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부부의 디스전, 힙합 디스 배틀과 다른 점은

중앙일보

입력 2020.12.04 13:00

[더,오래] 박혜은의 님과 남(89)

매월 한 가지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월간지를 정기 구독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만난 월간지는 “당신의 삶엔 대화를 하나요?”라고 묻고 있었죠. 대화를 주제로 한 글들을 읽으며 나의 대화를 생각해 보게 되었던 것이 잡지 구독의 시작이었습니다. 책 속 ‘대화에 진심을 담을 때 우리의 관계는 알맞은 온도가 됐다’는 문장을 여러 번 곱씹어 읽기도 했죠.

친구와 가족, 직장 동료 등등 많은 사람과 마주해 참 많은 말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지만 나는 정말 ‘대화’를 하고 있나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도 저와 비슷하기에 관련된 책이 꾸준히 발간되고 또 꾸준히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겠지요.

문득 ‘대화’의 어학 사전 속뜻을 다시 검색해 봅니다.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 또는 그 이야기. 일방적으로 나의 말을 주거나 일방적으로 상대의 말을 받는 것이 아닌, 설명 그대로 주고받는 과정이 바로 대화입니다. 마주 대하여 주고받는 이야기에 얼마나 진심을 담고 있는지, 그리고 내 속에 있는 마음을 잘 전달하는 표현 방법을 알고 있는지에 따라 우리 대화의 적정한 온도가 만들어지겠죠.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이 디스전을 흥미롭게 지켜보다 문득 부부도 많은 순간 디스전을 펼치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사진 Mnet '쇼미더머니9' 포스터]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이 디스전을 흥미롭게 지켜보다 문득 부부도 많은 순간 디스전을 펼치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사진 Mnet '쇼미더머니9' 포스터]

대화가 잘 되는 상태를 우리는 대화가 잘 ‘통한다’고 표현합니다. 막힘이 없는 상태를 말하죠. 잘 통하지 않는 대화, 그래서 막힘을 뚫기 위해 애를 써야 하는 대화를 나누고 난 후에는 대게 피곤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피곤함이 쌓이는 상대와는 어느 순간 대화를 피하게 됩니다. 굳이 마주치지 않아도 되는 상대라면 단순히 피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상대, 가장 쉽게 부부라면 일상이 피곤해지죠. 구독을 시작한 책에서처럼 대화의 온도는 관계의 온도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늦은 밤잠이 오지 않아 채널을 돌리다 음악 전문채널에서 진행하는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벌써 9번째 시즌이 시작된 ‘쇼미더머니’를 오랜만에 보게 되었습니다. 그날의 서바이벌 주제는 팀 대항 디스 배틀이었습니다. 디스전이라 불리는 디스 배틀은 ‘respect’의 반대인 ‘disrespect’의 줄임말로 다른 힙합 그룹이나 뮤지션을 폄하 혹은 공격하기 위한 행동 혹은 노래를 말하는데, 힙합 장르에 있어 자연스러운 문화입니다. 공격적인 표현을 통해 다소 거칠어 보이기도 하지만 이 과정에서 실력을 겨루고 함께 실력을 키워나가게 됩니다. 친한 사이지만 장난스레 디스를 하기도 하고 때로 실제 감정을 담아 큰 싸움으로 번지기도 합니다. 힙합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무슨 짓인가 싶게 들리기도 하겠지만, 힙합을 좋아하는 팬에게는 음악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기도 하죠.

디스전에 참여하기 위해 서로는 상대방의 평소 약점이 무엇인지, 무엇에 멘탈이 흔들릴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야 상대가 더 약이 오를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서바이벌인 만큼 상대의 공격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내가 준비한 랩을 잘 전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디스전을 흥미롭게 지켜보다 문득 부부도 많은 순간 디스전을 펼치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때때로 부부의 대화를 들여다보면 마치 힙합 디스전처럼 상대를 폄하 혹은 공격하기 위해 상대의 약점을 들춰내고 격한 감정을 마치 랩이라도 하듯 빠른 속도로 상대방에게 쏟아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힙합에서는 그 과정을 통해 서로의 실력이 늘기도 하지만 부부 사이의 디스전은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게 된다는 것이죠.

오랜만에 마주한 프로그램에서 우리는 통하는 말이 아닌 이기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닌지, 대화라고 하면서 랩을 쏟아내듯 일방적인 나의 말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말하는 하늘과 상대방이 말하는 하늘이 같은 색인지 다른 색인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물어보고 말해주는 과정을 통해 확인되어야 그다음 대화가 막힘 없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사진 pxhere]

내가 말하는 하늘과 상대방이 말하는 하늘이 같은 색인지 다른 색인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물어보고 말해주는 과정을 통해 확인되어야 그다음 대화가 막힘 없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사진 pxhere]

하늘색 하면 어떤 빛깔을 떠올리시나요? 매일의 하늘이 다르듯 내가 말하는 하늘과 내 앞의 사람이 떠올리는 하늘의 색은 다를 수 있습니다. 내가 말하는 하늘과 상대방이 말하는 하늘이 같은 색인지 아니면 다른 색인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물어보고 말해주는 과정을 통해 확인되어야 그다음 대화가 막힘 없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하늘을 떠올린 채 확인 없이 대화를 이어가면서 속으로는 대화가 안 통한다고 하고 있진 않을까? 오직 내가 떠올린 하늘빛만이 맞는 것이라고 상대에게 말(전달)하고 있지는 않을까?

매달 받아보는 월간지와 텔레비전 속 힙합디스전을 보며 우리의 ‘대화’를 새삼 떠올려 봅니다.

굿커뮤니케이션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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