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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혁백의 퍼스펙티브

한·미, 핵우산 등 전략자산 의사 결정 공유 제도화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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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00년 이상 가는 한·미 동맹 만들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지난달 11일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에 참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지난달 11일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에 참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70년 전 미국을 선택했다고 앞으로도 70년간 미국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이익이 되어야 미국을 선택하는 것이다.”

한국 안보·경제를 자주적으로 만들어준 전략 자산인 한·미 동맹 #발전적 혁신 위해 안보 무임승차 벗어나 더 많은 비용 분담하고 #주한미군을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유지군으로 역할을 변경하며 #미국의 일방적 전략자산 확장억제 의사 결정에 한국도 참여해야

이수혁 주미 대사의 선택적 동맹론 발언으로 한·미 동맹의 미래를 둘러싼 논쟁이 재연되고 있다. 동맹파들은 한·미 동맹의 뿌리를 뒤흔든 발언이라고 강하게 비판했고, 자주파들은 한·미 동맹은 미국 우선주의 관점이 아니라 대한민국 우선주의 관점에서 재조정되어야 한다면서 이 대사를 옹호하였다.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 50주년인 2003년에도 한·미 동맹은 여중생 압사 사건, 이라크 파병, 전시작전권 반환, 대북 문제를 둘러싼 한·미 갈등 등의 문제로 동맹 역사상 최대의 시련을 겪었다. 동맹파들은 세계 최장 기간 지속하고 있는 한·미 동맹이 피로 징후를 보이는 것은 진보좌파 정권이 종북·탈미(脫美)를 추진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자주파들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이 안보를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하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자주국방을 통해 안보 주권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미 동맹은 ‘동맹 통한 자주’ 전략의 근간

그런데 가장 자주적으로 알려진 노무현 대통령은 예상과 달리 동맹파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라크에 파병하였고, 전시작전권 연기를 승인했으며, 주한미군 유지 비용 분담에 합의했다. 무엇보다도 12조원을 들여 평택에 세계 최대·최고의 미군 주둔기지를 건설하였다. 노 대통령은 2004년 현충일 추념사에서 “자주와 동맹은 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호 보완의 개념으로 관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미 동맹은 한국의 안보와 경제를 더욱 자주적으로 만들어 주는 소중한 전략적 자산이다. 한국은 국내 권력 자원만으로는 강대국인 중국·일본·러시아와 균형을 달성할 수 없었기 때문에 원거리에 있는 패권 국가인 미국과의 동맹을 통해서 동아시아 강대국들과 균형을 이룰 수 있었고 자주 국가가 될 수 있었다. 시카고대의 로버트 페이프 교수는 한국과 같은 강소국은 단시일에 자력으로 내적 균형(internal balancing)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초강대국과의 동맹을 형성하여 주변 강대국과 외적 균형(external balancing)을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한·미 동맹은 우리의 안보와 경제를 더욱 자주적으로 만들어주었다는 점에서 ‘동맹을 통한 자주’ 전략의 근간이 되었다.

냉전 이후 우리는 군사력과 경제력에서의 열세를 한·미 동맹이 메워주었기 때문에 사실상 대등한 위치에서 자주적으로 중국·일본과 외교를 해왔다. 한·미 동맹을 뒷심으로 해서 우리는 ‘호가호위(狐假虎威) 외교’를 해온 것이다. 한·미 동맹이 해체된다면 중국은 우리를 조공국으로 취급할지 모르며 동북공정을 강화할 것이다. 일본은 독도 영유권을 군사적으로 관철하려 할 것이다. 북한도 통미봉남 하면서 북핵 문제를 북미 간 양자 협상을 통해 해결하려 할 것이다.

‘동맹을 통한 자주’는 북한 핵 위협이 존재하고,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신냉전 시대에도 기본적인 국가 전략으로 지속하여야 한다. 한·미 동맹의 발전적 혁신을 위해선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한·미 관계를 일방적인 후원-수혜 관계에서 수평-호혜 관계로 전환해야 한다. 한국은 냉전 체제에서 한·미 동맹을 통해 일방적으로 안보 무임승차를 했고,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자유를 누렸다. 미국 단일 헤게모니 체제에서 미·중 패권 경쟁 시대로 접어든 상황에서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분담하는 데 적극적이어야 한다. 미국의 헤게모니가 쇠퇴하는 시점에서 부유해진 한국이 미국의 동맹 유지 비용 부담 전가(buck-passing)를 무리한 요구로 받아들이지 말고, 오히려 선제적으로 우리가 부담할 수 있는 최대한의 비용을 분담하겠다고 제안함으로써 한·미 동맹의 발전적 미래를 둘러싼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해야 한다.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대가로 주한미군 철수, 중거리 미사일 배치, 쿼드(Quad, 미·일·호주·인도 안보협의체) 참여, 종전선언 등에서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야 한다.

