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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대 曰] ‘리더십-팔로우십’의 요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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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4호 30면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다시 12월이다. 연말 분위기가 뒤숭숭하여 『논어』를 들춰봤다. 이런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예 갖췄다고 내 할 일 다 한 것 아냐 #잘못 고치길 꺼리지 않아야 큰 사람

“임금이 신하를 부리고,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일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주 혼란했던 시기의 한 정치인이 공자에게 던진 질문이다. 요즘 우리 사회와 정치권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은 질문인 듯해 조금 더 읽어봤다.

지나간 옛이야기로만 치부할 것은 아닌 것 같다. 인간이 모여 살아가는 사회에서 리더십과 팔로우십의 문제만큼 기본적인 과제는 없는 것 아닌가. 『논어』의 질문을 이런 식으로 바꿔 볼 수도 있겠다. ‘리더는 조직원을 어떻게 대하고, 조직원은 리더를 어떻게 따라야 하는가?’

공자는 이렇게 답했다. “임금은 예(禮)로써 신하를 부리고, 신하는 임금을 충(忠)으로 섬겨야 합니다.” 예와 충이라는 표현이 나오니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이 문답 앞뒤에 나오는 구절들을 보면 미리 그렇게 속단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예는 사회와 조직의 질서를 유지하는 제도나 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갖추는 것은 사회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이런 말만 한다면 매우 갑갑한 얘기가 될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데 공자의 묘미가 있는 것 같다.

예를 갖췄다고 해서 모든 게 다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예는 그야말로 기본일 뿐이다. 예를 갖췄으니 내가 할 도리를 다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예의 근본은 형식이 아니라 마음이다. 공자는 장례식을 사례로 들어 설명했다. 형식을 잘 갖추는 것보다 슬퍼하는 것이 장례의 근본이라고 했다. 그래서 공자는 “사람으로서 어질지 못하다면 예를 따르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던 것이다. 어떤 행위에 내 마음의 진정성이 따라가는 것을 공자는 어질다는 뜻의 인(仁)으로 표현했다. 예의 진실성 여부는 인의 유무에 달린 셈이다.

공자는 매사에 묻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공자는 제사의 전문가로도 알려졌는데 제사를 지낼 때 모든 일을 물어가면서 진행했다. 그 모습을 본 어떤 사람이 “누가 공자더러 예를 안다고 했느냐?”며 힐난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공자의 대답이 이랬다. “그렇게 묻는 것이 예입니다.”

물음은 대화의 한 조건이다. 오만한 마음에서는 물음이 나오지 않는다. 묻기 위해선 ‘내가 다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물음은 듣기와 쌍을 이룬다. 공자 같은 성인(聖人)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잘 듣는 것이다.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잘 들을 수 있고 잘 물을 수 있다.

팔로우십의 표현인 충(忠)은 논어에서 ‘충서(忠恕)’로 표현되기도 한다. 충과 서는 모두 마음으로 이루어진 단어들이다. 충은 진실한 마음이고, 서는 내 마음을 미루어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다. 단지 팔로우십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원만히 가꾸어 나가는 기본자세라고 할 수 있겠다. 임금과 신하가 모두 지향하는 이상적 인간이 군자라는 점에서 충서는 군자의 조건이라고 할 수도 있다. 잘못을 아예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없다. 군자의 다른 이름은 대인(大人)이다. 큰 사람이 여느 사람과 다른 점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잘못을 고치기를 꺼리지 않는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이런 것들도 되돌아봤으면 한다. 근대화, 민주화가 우리 삶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근대화와 민주화는 일종의 예의 형식이 바뀐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 빠진 근대화와 민주화의 한계를 보완하는 것이 이 시대의 새로운 숙제로 부각되고 있다. 형식을 빛내주는 것은 진실한 마음이다. 2021년은 나의 마음과 너의 마음이 진실하게 만나는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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