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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살면서 찌든 때 많이 끼었다면 티베트로 가라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강정영의 이웃집 부자이야기(66)

5살의 동자승, 호파쿨리는 티베트 사원의 가장 어린 수도승이다. 형 쵸르텐은 10살로, 그의 엄마는 동생이 2살 나던 해에 형제를 사원에 맡기고 떠났다. 그들에게 부모의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새벽에 일어나 청소를 하고 불경을 외고, 장난도 치고 싸우기도 한다. 사원에는 이런 어린 수도승이 20명이나 된다. 눈이 초롱초롱한 그들, 부모의 품이 그리워 울보가 되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어엿한 수도승이 될 것이다. 2017년 부산 국제영화제 출품작, 다큐멘터리 ‘수도원의 아이들’이다.

히말라야 북쪽 해발 4000∼5000m 고도의 하늘과 맞닿은 세계의 지붕, 티베트고원. 독수리들이 휘 휘 하늘을 배회하고 있다. 그 아래 널따랗게 펼쳐진 바위를 에워싸고 수백 마리의 독수리가 머리를 맞대고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 죽으면 영혼이 하늘로 간다는 티베트인의 마지막 길, 천장 터이다. 불그스레한 장삼을 걸친 라마승이 웅얼웅얼 독경을 한다. 그 아득한 소리에 맞추어 망자가 너럭바위에 도착한다. 독수리들이 모여들자 육신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영혼은 하늘로 떠난다.

모든 것을 부처에게 온전히 맡기고 속세를 떠나 살아가는 티베트 스님들. 그들을 ‘조용히 오래’ 바라보라. 자신이 얼마나 사치스럽고 탐욕스럽게 살아왔는지를 저절로 반성하게 될 것이다. [사진 pxhere]

모든 것을 부처에게 온전히 맡기고 속세를 떠나 살아가는 티베트 스님들. 그들을 ‘조용히 오래’ 바라보라. 자신이 얼마나 사치스럽고 탐욕스럽게 살아왔는지를 저절로 반성하게 될 것이다. [사진 pxhere]

영겁의 시간으로 보면, 점 하나 찍고 가듯 찰나같이 짧은 인생이다. 그런데도 별의별 고민과 걱정, 불만·불안 속에서 한세상을 살다 가는 사람이 많다. 살면서 찌든 때가 유별나게 많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중국의 서남쪽 끝, 칭하이(靑海) 깐수(甘肅) 티베트로 가보라. 끝없이 펼쳐지는 유채밭에 바다 같은 호수 칭하이 호. 하늘 따라 걷는 길 차마고도. 그리고 꼭 티베트 사원을 들러보라. 모든 것을 부처에게 온전히 맡기고 속세를 떠나 살아가는 티베트 스님들. 그들을 ‘조용히 오래’ 바라보라. 자신이 얼마나 사치스럽고 탐욕스럽게 살아왔는지를 저절로 반성하게 될 것이다.

“티베트에서의 시간은 말과 야크가 걷는 속도로 흐른다. 누군가는 티베트에서 ‘불경 읽는 개’를 보았다고 하고, 누구는 ‘떠도는 강’을, 또 누군가는 ‘홀연히 사라지는 호수’를 보았다고 한다. 그게 사실인가 묻는 것은 어리석다. 티베트는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곳이다. 세계의 지붕이고, 영혼의 고향이고, 신들의 언덕이다. 그들은 몸으로 경전을 읽는다.”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길』, 이용한.

실크로드보다 200년 앞서 만들어진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교역로 차마고도. 길이 5000㎞, 해발 4000m가 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다. 그 중심에 있는 티베트. 동양의 정신세계, 불교의 정수를 가장 순수하게 원형 그대로 잘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티베트인은 설산에서 목숨을 걸고 몇 달 몇 년에 걸쳐 오체투지를 한다.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추어서 부처에게 다가간다. 온 몸을 던져서 하는 간절하고 치열한 기도이다.

7세기에 송첸캄포는 티베트를 통일, 토번 왕국을 세웠다. 칭하이, 깐수, 쓰촨, 윈난, 라다크까지 아우르며 한때 당나라에 대적할 정도였다. 13세기 몽골의 칭기즈칸은 티베트는 ‘땅은 정복할 수 있어도 그들의 영혼까지 정복할 수는 없다’는 말을 남겼다. 14~18세기 명나라 때는 독립, 청나라 때에는 다시 속국이 됐다. 청이 멸망하자 다시 독립을 선포했다가 1950년 국공 내전에서 승리한 마오쩌둥이 침략, 점령한다. 그 이후 독립을 향한 티베트인의 저항은 지금까지 그칠 줄 모른다. 6300여 개의 티베트 사원이 거의 모두 파괴되고, 남은 것은 손꼽을 정도다. 최근 10여년간 약 150여 명의 티베트 승려가 중국에 저항, 분신했다. 걱정스러운 것은 순수한 그들의 종교와 신앙이 파괴되고 있다는 점이다.

티베트는 영토 외에 우라늄 등 광물자원, 수력이 풍부해 전략적 가치가 매우 크다. 1959년 티베트인 봉기가 실패하자 달라이 라마는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의 다람살라로 피신, 망명정부를 세웠다. 그는 1935년 칭하이 성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다. 운명이었을까, 그는 환생한 달라이 라마가 아니면 도저히 대답할 수 없는 질문에 답을 함으로써 네 살의 나이에 14대 달라이 라마가 된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티베트인의 정신적 지주다. 지금도 험준한 히말라야산맥을 목숨 걸고 넘어와 그를 찾아 눈물을 흘리는 티베트인이 매년 수천 명에 달한다.

생존이 거의 불가능한 고산지대에서 야크, 바람과 혹한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 안나푸르나와 히말라야 베이스 캠프를 가다 보면 ‘옴마니 밧메훔’의 구슬픈 불경소리를 어디서든 들을 수 있다. [사진 pixabay]

생존이 거의 불가능한 고산지대에서 야크, 바람과 혹한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 안나푸르나와 히말라야 베이스 캠프를 가다 보면 ‘옴마니 밧메훔’의 구슬픈 불경소리를 어디서든 들을 수 있다. [사진 pixabay]

국제사회는 티베트인의 절규를 중국의 정치 경제적 압력으로 외면한다. 미국 외에 프랑스 정도가 티베트의 위대한 문화유산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중국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불교가 융성한 한국도 불교계가 수차례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요청했지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생존이 거의 불가능한 고산지대에서 야크, 바람과 혹한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 안나푸르나와 히말라야 베이스 캠프를 가다 보면 ‘옴마니 밧메훔’의 구슬픈 불경 소리를 어디서든 들을 수 있다.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면서 독특한 문화유산을 간직한 강인한 티베트인. 그들에게도 꽃 피는 봄날이 찾아와 찬란한 문화유산과 종교적 신앙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란다. 평화롭고 행복한 일상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검게 그을린 순박한 그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져 나가기를 염원한다.

청강투자자문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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