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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땀도 모자라 방귀 소동…한때 '美시장' 줄리아니 몰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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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달 19일 기자회견 중 염색약이 섞인 땀을 흘리는 루디 줄리아니 변호사.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19일 기자회견 중 염색약이 섞인 땀을 흘리는 루디 줄리아니 변호사. [로이터=연합뉴스]

재선에 실패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선 불복을 가장 눈에 띄게 돕는 사람은 루디 줄리아니(76) 변호사다.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라는 직책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를 트럼프 대통령과 ‘공동 운명체’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후후월드] #뉴욕시장 재임시절 '9·11 영웅' 줄리아니 #2008년 대선 도전 실패 후 트럼프와 한배 #검사 때 마피아 척결, 범죄와 전쟁 성공시켜 #우크라이나 스캔들, 대선자금 수사 받을수도

트럼프 대통령이 하원에서 탄핵당한 우크라이나 스캔들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재선 캠페인 전략에도 깊숙이 개입했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트럼프 변호인으로서 본업보다는 좌충우돌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개인 변호사인 루디 줄리아니가 지난 2일 미시간주 하원 청문회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개인 변호사인 루디 줄리아니가 지난 2일 미시간주 하원 청문회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AFP=연합뉴스]

5일(현지시간) 허핑턴포스트와 버즈피드 등 미국 매체는 줄리아니가 지난 2일 미시간주 하원에서 4시간가량 열린 ‘대선 불복’ 청문회에서 두 번 방귀를 뀌어 그 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퍼졌다고 보도했다.

하원의원과 격렬하게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줄리아니가 말할 때 처음에는 희미하게, 약 90초 후에는 보다 분명한 ‘뿡’ 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왔다는 것이다. 기자들이 올린 관련 동영상은 수백만 명이 보고 있다.

줄리아니는 지난달 19일에는 이번 대선에 폭넓은 부정이 있었다는 억지 주장을 펴는 기자회견에서 땀을 뻘뻘 흘리다가 양쪽 관자놀이 부근에서 검은 염색약이 양 볼을 타고 턱까지 줄줄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손수건을 갖고 있었지만, 문제의 부위만 피해 땀을 닦아내는 바람에 초라한 모습이 생중계됐다. CNN은 “트럼프 대선 캠페인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라고 평가했다.

지난달 7일 루디 줄리아니 변호사가 펜실베이니아주의 한 조경회사 '포시즌스 랜드스케이핑' 주차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7일 루디 줄리아니 변호사가 펜실베이니아주의 한 조경회사 '포시즌스 랜드스케이핑' 주차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앞서 조 바이든 당선인 승리가 확정된 지난달 7일 대규모 부정을 폭로하겠다면서 기자들을 불러 모은 장소도 트럼프와 줄리아니의 ‘몰락’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으로 꼽힌다.

바이든이 펜실베이니아주 선거인단 20명을 확보하며 승리에 쐐기를 박은 이 날 줄리아니는 이 주 최대 도시인 필라델피아 외곽 공업지대에 있는 ‘포시즌스 랜드스케이핑’이란 조경회사 주차장 한쪽에서 회견을 열었다.

트럼프가 트윗에 기자회견 장소를 “포시즌스”라고 올리자 시내에 있는 특급호텔 포시즌스로 알고 있던 기자들이 뒤늦게 허둥지둥 조경회사 뒷마당으로 뛰어가는 촌극이 연출됐다.

이날 기자회견 도중 바이든의 펜실베이니아 승리로 대통령 확정 소식이 전해지자 기자들이 하나둘 바이든 대선 캠프로 빠져나가면서 줄리아니 기자회견은 기자 없이 막을 내렸다.

기자회견장 바로 앞은 성인용품 가게가 영업 중이었고, 인근에는 공동묘지와 교도소가 있는 기묘한 장소 선택을 두고 영국 인디펜던트 등 기자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코미디 영화 '보랏2' 제작진이 꾸민 몰래카메라에 속고 있는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줄리아니 전 시장은 이 몰카로 부적절 행위 논란에 휩싸였다. [유튜브 캡처]

코미디 영화 '보랏2' 제작진이 꾸민 몰래카메라에 속고 있는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줄리아니 전 시장은 이 몰카로 부적절 행위 논란에 휩싸였다. [유튜브 캡처]

앞서 대선 직전인 지난 10월 말 공개된 줄리아니의 호텔 침대 몰카 영상이 연상됐기 때문이다. 줄리아니는 코미디 다큐멘터리 영화 ‘보랏(Borat)2’에서 카자흐스탄 여기자 역 여배우의 연기에 속아 가짜 인터뷰를 한 뒤 “침실에서 더 얘기하자”는 유혹에 넘어가 침대에 누워 바지 속에 손을 넣는 장면이 찍혔다.

지금 줄리아니 모습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그는 한때 ‘미국의 시장’으로 불릴 정도로 국민 사랑을 받는 국보급 정치인이었다. 오프라 윈프리가 9·11 희생자를 위한 기도회에서 줄리아니를 "미국의 시장(America's mayor)"이라고 소개했을 정도다.

뉴욕시장 재임 중인 2001년 9ㆍ11 테러가 터진 뒤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 폐허가 된 맨해튼을 수습하고 국민의 마음마저 보듬은 리더십 모범사례로 칭송받았다.

당시 테러가 일어나자마자 그는 소방본부로 달려가 경찰과 소방 최고책임자와 현장 회의를 했고, 잿더미가 돼 숨쉬기조차 힘든 맨해튼 시내를 둘러보며 사태를 수습하는 모습은 국민을 안심시켰다.

