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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44호 무덤 주인은 1500년 전 신라 바둑공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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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바둑돌 200여 점을 저승길에 가져갔던 1500년 전 신라 여인의 무덤이 깨어났다. 무덤에선 금동관, 금귀걸이 등 장신구 일체가 착장 상태 그대로 쏟아졌다. 최상위층 고분에서만 나왔던 비단벌레 딱지날개 금동 장신구 수십 점도 출토됐다. 특히 피장자 발밑에서 나온 바둑돌은 이제까지 신라 남성 무덤에서만 나왔던 것이라 눈길을 끈다.

쪽샘지구 고분 출토물 화제 #키 1m50㎝ 정도 어린 소녀 추정 #금동관·금귀걸이·팔찌·은장도 등 #당시 최상층 착장세트 쏟아져 #함께 나온 바둑돌 200여점 눈길

이 무덤은 경주 대릉원 동쪽에 위치한 쪽샘지구 44호분. 2007년 예비조사에 착수, 2014년부터 본격 발굴해 “국내 단일고분으로 최장기간 조사한”(지병목 국립문화재연구소장) 무덤이다. 지난해 호석(護石·무덤 둘레에 쌓는 돌) 주변에서 기하학적 문양과 기마 행렬도가 그려진 토기 조각들이 나와 화제가 된 데 이어 이번엔 무덤 주인공의 자리(매장주체부)가 실체를 드러냈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7일 쪽샘 44호 발굴 현장에서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열고 무덤 구조와 출토품 등을 상세하게 공개했다. 유튜브로 대국민 실시간 현장설명회도 열었다. 주요 키워드 중심으로 소개한다.

완전 착장 … 신라 상류 스타일?

5세기 후반 축조된 경주 쪽샘지구 44호분에서 금동관 등 장신구가 착장 상태로 출토됐다. 키 1m50㎝ 정도의 왕족 여성 무덤으로 추정된다. 원 안은 출토된 바둑돌. [사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5세기 후반 축조된 경주 쪽샘지구 44호분에서 금동관 등 장신구가 착장 상태로 출토됐다. 키 1m50㎝ 정도의 왕족 여성 무덤으로 추정된다. 원 안은 출토된 바둑돌. [사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인 44호분 주인공의 장신구들은 전형적인 돌무지덧널무덤 출토 양식 그대로다. 특히 가슴걸이는 남색 유리구슬과 달개가 달린 금구슬, 은구슬을 4줄로 엮어 곱은옥을 매달았는데 이는 황남대총이나 천마총 같은 최상위 계층 무덤에서만 확인된 디자인이라고 한다. 이 밖에 금동관(1점)부터 금드리개(1쌍), 금귀걸이(1쌍), 가슴걸이(1식), 금·은 팔찌(12점), 금·은 반지(10점), 은허리띠 장식(1점)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착장’했다. 남성용 장식 대도가 아니라 은장식 도자(刀子:작은 손 칼)를 지닌 것으로 보아 여성으로 추정된다.

이한상 대전대 교수(역사문화학)는 “5세기 후반 즈음 신라 사회에서 일정 이상 지위·신분이라면 정형화된 착장 세트를 지녔는데, 무덤에도 그 룰을 잘 적용한 것 같다”고 했다. 이 착장 세트는 지난 9월 경주 황남동의 신라 돌무지덧널무덤 120-2호분에서 나온 것과 형태·구성이 거의 같다. 44호분과 동시대인 5세기 후반 축조된 창녕 교동 Ⅱ군 63호분에서도 지난 10월 이와 비슷한 비화가야 여인의 장신구 등이 출토돼 신라-가야 관계에 관심을 모았다.

소형 금동관 … 피장자는 왕족 소녀?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 44호에서 출토된 비단벌레 금동장식(위)과 재현품. [사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 44호에서 출토된 비단벌레 금동장식(위)과 재현품. [사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주인공이 썼을 금동관은 유달리 작은 편이다. 신장은 약 1m50㎝. 심현철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특별연구원은 “귀걸이, 팔찌, 허리띠 장식 등이 여느 무덤 출토품보다 크기가 작아 피장자가 미성년일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주인공 머리맡 부장궤(副葬櫃, 부장품 상자)에서 비단벌레 금동 장신구가 수십 점 나와 눈길을 끈다. 비단벌레의 딱지날개 2매를 겹쳐 물방울 모양으로 만들고, 앞뒤판 둘레를 금동판으로 고정해 만든 장식이다. 심 연구원은 “녹색이나 금록색을 띠는 비단벌레 날개는 광택이 나고 화려해서 장신구로 자주 쓰였고 황남대총 남분, 금관총, 계림로 14호 등 최상급 무덤에서 출토됐다”며 “이번 출토품은 가로·세로 1.6×3.0cm에 두께 2㎜ 정도로 소형인 데다 이제까지 신라 고분에서 확인된 바 없는 물방울 형태란 게 특이하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비단벌레가 천연기념물이지만 당시엔 한국, 일본, 중국 남부 일대에 광범위하게 서식했고 경주 일대에서 충분히 채집할 수 있었다. 이번 비단벌레 장식도 기존 출토품처럼 말 안장 등 마구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크다.

바둑돌·절굿공이 … 무엇에 썼을까

44호분 전경. 봉분 지름이 동서 30.82m, 남북 23.12m로 타원형이다. [사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44호분 전경. 봉분 지름이 동서 30.82m, 남북 23.12m로 타원형이다. [사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발치 토기 사이에서 바둑돌 200여 점이 한데 모여 나온 것도 흥미롭다. 지름 1~2㎝(평균 1.5㎝) 정도로 요즘 바둑돌보다 훨씬 작은데 강가에서 자연석을 주워 그대로 쓴 것으로 보인다. 바둑돌 역시 황남대총 남분(243점), 천마총(350점), 금관총(200여 점) 등 최상위 계층에서만 나왔다. 이 무덤들의 주인공이 남성(추정)인데 반해 이번엔 여성 무덤이란 게 이채롭다.

전경효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삼국사기·삼국유사에 효성왕(재위 737~742)이 바둑을 뒀다는 기록이 있고 신라 사람들이 바둑을 잘 둔다는 내용이 여러 문헌에 나온다”면서 “4세기에 중국에서 전래한 바둑이 광범위한 문화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무덤에 가져간 것은 주인공의 일상 놀이기구였거나 바둑을 신선들의 놀이로 생각한 당시 사람들의 염원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바둑판은 발견되지 않았다. 목재여서 부식됐을 것으로 보인다.

손바닥 크기의 작은 돌절구와 절굿공이도 나왔다. 약을 짓는 약용 절구로 추정된다. 병약했을지 모를 주인공이 저승에선 장수하라고 기원한 건지 머리와 가슴 사이에선 운모(雲母)가 다수 발견됐다. 연구소에 따르면 운모는 도가나 신선 사상과 관련돼 선약으로 불린 광물의 일종이라고 한다. 피장자 주변에선 별도의 금귀걸이 유물도 발견됐다. 순장자가 여럿 있었는지 아닌지는 추가 발굴로 가려진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측은 “절반 정도 발굴 조사한 것 같다. 부장궤에 겹겹이 쌓인 상태의 유물을 계속 조사하고 분석할 것”이라고 했다. 이종훈 소장은 “추가 발굴 조사로 고분 전체의 구조와 축조과정을 복원하고 국내외 연구기관과 협력해 고증을 철저히 하고 학제 간 연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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