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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 사고후 경찰 마스크 벗긴 운전자, 알고보니 청각장애인 [영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22일 오후 2시 30분쯤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왕복 4차로 도로. 도로변에서 1t 화물차와 오토바이 간에 가벼운 접촉사고가 발생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기 구리경찰서 경찰관이 현장조사를 진행하는 순간 화물차 운전자가 다짜고짜 경찰관의 마스크를 턱 아래로 끌어내렸다. 경찰은 깜짝 놀라 "코로나19 때문에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설명했지만, 화물차 운전자는 다시 마스크를 끌어내렸다.

3일 경찰에 따르면 당시 50대 화물차 운전자는 청각 장애인이었다고 한다.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은 무전으로 수어(手語, 수화언어의 줄임말)를 할 줄 아는 이시우(45) 경위를 급히 찾았다. 마침 인근 교문지구대를 방문 중이던 이 경위는 3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청각 장애인, 입 모양 보려 마스크 끌어 내려

화물차 운전자가 마스크를 끌어 내린 건 이 경위가 수어로 대화를 시작하던 때였다. 화물차 운전자가 다짜고짜 이 경위한테 다가와 쓰고 있던 마스크를 턱 아래로 끌어내린 것이다. 이 경위가 놀라 “왜 이러느냐”며 마스크를 다시 올려 쓰자, 화물차 운전자는 다시 마스크를 끌어 내렸다고 한다.

이시우 구리경찰서 교통관리계 4팀장. 경기북부지방경찰청

이시우 구리경찰서 교통관리계 4팀장. 경기북부지방경찰청

이 경위는 처음에 당황스러웠지만 자신의 마스크를 끌어내린 이유를 금방 알아차렸다. 27년간 수어 통역 봉사활동을 한 경험에 비춰볼 때 곧바로 이해됐던 것. 청각장애인들은 손동작에다 입 모양과 표정까지 보고서야 상대방이 전달하려는 말뜻을 제대로 알아듣기 때문이었다.

수어 익힌 경찰이 통역하며 해결  

이 경위는 이후 마스크를 턱에 걸친 채 수어로 사고 조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화물차 운전자와 오토바이 운전자 사이의 대화를 수어로 통역해 줬다. 그러자 사고 당사자 두 명은 곧바로 원만하게 현장에서 합의했다.

이 경위는 “청각 장애인인 화물차 운전자가 접촉사고가 합의 처리된 후 ‘경찰 덕분에 수어로 대화가 가능해 접촉사고가 원만하게 처리돼 너무 고맙다’고 수어로 인사말을 건넬 때 수어를 배운 보람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 19 확산으로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가 돼 버린 요즘 청각장애인들이 겪는 남모를 고통을 절감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 경위는 대학 1학년이던 지난 1993년 대구 YMCA 소리수화봉사회에서 수어를 배웠다. 봉사활동을 하며 좋은 동료들과 교류하는 형을 본받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이후 그는 수어동아리 활동을 통해 정기적으로 수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경찰청이 개최한 치안산업박람회장에서 경찰청장 등의 축사를 수어로 통역하기도 했다.

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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