골칫거리들을 해결한다. 밤에는 뒷골목을 다니며 성가신 존재들을 처리한다. 도청, 미행, 납치·감금을 넘어 살인도 버젓이 저지른다. 백악관 수석보좌관에까지 동반상승한다. 가끔 죄책감에 시달리긴 하지만 상전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게 나라를 위한 길이라고 합리화한다. 상전의 성취를 공동 작품으로 인식하며 대리만족한다. 그렇게 정치권력의 동업자가 된다.

마지막 미션은 살인 용의자로의 변신이다. 상전은 여기자 살인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쟁점 자체를 뿌리째 뽑아버려야 한다”며 살인을 자백해 용의자가 되달라고 권리인 양 주문한다. 보좌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즉시 실행에 옮긴다. 나를 믿어줘서 고맙다는 듯이.

이 장면엔 현실이 일부 반영돼 있다. 다만 현실의 출연자들은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 같은, ‘악의 화신’까지는 아니다. 죄질이 그리 중한 것도 아닌데 검찰 조사를 받다가 극단적 선택에 이르는 경우가 끊이지 않는 건 왜일까. 셋 중 하나일 확률이 높다. ‘진짜 억울하다고 생각하거나, 치부가 드러나 참을 수 없이 부끄럽거나, 내가 지고 갈 테니 이쯤에서 끝내라는 몸짓이거나.’

이 정부 들어 검찰 출두를 1시간 앞두고 숨진 변창훈 부장검사, 적폐 장성으로 찍혀 고층 빌딩에서 몸을 던진 이재수 기무사령관은 억울함에 욱여 들어오는 수사의 칼날을 견디기 힘들었던 쪽이다. 개별적 사유로 막다른 골목에 몰렸던 노무현 대통령, 노회찬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에겐 다른 출구가 없었던 것 같다. 스스로가 권력자였기 때문이다.

서소문 포럼 12/8

서소문 포럼 12/8

며칠 전 여당 대표실 부실장의 부고에선 "내가 책임진다”는 동업자 의식이 엿보인다. 지인들은 고인이 술자리에서 “그분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 끝까지 의리를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고 기억했다. 부실장은 6년 전엔 ‘당비 대납 사건’의 책임을 지고 실형을 살고 나왔고 출소 후 수개월 만에 ‘정무특보’로 중용됐다고 한다. 여당 대표는 그를 “20년 동지”라고 애도했다. 권력의 상부와 하부를 분담 공유하는 정치권력의 동업자라는 뜻이다. 결국 검찰이 계좌추적 과정에서 비정상적 자금의 흐름을 파악했고 수사의 칼끝이 윗선을 향하자 방패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 희망의 상실에 좌절하고 주군 보호를 명분 삼아 극단적 선택을 했을 것이란 얘기다.

권력형 동업자들의 비극은 이 정부 들어서도 멈춰지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에 연루된 청와대 민정수석실 수사관이 숨졌다. 올해 6월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과의 정의기억연대 회계 부정 사건으로 압수수색을 받았던 마포쉼터 소장도 그랬다.

‘추미애·윤석열 전쟁’ 또한 청와대 주인이 대리인으로 파견한 ‘무절차’ 장관과 그의 인사권 행사로 줄 세워진 검찰 내 동업자들이 짬짜미해서 총장 권력을 박탈하려다 벌어진 ‘검찰 사화(士禍)’ 아닌가. 피의자의 극단 선택은 진상 규명을 지연시키고 생명 존중이라는 공동체의 가치를 위협한다. 의리를 지켜 ‘사람에게 충성하는 것’은 봉건시대의 미덕일 뿐이다. 죄의식 없이 실행한 일이라도 위법성이 적발됐다면 진상을 밝히고 죗값을 치르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도리다.

내가 영원히 입을 닫는 길을 선택한다 해도 진실은 언젠가 드러난다. 정권이 한 번만 바뀌어도 모든 과거사가 다시 수사선상에 오르게 됨을 3년여의 촛불정부 궤적이 웅변하고 있지 않은가. 잠재적 피의자분들께 호소한다. 극단적 선택은 아니다. 님이 숨져서 반사이익을 얻는 건 동업자들뿐이다. 그마저 오래 안 간다. 나라 형편 나아지지 않는다. 힘들더라도 삶의 편에 서서 버텨라. 새벽은 온다.

조강수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