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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워커·펫시터·개 셰프가 교사보다 유망하다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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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4호 16면

견공, 직업의 세계

반려동물 전문 미용사. 1마리당 소요시간은 2시간 정도. 4만원에서 10만원선으로 미용 외에도 마사지 등 다양한 서비스가 늘고 있다. [사진 라이프앤도그]

반려동물 전문 미용사. 1마리당 소요시간은 2시간 정도. 4만원에서 10만원선으로 미용 외에도 마사지 등 다양한 서비스가 늘고 있다. [사진 라이프앤도그]

“꿈이요? 그냥 돈 벌려고 다니는 거죠.”

떠오르는 반려동물 관련 직업 #출산율 저하로 자녀 교육비 줄고 #반려동물 케어 늘어 돈 쏟아부어 #개·고양이 관련 ‘펫잡러’ 전망 밝아 #시장 초기 단계, 가능성 무궁무진 #정부, 내년 중 국가자격증 시행

대다수의 사람은 어린 시절 꿈과는 상관없는 일을 하며 현실을 살아간다. 벼룩시장 구인구직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꿈과 정확히 일치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8%, 그나마 관련이 있는 직종에 종사하는 경우가 32%가량 된다. 반 이상인 60%의 어른들이 어릴 적 장래희망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런 면에서 난 꽤 운이 좋은 편이다.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는 질문에 늘 ‘패션 디자이너’라고 대답했던 나는 대학원에서 무대의상 디자인을 전공하던 중 ‘패션 매거진’이라는 신세계에 눈을 떴다. 이후 패션 에디터를 거쳐 편집장이 되었으니 꿈의 8할은 이뤘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꿈꾸던 직업을 가진다는 게 꼭 행복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악명높은(?) 패션업계, 밥 먹듯 반복되는 야근과 기센 사람들이 벌이는 신경전 사이에서 나의 몸과 마음 모두가 서서히 지쳐 가고 있었다. 주변을 가득 에워싼 예쁘고 멋진 것들에게서 더는 어떤 감흥도 느낄 수 없게 된 어느 날, 나는 무작정 차를 끌고 길을 나섰고 운명처럼 유기견 한 마리를 만나게 됐다. 그리고 많은 반려인이 그렇듯 내 인생은 ‘개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취업 수월, 실력자들 러브콜 경쟁 치열

최근에 가장 핫하게 떠오르는 화식. 영양 습식사료. 반려견들과 함께 입장이 가능한 카페, 식당이 또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사진 라이프앤도그]

최근에 가장 핫하게 떠오르는 화식. 영양 습식사료. 반려견들과 함께 입장이 가능한 카페, 식당이 또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사진 라이프앤도그]

우연히 만나서 ‘우연’이라고 이름 붙인 첫째가 외로울까 봐 유기견 봉구를 또 데려왔고, 두 마리의 개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나를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붙들어 맸다. 모두의 반대를 뒤로하고 패션 잡지 대신 개 잡지를 창간하고, 손수 개밥을 만들어 주겠다며 겁 없이 수제 간식 브랜드까지 런칭하기에 이르렀다. 건사료만 평생 먹고 사는 개를 두고 맛있는 밥을 혼자 차려 먹으려니 미안한 마음에 생일에는 고기케이크를, 명절에는 갈비탕을 끓이다가 일이 커졌다.

매거진 발행인 대신 ‘개 셰프’라고 불리는 요즘 반려동물을 위한 수제요리를 주제로 한 외부 특강 요청이 자주 들어온다.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수업에 집중하는 학생들의 연령대는 안전칼을 줘야 하는 아이부터 나이 지긋한 은퇴자까지 매우 다양하다. 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어떻게 하면 선생님처럼 개 셰프가 될 수 있나요”다.

최근에 가장 핫하게 떠오르는 화식. 영양 습식사료. 반려견들과 함께 입장이 가능한 카페, 식당이 또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사진 라이프앤도그]

최근에 가장 핫하게 떠오르는 화식. 영양 습식사료. 반려견들과 함께 입장이 가능한 카페, 식당이 또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사진 라이프앤도그]