대국민 메시지에서 ”아이들이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는 최선의 방법은 여러분이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라고 다독였고, 테러는 비난하되 미국 내 무슬림 사회에 대한 관용을 촉구했다. 그해 시사잡지 타임은 그를 올해의 인물로 뽑았다. 식당에 들어가면 기립박수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1981년 법무부 고위직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뉴욕 남부 연방검찰청장으로 옮겨 마피아 소탕 작전에 앞장서면서 이름을 알렸다. 검사로서 실력도 탁월했지만, 성과를 포장하는 능력은 더 뛰어났다. 『루디 줄리아니: 도시의 황제』의 저자인 애드루 커트먼은 “범죄자를 체포해 포토라인에 세워 망신을 주는 기술을 줄리아니가 완성했다”고 말했다.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지난 9월 11일 열린 9·11 테러 추모행사에 참석해 애도를 표하고 있다. 테러 당시 뉴욕 시장이던 줄리아니는 뛰어난 리더십으로 사태 수습에 나서 ‘9·11의 영웅’으로 불렸다.[로이터=연합뉴스]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지난 9월 11일 열린 9·11 테러 추모행사에 참석해 애도를 표하고 있다. 테러 당시 뉴욕 시장이던 줄리아니는 뛰어난 리더십으로 사태 수습에 나서 ‘9·11의 영웅’으로 불렸다.[로이터=연합뉴스]

‘범죄와의 전쟁’으로 살인 등 강력사건이 줄자 주민들 지지 속에 1994년 뉴욕시장에 당선됐다. 경찰이 누구나 불심검문 할 수 있는 ‘스탑 앤 프리스크’를 도입해 '범죄 파이터'로 명성을 굳혔지만, 흑인 등 유색인종에 대한 경찰 폭력이 증가하자 정치적 위기를 맞기도했다.

퇴임 후에는 '9·11 영웅' 후광으로 세계 도시에 안전을 자문하는 회사를 세웠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2006년 한해에만 124회를 강연해 1140만 달러(약 123억원)를 벌었다.

2008년 대선 도전으로 정치인으로 컴백했지만, 쓴맛을 봤다. 존 매케인, 밋 롬니, 뉴트 깅그리치 등 거물과 붙어 공화당 경선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그 후로 10년간 다시 사업에만 몰두하다가 2016년 트럼프와 손잡으면서 다시 정치로 돌아왔다.

2016년 대선이 지난 1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 루디 줄리아니 변호사가 뉴저지주 트럼프 내셔널 골프장에서 만났다. [AFP=연합뉴스]

2016년 대선이 지난 1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 루디 줄리아니 변호사가 뉴저지주 트럼프 내셔널 골프장에서 만났다. [AFP=연합뉴스]

줄리아니와 트럼프는 서로의 필요로 맺어졌다. 대선에 출마했지만, 공화당에 기반이 없는 트럼프는 재선 뉴욕시장에 대선 경선도 치른 줄리아니의 도움이 필요했고, 줄리아니는 다시 권력으로 가는 길을 원했다고 온라인매체 복스는 분석했다.

줄리아니는 트럼프 출마 초기에 지지 선언을 했고 가장 중요한 지지자가 됐다. 2016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내가 뉴욕을 위해 한 것을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을 위해 할 것“이라고 지지 연설을 했다. 트럼프 당선이 발표됐을 때도 트럼프 가족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트럼프와 한배를 타면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스캔들에도 연루됐다. 그는 우크라이나 스캔들 등장인물 중에 유일하게 정부 공식 직책이 없는 사람이었다. 소위 '비선 실세'가 유럽연합(EU) 주재 미국 대사 등을 '지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대선 막바지에 조 바이든 후보의 차남 헌터의 부패 증거와 섹스 동영상이 담긴 노트북이 발견됐다는 뉴욕포스트 기사에 정보를 제공한 사람도 줄리아니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트럼프를 위한 '더티 잡'까지 맡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때 미국의 영웅이었던 줄리아니가 왜 이토록 망가졌는지는 여러 추측이 나온다. 거액 수임료를 대가로 고객인 트럼프 대통령에게 충성하고, 심지어 거액 수임료를 위해 불복 소송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있다. NYT는 지난달 줄리아니가 트럼프 대선 캠프에 하루 수임료로 2만 달러(약 2200만원)를 요구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트럼프 못지않은 미디어 중독인 줄리아니가 관심 끌려고 욕심을 부리다가 망신을 자초한다는 지적도 있다. 줄리아니는 대선 직후 중용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공직을 받지 못했다. 사업을 하면서 미심쩍은 고객들과 거래가 많았다는 이유로 공화당이 기피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선 승리 이후 '야인' 생활을 한 줄리아니는 "지난 1년 반 동안 TV에 안 나갔다. 솔직히 말해 그리웠다"고 말할 정도로 미디어를 갈망했다고 NYT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줄리아니는 대선 캠프자금 사용과 로비법 위반 혐의 등으로 뉴욕 남부 연방검찰청으로부터 수사를 받을 위기에 처했다. 미 매체 롤링스톤은 "35년 전이면 그가 감옥에 집어넣었을 사람들과 친구가 돼 있다"면서 "그가 일했던 바로 그 검찰청이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전했다.

한 지인은 줄리아니에 대해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외로운 사람"이라며 "그는 카메라 세례를 받는 것을 좋아하고, 유명한 것을 즐긴다"고 말했다.

※ [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외교안보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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