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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회복 신호? 유동성 랠리? 구리·알루미늄·철 다 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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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경기 선행지표인 구리·철광석 등 광물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사진은 호주의 철광석 광산. [로이터=연합뉴스]

경기 선행지표인 구리·철광석 등 광물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사진은 호주의 철광석 광산. [로이터=연합뉴스]

광물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조금씩 기지개를 켜는 경기 회복의 조짐에 증시 투자가 부담스러운 투자자가 원자재 시장으로 몰려들면서 구리와 니켈·철광석 등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경기 선행지표 광물시장 오름세 #구리 올해 최저점 대비 62% 급등 #중국 경기 회복세도 가격 부채질 #WSJ “투자자, 도박에 몰리고 있다” #실물과 다른 유동성 장세 경고도

원자재 가격 급등을 이끄는 것은 경기 선행지표로 여겨지며 ‘닥터 카퍼’로 불리는 구릿값이다. 지난 4일(현지시간)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구리는 t당 7741.5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최저점인 지난 3월23일(4617.50달러) 보다 67% 급등했다. 캔디스 뱅선드 피에라 캐피탈 광물 담당 펀드 매니저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구리 가격이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울 수도 있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구리의 사상 최고가는 2011년의 t당 9827달러였다.

글로벌 원자재 랠리, 경기 회복 신호인가 투자 과열인가.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글로벌 원자재 랠리, 경기 회복 신호인가 투자 과열인가.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날개를 단 것은 구리만이 아니다. 알루미늄 합금은 t당 1840달러로 최저치를 찍은 지난 4월6일(1130달러)보다 62% 올랐다. 니켈은 최저점이던 지난 3월23일 t당 1만1055달러에서 1만6373달러로 48% 급등했다. 철광석의 올해 가격 상승률도 48.21%에 달했다.

이는 우선 실물 경기가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진단에서다. 건설 자재 등으로 쓰이는 구리의 경우 도로 건설 등 인프라 구축이 늘어나면 사용량도 늘어난다. 철광석은 제철, 알루미늄은 캔부터 자동차까지 다양한 제품에 사용된다. 광물 수요가 경기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로 여겨지는 이유다. 수요가 늘면서 가격이 오르고 있는 것이다.

알루미늄, 연초 대비 60% 넘게 폭등.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알루미늄, 연초 대비 60% 넘게 폭등.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미국 시카고의 알루미늄·아연 제련 업체인 임페리얼 아연의 최고경영자(CEO) 제이 샌들러는 WSJ에 “자동차 기업 쪽에서 주문이 다시 들어오면서 초과근무 체제도 일부 가동 중”이라고 말했다. 구리 채굴 기업인 프리포트 맥머런의 리처드 앳커슨 CEO도 “풀 가동 체제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니켈, 연초 대비 45% 올랐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니켈, 연초 대비 45% 올랐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원자재 시장의 큰손인 중국 경기의 회복세도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중국이 올해 수입한 정련동(제련을 마친 구리)은 440만 MT(미터톤)에 달한다. 사상 최대치다. WSJ은 “중국은 (경기 회복세로) 앞으로 더 많은 정련동을 수입할 것으로 예상되고 이는 광물 기업 매출 상승의 청신호”라고 전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이 기후변화 대책에 공을 들인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전기차나 풍력발전 터빈을 제작하는 데는 상당량의 광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광물 전문 트레이더인 마크 핸슨은 “광물 투자를 위한 모든 조건이 완벽히 갖춰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8년만에 사상 최고치 찍은 구리.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8년만에 사상 최고치 찍은 구리.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하지만 경제 회복을 반영했기보다는 시중에 흘러넘치는 유동성의 힘을 빌린 상승세로 보는 조심스러운 시각도 나온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경기부양에 따라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채권 투자로 수익률을 맞추기가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주식에 투자하자니 주요국 증시는 이미 많이 올라 추가 상승 동력이 제한적이다. 결국 다른 투자처를 찾아 나선 자금이 광물 시장으로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달러화 약세도 불을 붙였다. 달러를 들고 있으면 손해라는 생각에 원자재 투자에 대한 선호를 끌어올리고 있다.

금융 데이터 전문인 팩트셋에 따르면 구리 등 광물을 다루는 상장지수펀드(ETF)에 최근 몇 주 동안 수천만 달러가 몰렸다. WSJ은 “투자자들이 도박에 몰려들고 있다”며 “세계 증시가 오를 만큼 올랐다는 판단에 광물 투자에 몰리면서 헤지펀드와 투기 세력 역시 구리 등에 베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 유동성은 안전·위험자산 가릴 것 없이 조금이라도 수익이 난다 싶으면 금방이라도 쫓아 움직이는 모습이다. 불안을 먹고 자라는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금과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원자재 가격은 반대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함께 상승장을 연출하고 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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