이제 개가 건강에 좋은 친환경 수제 음식을 먹고, 유치원을 다니고, 미용실에서 관리를 받는 게 더는 유별나지 않은 시대다. 세계미래학회의 ‘전망 좋은 10대 산업’에 꼽힐 정도로 반려동물 산업이 호황가도를 달리면서 관련 직업 또한 다양하게 세분화되는 추세다. 쉽게 말해 가족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 존재인 만큼 사람에게 필요한 직업이라면 무엇이든 응용과 적용이 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전통적인 직업인 수의사, 반려동물 미용사, 훈련사 이외에도 펫시터, 도그워커, 동물매개 심리 상담사, 펫용품 디자이너, 펫푸드 요리사, 펫 포토그래퍼,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등 신종 이색 직업들이 뜨는 건 이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앞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보다 반려인 대신 개를 산책시켜 주는 ‘도그워커’가 더 유망한 직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소비자 수요변화를 분석한 ‘컨퍼런스 보드’ 보고서를 인용해 “2025년이 되면 미국 가정 내 반려동물을 위한 소비가 자녀 교육을 위한 지출보다 세 배 이상 성장할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출산율이 저하되면서 자녀 대신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경우가 많아졌고,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가 반려동물 케어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막대한 돈을 쏟아부으리라는 전망 덕분이다. 반대로 5~24세의 학령인구는 점점 감소해 관련 지출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급속도로 노령화되는 국내 사정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머지않은 미래에 배우자의 직업으로 교사 대신 펫 관련 직종을 더욱 선호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도그 워커. 매일 산책을 시킬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서비스로 하루 1시간 2만원 선에서 이용할 수 있다. [사진 라이프앤도그]

도그 워커. 매일 산책을 시킬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서비스로 하루 1시간 2만원 선에서 이용할 수 있다. [사진 라이프앤도그]

각종 직업을 대리 체험해 인기를 끌고 있는 유튜브 채널 ‘워크맨’에서 반려견 유치원 일일교사로 나선 장성규는 “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만족도 최고인 행복한 직업인 것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펫잡’이란 꿈과 현실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이상적인 직종임에 분명하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 조사한 수의사의 직업 만족도는 75%로 직업 평가 순위 5위에 해당한다. 개와 10분만 함께 놀아 줘도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떨어지는 과학적 연구가 있을 정도이니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살아 있는 생명을 상대로 하는 만큼 로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분야이니 장래성도 밝은 편이다.

이에 발맞춰 정부 또한 미래유망직업인 ‘펫잡러’들을 위한 지원을 다양하게 선보이며 일자리 확산에 나섰다. 올 초 서울시에서는 ‘애견용품 디자이너’를 여성 유망직종 20개 중 4위로 선정해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교육했다.

경기도의 경우 대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반려동물산업 분야 기술 창업 프로그램을 실시해 창업공간 무상 지원과 3200만원의 지원금 등 혜택을 제공하기도 했다. 아직까지 시장 초기도입 단계인 만큼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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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新직업

반려동물 新직업

반려동물 미용 교육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K대표 원장은 “생활 수준이 높아진 만큼 반려견 미용 전문가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었고, 취업도 수월한 편”이라며 “아직까지 고객이 원하는 고급인력이 충분히 배출되지 않았다. 실력자들의 경우 서로 데려가려는 러브콜 경쟁이 치열하다”고 귀띔해 주었다. 나이 제한이 없는 기술직이라 모녀가 함께 배우러 오는 경우도 있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성장산업임에도 아직까지 반려동물 관련 자격증 발급은 협회나 민간 사설단체 위주로, 국가 공인 자격증은 전무한 상태다. 이에 따라 정부는 내년 중 국가자격증을 시행한다고 밝힌 바 있다. 반려동물 관련 취업을 꿈꾼다면 미리 체크해 두고, 기회를 놓치지 않길 권한다.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던 어린 시절, 예쁜 드레스 대신 바지 두 벌로 개들과 뒹굴며 겨울 한 철을 나는 어른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꿈을 이룬다는 건 단순히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가장 나답게 키워 가는 일이란 걸 개를 키우며 뒤늦게 깨달았다.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반려견과의 만남이 나에게는 원효대사의 ‘해골물’이었던 걸까. 두 마리의 개와 아들, 사랑하는 내 가족에게 손수 밥을 해먹이는 게 가장 행복한 지금, 나의 직업은 ‘개 셰프’다.

이수진 ‘라이프앤도그’ 발행인
패션 에디터를 거쳐 매거진 회사 대표를 지내다가 반려견 ‘우연’이와 ‘봉구’를 만나며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현재 반려동물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라이프앤도그’의 발행인이자 푸드 브랜드 ‘키친앤도그’ 대표로 개와 함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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