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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를 ‘한국 파오차이’라는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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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성훈 기자 중앙일보 베이징특파원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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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종주국 논쟁은 한국의 판정승으로 끝난 분위기다. 하지만 논란 과정을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시사점이 적지 않아 보여서다.

알려진 발단은 중국 민족주의 성향 매체 환구시보 보도다. 그런데 더 들어가 보면 중국시장 관보가 사흘 먼저 발표했다. 이 부분을 짚는 건 중국 매체가 쓴 기사로 치부할 일이 아니란 점 때문이다. 이 기관지는 중국 정부 부처인 시장감독관리총국이 발행한다.

관보의 제목은 중국 파오차이(중국식 염장채소) 국제 표준 제정, 한국 매체 ‘우리의 치욕’이었다. 한국의 분노를 인용하는 방식으로 중국이 김치의 국제 표준을 빼앗았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환구시보는 기사를 그대로 가져왔지만 제목을 더 자극적으로 바꿨다. ‘김치 종주국의 치욕에 한국 언론이 들끓는다’. 정부기관에서 시작하고 언론을 통해 확대되는 원조 논란. 상대는 언론이 아니라 중국 정부를 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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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한 중국 네티즌들의 반응은 과격했다. “김치 많이 먹는다고 종주국이라고 주장하는 건가”, “중국서 가져가 놓고 자기들 거라 우기면 다 되나”. 심지어 “한국의 사전적 정의:도둑, 식민지, 자신없음”이라는 댓글도 있다. 일부의 시각일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력이 커지면서 덩달아 주변국에 대한 문화우월주의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논리의 근거는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인 ‘바이두’에서도 발견된다. 파오차이를 검색하면 ‘한국 파오차이는 원래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며 16세기부터 고추를 넣어 만들기 시작했다’고 나온다. 물론 상황은 금세 반전됐다. 외교부 화춘잉 대변인은 “논쟁이 있었으나 한·중간에는 협력할 게 더 많다”며 물러섰다. 하지만 원조 논쟁이 여론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의 대응은 아쉽다.

주중 한국 대사관은 논란이 벌어진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주무부처가 대응하고 있고 한 언론의 문제제기일 뿐이어서 어떻게 대응할지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국내 대응 못지않게 중국 여론을 향한 적극적인 반박이 필요하다. 중국 언론이 선별된 뉴스만 전달하기에 더 그렇다. 환구시보뿐 아니라 중국 시장감독관리총국에 대한 절제된 항의도 필요했다고 본다. 왜 이런 관보가 나왔는지 따져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바이두 백과사전에 표기된 한국 김치에 대한 설명 수정 요구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중국 외교부는 외국 매체가 중국 정부 입장과 다른 기사를 내놓을 경우 대부분 반박 성명을 낸다. 주중대사관의 중국 웨이보 계정에 김치 논쟁이 벌어진 다음 날 올라온 글은 ‘재중 기업, 9기 인큐베이션 프로그램 입주식’이었다.

박성훈 베이징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