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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영기의 시시각각

문 대통령, 우물쭈물하다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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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영기
전영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우물쭈물하다 이럴 줄 알았지”는 버나드 쇼의 유명한 묘비명이다. 다가올 자신의 죽음마저 연극 대사 식으로 처리한 작가의 못말리는 장난기에 웃음이 나온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이 우물쭈물하다 ‘피고 문재인’ 신세가 되면 이번에는 다들 비웃을 것이다. 일부 문빠라는 이름으로 환상 속에 사는 인사들이 ‘어떻게 감히 검찰총장이 대통령님의 징계 처분에 불복하느냐’고 핏대를 내겠지만 아뿔싸!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우물쭈물하다 자초한 일일 테니 말이다. ‘우물쭈물’은 행동 따위를 분명하게 하지 못하고 자꾸 망설이며 몹시 흐리멍덩하게 하는 모양을 이른다.

진작 추미애 안 자른 대가 치를 것 #10일 미리 짠 대로 징계 결정나면 #윤석열, 대통령 상대 소송 불가피

문 대통령이 행정법원의 피고로 전락하는 시나리오는 10일 열릴 법무부의 검사 징계위원회가 사전에 자기들끼리 짠 각본대로 윤 총장에 대해 해임·면직·정직·감봉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고, 이어 대통령이 안타까운 표정을 연출하며 징계안에 서명하는 순간 작동할 것이다. 윤석열 총장이 징계처분의 무효를 청구하는 소송을 낼 것이 불 보듯 환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징계의 서명권자 즉, 징계의 완성자이자 징계의 집행자인 문 대통령이 소송의 피고가 되는 것은 자명하다. 문 대통령은 1년 반 전 “우리 총장님”하면서 임명한 검찰총장에 의해 피소당하는 셈이니 창피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겠다.

게다가 문 대통령이 서명할 것으로 보이는 윤 총장의 징계 사유도 허점투성이다. 이미 동일한 내용의 검찰총장 직무배제 사유가 행정법원의 조미연 부장판사에 의해 배척된 바 있다. 조 판사는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에게 맹종할 경우 검사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은 유지될 수 없다”는 통렬한 판결문을 내놨다. 대통령이 패소할 게 뻔한 특정 행정 사안에 서명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면 누가 그 책임을 져야 하나. 진작 광란의 칼춤을 추는 추미애 법무장관을 잘랐다면 이런 상황은 조성되지 않았으리라. 추 장관의 불길한 행보를 도무지 감당할 수 없었던 법무부 차관이 사표를 낼 때까지만 해도 해법이 없지 않았다. 그때 추 장관의 검사징계위 구성을 중지시켰어야 했다. 추 장관의 기세에 눌렸을까. 대통령이 우물쭈물하며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자 검찰총장이 직접 징계위의 위헌성을 판단해 달라고 헌법소원을 냈다.

문 대통령의 우물쭈물 때문에 기관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고 있다. 윤 총장의 첫 번째 법리는 징계위가 검찰총장을 대상으로 할 경우, 징계청구권자와 의결권자가 사실상 일치하는 원님재판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원천적으로 공정하지 않다. 즉, 검사가 징계 대상일 경우 검찰총장이 징계 청구를 하고 법무부 장관이 징계위를 통해 의결함으로써 청구와 의결이 분리된다. 하지만 검찰총장이 대상일 때는 징계 청구와 의결 모두 실질적으로 법무부 장관 동일인이 수행하는 결과가 나타나기에 헌법상 공정하게 판단받을 권리가 박탈된다.

윤 총장의 두 번째 법리는 군이나 공무원의 경우 징계 대상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들로 징계위가 구성되는데 이번 사건의 징계위원 중엔 법의 미비로 검찰총장보다 직급 낮은 검사들이 들어간다는 점이다(검사징계법 5조 2항).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을 법으로 징계하는 사례는 한국에서 처음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이를 예상치 못하고 만들어졌던 검사징계법의 관련 조항도 차제에 정비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늘 상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추 장관의 마구잡이 행동이 역설적으로 법령의 진화를 가져올지 모른다.

문 대통령은 우물쭈물하다 추 장관도 못 자르고 징계위도 중단시키지 못했다. 그 결과 윤 총장이 낼 징계처분 취소 소송의 피고로 떨어질 지경이 됐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앞으로 더한 일도 벌어질 수 있다. 레임덕이 급속히 진행돼 집권세력 안에서 고립이 깊어질 것이다. 숱한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오를 일도 있겠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