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아직도 이런 풍경이 남아 있구나…‘서울 옛길’ 사진전

중앙일보

입력 2020.12.03 15:12

업데이트 2020.12.03 16:34

'서울 옛길' 사진전-흥덕동천길 ⓒ이한구

'서울 옛길' 사진전-흥덕동천길 ⓒ이한구

“어르신들이 ‘교보빌딩 뒤로 옛날에는 개천이 흘렀어’라고 하면 ‘에이 설마’ 하겠죠. 그런데 우리 눈에는 안 보이지만 서울 도심 아래선 지금도 옛 물길이 흐르고 있어요.”(이한구)

이달 13일까지 종로구 청운동에 있는 갤러리 ‘류가헌’에서 박종우·이한구 사진전 ‘서울 옛길’이 열린다. 두 사람이 1년 간 서울 구석구석을 누비며 기록한 소중한 풍경들이다.
“서울의 옛길이라는 게 어디서부터 시작할 지 참 막막하잖아요. 그래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지도인 ‘한양도성도’(17세기 무렵 제작 추정)와 일제 강점기 때 제작한 서울 지도를 중첩해봤죠. 그랬더니 서울의 중요한 길은 다 물길을 기반으로 조성됐더라고요.”(박종우)

'서울 옛길' 사진전-옥류동천길 ⓒ박종우

'서울 옛길' 사진전-옥류동천길 ⓒ박종우

한양도성 안에 있는 ‘내사산(內四山)’은 북악산·낙산·남산·인왕산을 일컫는 말이다. 이 내사산 정상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낮은 곳으로 흘러 마지막엔 청계천으로 모인다. 천이 흐르면 양쪽으로 사람이 지날 수 있는 둑이 생기고, 그 밖으로는 크고 작은 마을이 들어선다.
두 사진가는 청계천으로 모이는 23개의 물길 중 옛 발자취를 더듬을 수 있을 만한 10개를 추렸다. 인왕산 수성동 계곡에서 발원한 물이 서촌을 비집고 흘러내리는 옥류동천, 삼청동길을 따라 삼청공원에서부터 종로1가까지 이어지는 삼청동천, 정독도서관에서부터 감고당길을 지나 인사동을 거치는 안국동천 등이다. 여기에 임의로 ‘길’자를 붙였다. 옥류동천길, 삼청동천길, 안국동천길, 제생동천길, 북영천길, 흥덕동천길, 필동천길, 묵사동천길, 남산동천길, 정릉동천길. 그리고 각각 5개의 길을 맡아 지난해 여름부터 올여름까지 길 위의 사계절을 담았다.

'서울 옛길' 사진전-정릉동천길 ⓒ박종우

'서울 옛길' 사진전-정릉동천길 ⓒ박종우

'서울 옛길' 사진전을 여는 박종우(왼쪽), 이한구 사진가. 사진 박김형준

'서울 옛길' 사진전을 여는 박종우(왼쪽), 이한구 사진가. 사진 박김형준

지난 7월에는 이 기록들을 한 권의 사진집 『FLOW_서울 옛길』로 묶었다.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기록하겠다’는 서울시 의뢰로 시작한 작업이라 책은 비매품이다. 류가헌의 사진전은 서울 옛길의 정취와 감성을 다른 이들과도 나누고 싶은 두 사진가가 따로 마련한 자리다.
“길을 다니다보면 커다란 쇠판으로 만든 뚜껑들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지하 물길로 내려갈 수 있는 지하도 입구죠. 지도를 펴고 그 뚜껑들을 따라가면 물길의 원류를 찾을 수 있어요. 하나하나 찾아가 봤더니 백운동천의 원류는 창희문 옆에, 옥류동천의 원류는 수성동 계곡에 있더라고요.”(박)

'서울 옛길' 사진전-제생동천길 ⓒ이한구

'서울 옛길' 사진전-제생동천길 ⓒ이한구

'서울 옛길' 사진전-정릉동천길 ⓒ박종우

'서울 옛길' 사진전-정릉동천길 ⓒ박종우

두 사람이 촬영을 하는 내내 힘들었던 건 수풀을 헤치고 나가야 했던 산길이 아니었다. 급격한 산업화로 옛길의 흔적은 거의 남지 않은 서울의 현재 그 자체가 난감했다고 한다.
“동네마다 골목마다 모습이 너무 비슷비슷해요. 특히 옛 물길의 상류는 전부 빌라촌·연립주택이라 카메라로 담을 만한 풍경이 없었죠.”(박)
“그나마 북촌 가회동에 기와집들이 좀 남았는데 여기도 온통 골목마다 주차 차량이 가득해서 길의 미학을 살리기는 어려웠어요. 아이들은 사라지고 자동차로 꽉 채워진 골목길들을 보면서 ‘아, 우리가 이런 시대에 살고 있구나’ 쓸쓸했고, 500년 넘은 유럽 도시들의 아름다운 골목 풍경이 다시 보이더군요.”(이)
두 사람은 이 안타까움을 개성 있고 감성적인 사진을 찍기 위한 원동력으로 삼았다. 뷰파인더 안에 비판의 시선만 담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물길이 빌딩을 지나 자동차보다 더 빠르게 사람들 옆을 흐르는 모습을 상상했다고 한다. 서울의 모습을 단순히 ‘기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따뜻하게 ‘추억’할 수 있도록 삭막한 도시 속에서 각자의 감성과 감각을 덧댄 풍경들을 열심히 찾아냈다. 흐드러지게 핀 꽃잎, 시야를 가릴 만큼 펑펑 쏟아지는 눈, 뜨거운 입김을 쏟아내며 종종걸음치는 사람들. 이 사진들이 다큐멘터리 특유의 단단하면서도 서정적인 감각으로 따뜻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두 사람의 경험치가 충분히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 옛길' 사진전-제생동천길 ⓒ이한구

'서울 옛길' 사진전-제생동천길 ⓒ이한구

신문사 사진기자 출신인 박종우 작가는 프리랜서로 독립한 후 다큐멘터리 프로덕션을 차리고 전 세계 소수민족의 문화를 영상과 사진으로 담아왔다. 사진집 『히말라야 오딧세이』는 다큐 사진가들의 교본으로 통한다. 89년 한국인 최초로 티베트를 취재했던 그는 2003년 히말라야 산악 교역로인 '차마고도'의 존재를 최초로 발견하고 방송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바 있다. 지금도 ‘서울 성곽’을 비롯한 서울의 면면을 꾸준히 카메라에 담고 있다.
‘종으로 횡으로’라는 별칭을 가진 이한구 사진가는 산을 너무 좋아해서 한국의 백두대간은 물론 히말라야 고산을 숱하게 오르내리며 마을 풍경과 사람들의 문화를 담아왔다. 또 80년대부터 지금까지 ‘청계천’이라는 주제로 사진 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이라는 거대도시 안에 이렇게 허름하고 순박하고 놀랄 만한 풍경이 있다니 기적 같은 일이다. 그 원동력은 사람이고, 그들의 밀고 당기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싶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글=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박종우, 이한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