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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달군 예비 안내견 세계 "70% 탈락, 출입 거부는 일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예비 안내견 시절 지하철에서 강현다씨에게 사회화 교육을 받고 있는 호가. 본인 제공

예비 안내견 시절 지하철에서 강현다씨에게 사회화 교육을 받고 있는 호가. 본인 제공

“예비 안내견과 '퍼피워커'(Puppy Walker)에게 입장 거부는 다반사예요. 저도 매번 양해를 구했지만, 안내견의 출입은 누군가의 허락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주세요.”

3년 전 예비 안내견 ‘호가’를 교육했던 강현다(23)씨가 입을 열었습니다. 호가는 2016년 1월 일본 안내견 학교에서 태어난 레트리버입니다. 태어난 지 9주가 되던 때 우리나라로 건너와 퍼피워커 강씨를 만났죠. 퍼피워커란 생후 7주 이상 된 예비 안내견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게 1년여 간 돌보는 자원봉사자를 말합니다.

[애니띵] 퍼피워커가 전하는 예비 안내견의 세계

안내견은 익숙해도 예비 안내견은 생소하시다고요? 퍼피워커 강현다씨가 전하고 싶었던 예비 안내견의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자세한 스토리는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 달군 '롯데마트 안내견'…“출입 거부는 일상”

지난 29일 소셜미디어에 올라와 논란이 된 예비 안내견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지난 29일 소셜미디어에 올라와 논란이 된 예비 안내견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지난달 29일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한 강아지 사진이 우리나라를 발칵 뒤집었습니다. 겁에 질린 듯 어딘가를 바라보다가 바닥에 주저앉아버린 예비 안내견의 사진이었죠. 사진 속 장소는 서울 송파구 롯데마트 잠실점이었습니다.

사진을 올린 네티즌은 “마트 매니저가 교육 중인 안내견과 보호자에게 ‘장애인도 아니면서 강아지를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언성을 높였다”고 주장했죠. 송파구청에 따르면 마트 측은 당초 이들의 출입을 허용했지만, 고객들의 항의를 받고 퍼피워커에게 안내하는 과정에서 고성이 오갔다고 합니다.

이후 ‘롯데마트 안내견’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고, 해당 마트와 직원의 안내견에 대한 인식 부족을 지적하는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롯데마트는 하루 만에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에 “퍼피워커와 동반 고객 응대 과정에서 견주님의 입장을 배려하지 못했다”며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예비 안내견 시절 호가와 제주도 여행을 가기 위해 공항을 찾은 강현다씨. 본인 제공

예비 안내견 시절 호가와 제주도 여행을 가기 위해 공항을 찾은 강현다씨. 본인 제공

사실 퍼피워커에겐 공공장소에서 출입을 거부당하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강씨는 “이번처럼 고성이 오가는 경우는 드물지만, 예비 안내견이 출입을 제지당하는 일은 다반사”라며 “3년 전 공항 검역까지 통과한 호가를 데리고 면세점에 갔다가 보안요원들에게 둘러싸인 적도 있다”고 말했죠. 또 예비 안내견을 처음 본 마트 직원들이 “본사에 지침을 물어보겠다”고 해서 입구에서만 40분을 기다렸던 경험담도 덧붙였습니다.

법으로 명시된 예비 안내견 교육

지난 3일 강현다씨와 반려견 호가가 애니띵과 인터뷰하는 모습. 왕준열

지난 3일 강현다씨와 반려견 호가가 애니띵과 인터뷰하는 모습. 왕준열

예비 안내견이 비장애인과 함께 공공장소를 다니는 이유는 뭘까요. 모든 예비 안내견은 안내견 학교에 들어가기 전 1년간의 사회화 교육을 거칩니다. 이때 퍼피워커는 예비 안내견과 식당, 마트, 대중교통 등을 이용합니다. 예비 안내견이 다양한 사람과 만날 수 있게 하는 거죠.

사회화 교육은 안내견이 사회생활에 익숙하도록 하는 훈련입니다. 유석종 삼성화재 안내견 학교 강사는 “안내견은 사람과 똑같은 동선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사람들과 함께 있는 상황을 편안하게 느낄 수 있어야 한다”며 “출입을 거부당하더라도 금방 정서적 안정을 찾는 것도 교육의 한 부분”이라고 설명하더군요.

안내견이 어디든 갈 수 있는 권리는 법적으로 보장됩니다. 장애인복지법 제40조에 따르면 누구든 장애인 보조견 표지를 붙인 안내견과 장애인의 공공장소 출입을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해선 안 됩니다. 안내견 훈련기관에 종사하는 훈련사나 퍼피워커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이를 어기면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안내견 보면 ‘저는 괜찮아요’ 말해주세요”

안내견 시험에 탈락한 이후 모델 활동을 하고 있는 호가와 강현다씨가 입양한 유기견 호수. 본인 제공

안내견 시험에 탈락한 이후 모델 활동을 하고 있는 호가와 강현다씨가 입양한 유기견 호수. 본인 제공

사회화 교육이 끝난 예비 안내견은 6~8개월 동안 정식 안내견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습니다. 알고 보면 훈련을 끝까지 완수하는 비율은 30~40%에 불과하다고 해요. 탈락한 예비 안내견들은 퍼피워커에게 돌아가거나 다른 가정에 반려견으로 분양됩니다.

호가도 그중 하나죠. 앞장서서 장애인을 이끄는 다른 안내견들과 달리 호가는 성격이 소심해 첫 단계에서 탈락했다고 합니다. 정든 강씨의 품으로 돌아온 호가는 반려견 모델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안내견 학교 동기들과 함께 수혈이 필요한 개를 위한 헌혈 봉사도 하고 있죠. 안내견 중에선 최초로 국회에 입성한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의 ‘조이’도 호가의 동기라고 합니다.

지난 3월 27일 열린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후보 공천장 수여식에서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김예지 후보의 안내견인 '조이'가 비례대표 0번 목걸이를 목에 거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3월 27일 열린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후보 공천장 수여식에서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김예지 후보의 안내견인 '조이'가 비례대표 0번 목걸이를 목에 거는 모습. 연합뉴스

강씨는 이번 논란이 안내견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안내견이 출입을 거부당하는 상황을 봤을 때 이렇게 대처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저는 안내견이 들어와도 괜찮아요’라고 한 마디 해주세요. 작은 한 마디가 퍼피워커와 장애인에게는 아주 큰 힘이 된답니다.”

박건 기자, 이수민 인턴 park.kun@joongang.co.kr
영상=왕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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