바이든의 동맹 우선주의에 편승해야

둘째, 한·미 동맹을 지속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북핵 위협을 억제하고 저지하는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동맹에서 탈피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같은 동북아 다자안보체제를 조직해 동북아 평화 구축을 담당하는 적극적 동맹으로 혁신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북핵 문제와 남북 평화가 선결되어야 한다. 또 주한미군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억지력이 아니라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의 평화를 보장하는 평화유지군으로의 역할 변경이 있어야 한다.

셋째, 지속성이 높은 동맹으로 발전하기 위해 비대칭적 동맹에서 수평 동맹으로 전환해야 한다. 특히 핵우산을 포함한 전략자산의 확장억제를 미국이 일방적으로 공급하는 방식에서 탈피해 한·미가 공동으로 의사결정 과정을 공유하고 확장억제 공급을 제도화해야 한다.

미국 대선 승리 후 바이든 당선인은 지난 11일 재향군인의 날에 필라델피아 한국전 참전기념비에 헌화했다. 다음날에는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국을 인도·태평양지역의 안보와 번영의 핵심 축(linchpin)이라고 함으로써 한·미 동맹 강화 의지를 확고히 했다. 바이든은 유세 중 기고문에서 더는 동맹국 한국을 갈취하지 않고 “같이 갑시다”라고 하면서 한·미 동반자 관계를 강조했다. 바이든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를 동맹 우선주의로 돌려놓음으로써 미국 리더십을 회복하고 미국 외교를 정상화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우리는 바이든의 동맹 우선주의에 편승해 주변 강대국에 대해 더 자주적인 대한민국을 건설해야 한다.

대미 로비 촘촘히 짜고 상·하원 의원에 투자해야

눌재 양성지

눌재 양성지

세조가 “나의 제갈량”이라고 불렀던 눌재(訥齋) 양성지(梁誠之)는 정도전이 세운 사대국시(事大國是)를 따랐으나, 맹자의 호혜적인 사대자소(事大字小) 이론으로 자주적인 사대 정책을 폈다. 눌재는 조선이 천자의 직접 지배를 받는 내신(內臣) 제후국이 아니라 정치적 자유와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를 가진 외신(外臣) 제후국이라며, 전통적 풍속을 보존해 문화적 자주성을 지키고, 『삼국사기』 『고려사』 등을 문과 시험에 부과할 것을 진언했다. 눌재는 명에 대한 사대를 이용해 명의 역외 지역인 요동과 장백산 이남의 만리 강토를 조선 영토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눌재의 ‘사대를 통한 자주론’은 조선판 ‘동맹을 통한 자주론’이었다.

고(故) 마이크 맨스필드 민주당 원내총무의 석사 논문 ‘미국과 한국의 외교 관계, 1866~1910’에 따르면 고종은 한·미 통상수호조약 제1조에 명시된 ‘만약 당사국이 다른 정부에 의해 불의한 또는 억압적인 행동을 받을 경우 다른 당사국은 거중 조정을 통해 우호적인 해결을 가져오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을 상호방위조약으로 해석하고, 미국에 주변 강대국의 위협에 대한 해결사 역할을 기대했으나, 조선에 투자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미국은 거중조정 조항이 의무적인 것이 아니라면서 조선과 열강 간의 갈등에 중립을 지켰다. 제1차 조·미 동맹은 미국을 연루시키려는 조선의 노력이 미국에 의해 방기되었기 때문에 실패했다.

현재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경쟁에 들어갔다. 워싱턴 외교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공식 외교 채널에만 의존하지 말고 외교정책 결정에 영향력이 있는 싱크탱크·목사·로비스트·재계·군산복합체를 움직여야 한다. 이 점에서 일본이 한국보다 몇 수 위다. 사사카와 료이치 재단은 일본 관련 싱크탱크에 지원하고, 일본 재벌들은 거래하는 미국 대기업에 비공식적으로 로비한다. 그런데 우리는 3년 전 한·미 외교 사랑방 역할을 했던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USKI)를 없애버리는 우를 범했다. 우리도 촘촘하게 대미 로비 네트워크를 짜고 재계는 주요 상·하원 의원들의 선거구에 투자해 한국을 지지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광주과학기술원(GIST) 석좌교수·리셋 코리아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