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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게 살고 고요히 떠났다..수묵추상 선구자 서세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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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서울 성북동 작업실에서 작업하는 서세옥 화백의 모습. 이주연 작가 촬영. [사진 리만머핀]

생전 서울 성북동 작업실에서 작업하는 서세옥 화백의 모습. 이주연 작가 촬영. [사진 리만머핀]

"늙게 돼 죽으니 슬프다고 하지만, 슬픈 게 아니라 기쁜 것이다. 또 새 생명이 뒤에서 오니까···."  

2015년 연말과 2016년 연초 두 차례에 걸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산정(山丁) 서세옥 화백의 '기증작품 특별전'이 열렸을 때, 서 화백은 영상 속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평생 자신이 매달려온 그림, 그 끝도 없는 여정에 대한 담담한 회한이 비친 말이다.

29일 별세, 가족장 치른 뒤 외부 알려 #서예 기법과 회화 결합, 현대적 문인화 #대표작 100점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기증

한국화가 산정 서세옥이 숙환으로 지난달 29일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91세. 대한민국예술원은 3일 공지를 통해 “대한민국예술원 미술분과 서세옥 회원께서 2020년 11월 29일 숙환으로 별세하셨다”고 밝혔다. 이어 “유족은 조문객의 코로나19 방역 차원에서 가족장으로 장례 후 별세 사실을 알려드리게 됨을 양해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국화의 현대화 작업을 주도한 선구자는 그렇게 고요히 떠났다.

화단 변혁의 선구자  

2016년 갤러리현대 전시에 출품된 서세옥의 '기다리는 사람들' [사진 갤러리현대]

2016년 갤러리현대 전시에 출품된 서세옥의 '기다리는 사람들' [사진 갤러리현대]

산정은 1929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학자 서장환(1890~1970)으로 독립운동과 의병가족 지원을 위한 자금줄 역할을 한 항일지사였다. 어린 시절부터 한문서적에 둘러싸여 살았고 서예와 시 쓰는 법을 배웠다. 1946년에 설립된 서울대 미대 제1회 학생으로 입학했으며 1950년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당시 동양화과 교수를 지낸 근원 김용준(1904~1967)의 전통 미술 교육과 묵법 화풍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대학 4학년이던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 출품한 '꽃장수'라는 작품으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해방 후 동양화 1세대였던 그는 서예 기법을 회화에 접목한 작업으로 평생 화단 변혁의 선두에 서 왔다. 그는 먹으로 그리되 과거 문인화를 답습하지 않았고 간결한 선묘, 담채에 의한 담백한 공간 처리 등을 거쳐 파격적인 수묵 추상으로 독창적 화풍을 개척했다. 1959년 묵림회(墨林會) 를 발족해 현대적 한국화의 바람을 이끌었다. 묵림회는 서울대 출신의 동료들과 후배들이 참여한 모임으로 그들의 활동은 오래가지 못했으나, 전통화단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온 의미 있는 사건으로 기록됐다. 26세에 서울대 교수가 된 그는 40년간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점과 선만으로 다 표현하라  

서세옥, '두사람', 39.8 x 45cm, 닥종이에 수묵, 2004.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서세옥, '두사람', 39.8 x 45cm, 닥종이에 수묵, 2004.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서세옥의 '춤추는 사람들' [중앙포토]

서세옥의 '춤추는 사람들' [중앙포토]

서세옥의 기념비적인 '인간' 연작이 시작된 것은 1960년대였다. '사람' 연작은 추상적인 붓터치와 사람들이 마치 '손에 손잡은' 듯이 연결된 패턴에 집중한 회화로, 그의 화업에서 수십 년간 지속해서 확장된 작업이었다. 이 시리즈는 점과 선 그리고 다양한 스케일과 굵기, 그리고 농담을 가진 필법으로 다양한 인물의 형상을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추상화이면서도 구상화이기도 한 그림 속 인물들은 연령, 인종, 그리고 성별로 구분할 수 없고,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원의 미, 절대미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점과 선만으로 집약해야 한다."  서세옥은 자신의 조형 이념을 이렇게 요약했다. 자연의 근원적인 질서는 '영원미' '절대미'이며, 이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점과 선으로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가 평생동안 장황한 설명과 군더더기를 모두 걷어내고, 오로지 중요한 점과 선, 즉 뼈대만으로 그림의 가장 높은 경지를 추구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현대미술의 지형도』를 쓴 박영대 경기대 예술학과 교수는 "서세옥의 수묵추상은 최소한의 형상과 최소한의 내용이란 표현에 어울리는 고도로 압축되고 절제된 화면을 추구했다"면서 "그는 동양 조형 전신의 뼈대를 선으로 보고 먹 선에 의해 골기가 살아 있는 힘찬 세계를 구성하는 것을 추구했다"고 말했다.

대표작 100점 기증하고 떠났다

그의 화면에 나타난 사람들은 단순하게 표현된 듯 하지만 마치 살아 있는 듯 역동성이 극대화된 그림이기도 하다. 박영택 교수는 "그의 대표작인 '인간' 시리즈는 수묵의 추상 가능성의 모색과 함께 인간의 모습을 어떻게 조형적으로 승화시키느냐 하는 명제를 추구한 작품"이라며 "그는 도상으로 인간을 표상할 뿐만 아니라 역동적인 붓 자국을 통해 사람의 흔적을 남김으로써 인간을 표상한다"고 분석했다.

서세옥은 서울대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면서도 한국미술의 국제화 흐름에 앞장서 상파울루비엔날레, 카뉴국제회화제 등에서 활약했다. 1993년 국민훈장 석류장, 2005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06년 제4회 이동훈미술상, 2007년 대한민국예술원상, 2010년 한국미술협회 대한민국미술인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2008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됐고, 2009년 개관한 성북구립미술관 명예관장으로 활동했으며 2012년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2014년 서세옥은 자신의 시대별 대표작 등 핵심작을 추려 100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 보다 많은 대중이 그의 작품을 언제든 감상할 수 있는 길을 터놓은 것이다.

서세옥의 남다른 통찰력과 깊은 철학적 사유는 그의 두 아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의 장남 서도호는 공간과 인간의 관계를 모색해 천과 실로 만든 ‘집’ 설치작품이나 다양한 재료로 표현한 군상 등으로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서세옥의 차남인 서을호(서 아키텍트 대표)는 건축가다. 서을호는 서울 도산대로 사거리 6층짜리 건물을 리모델링해 총 9대의 자동차를 90도로 번쩍 올려다 붙여놓은 '현대 모터스튜디오 서울' 을 설계했다. 서세옥은 또 아름다움에 대한 안목이 남달라 서울 성북동 자택 내에 창경궁 연경당을 본뜬 한옥을 짓고 살았던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 집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도호·을호 두 형제는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예술제인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에 한국관 대표작가로 참여했다.

2015~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서세옥 전시.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2015~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서세옥 전시.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지난 5월 홍콩에서 열린 서세옥 개인전.[사진 리만머핀]

지난 5월 홍콩에서 열린 서세옥 개인전.[사진 리만머핀]

지난 5월 홍콩에서 열린 개인전 풍경. [리만 머핀]

지난 5월 홍콩에서 열린 개인전 풍경. [리만 머핀]

최근 몇 년간 서세옥은 여러 차례 개인전을 가졌다. 2016년 갤러리현대에서 연 데 이어 2017년에는 뉴욕의 유명 화랑인 리만 머핀 갤러리에서, 지난 5월에는 홍콩 리만 머핀 갤러리에서 생애 마지막 전시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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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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