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회 중앙시조대상] 생의 낯선 풍경과 마주하라는 격려

중앙일보

입력 2020.12.07 00:02

업데이트 2020.12.07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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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중앙시조신인상 - 류미야

물구나무서기
절벽을 오르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

스스로 벽이 되어

칼바람도 들이는

한 그루 푸른 나무로

발춤 추며,

날아오르며,

새로움을 위해서라면 낯선 ‘포즈’라도 취해야 할 것 같은 시간입니다. 연작물의 수치를 더하거나, 끝없이 기능과 디자인을 바꿔 가는 것들도 그런 증명이라면 증명이겠습니다. 이런 시대에 천 년을 통과해온 문학 형식이란 걸맞고 유효한 것인지요.

“왜 하필 시조”인지를 묻는 이가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마음속 차가운 것과 뜨거운 것이 번갈아 다녀갔습니다. 그건 마치 지금-여기 있는 것들에게 왜 그리 났느냐 묻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물음이 다시 제게 아름다운 이정표가 되어 주었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지체(肢體) 같은 시조를 늘 새롭게 새기고, 향해 가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생의 그늘과 빛을 함께 쪼이면서도 의연한 날들로 잘 살아내며, 이 땅 위 사람들의 깊고 긴 삶의 시간을 간절하고도 곡진히 붙들어온 시조를 잘 이어가고 싶습니다. 오늘 그 길 위에서 힘 잃지 말라는 따뜻한 격려를 건네받습니다.

부족한 작품들을 깊이 헤아리고, 번듯하게 들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중앙일보에 마음의 감사 드립니다. 늘 부끄러움 안고 가장 저다운 한 편의 ‘시’인 시조를 쓰기 위해 날마다 생의 낯선 풍경 속을 기쁘게 헤매겠습니다. 

◆류미야
류미야

류미야

경남 진주 출생. 2015년 ‘유심’ 등단. 시집  『눈먼 말의 해변』. 올해의시조집상, 공간시낭독회문학상 등 수상.

내밀한 시선으로 그린 현대인의 적막 

중앙시조대상·신인상 심사평

한국시조단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중앙시조대상 후보작을 놓고 심사자들은 열띤 숙고를 거듭했다. 한 해 동안 각종 문예지에 발표된 작품을 대상으로 예심위원들의 선고에 의해 올라온 작품은 17명의 85편이었다. 시조의 기본인 절제와 균형은 물론 현대시조가 갖춰야 할 새로운 시각이란 원칙에 따라 최종까지 겨룬 이는 임성구, 이태순, 서숙희였다. 임성구는 바라본 대상에 대한 시각이 탄력적인 변화를 보여주었지만 중앙시조대상이 가져야 할 무게감에는 다소 미치지 못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태순은 시조적 안정감과 여성 특유의 섬세한 언어 구사 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얻었으나 차용된 이미지들이 너무 낯익다는 느낌이 지적되었다.

그에 비해 서숙희는 ‘빈’이란 중의적 대상을 통해 현대인의 적막과 상실감을 잘 응축시켜 넣었다다. 자신에게 온 하루를 저녁, 밤, 아침으로 나눠 직조해 낸 부분은 기존의 구태의연함을 극복하려는 시도로 보았다. 이를테면 이 시인은 나무 한 그루의 나이테를 통해 산을 읽게 하는 특유의 내밀한 시선을 견지해 왔다. ‘빈’은 만장일치로 수상작에 뽑혔다.

올해 신인상은 대체로 우수작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이나영, 류미야의 작품들이 마지막까지 논의되었다. 이나영에게 포착된 주변의 사물들은 새로운 모습으로 생명을 얻었지만 시조적 명징함, 구체성의 결여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신인상 부문에서 긍정적으로 눈길을 끈 것은 단시조가 9수나 올라왔다는 점이다. 단시조는 갈수록 장황해지는 한국시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류미야의 ‘물구나무서기’는 좋은 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거꾸로 보면 세상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된다는 시선이 돋보인다. 초장에서 던지고 중장에서 풀고, 종장에서 결구를 짓는 우리 가락의 전형을 보이고 있다.

◆심사위원=이정환·백이운·이달균(대표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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