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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사랑과 배려의 외투 속에 감춰진 광기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한형철의 운동화 신고 오페라 산책(39)

1918년 푸치니가 발표한 ‘외투’는 파리 센강을 배경으로, 보트하우스에서의 흔들리는 욕망과 질투의 광기를 외투 속에 품는 형식으로 풀어 놓은 단막 오페라입니다. 이 작품은 독립적인 작품이기는 하나 다른 단막극인 ‘수녀 안젤리카’, ‘잔니 스키키’와 함께 엮은 3부작 ‘일 트리티코’ 중 하나랍니다.

이 작품은 20세기 전후에 유행한 ‘베리스모 오페라’랍니다. 기존의 오페라가 신화나 귀족의 화려한 저택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사랑을 노래하였다면, 이제는 평범하거나 하층민의 고통스러운 삶을 표현하고자 한 사조인 베리스모 오페라의 대표작 중 하나랍니다.

이제 외투가 필요한 계절입니다. 외투는 대개 찬바람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지요. 동시에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기도 하답니다. 흔히들 데이트할 때 연인이 추워하면(추워하지 않아도 배려의 표시로) 외투를 벗어주잖아요. 또 사랑하는 아이를 보듬어 주는 방어막이 되기도 하지요. 부모의 넓은 외투 안에서 아이는 장난치며 깔깔대기도 하면서요. 그렇듯 외투는 배려이고 사랑입니다. 그러나 오페라 ‘외투’에서 그러한 배려와 사랑은 주인공의 추억 속에만 존재할 뿐이고, 흔들리는 배 위에 있는 현실의 외투는 분노와 범죄를 감추게 되지요.

막이 오르면 센강 위 해넘이가 반사되는 물결처럼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찰랑댑니다. 인부들은 고된 몸으로 등짐을 나르고, 하역을 감독하는 선장 미켈레의 아내 조르제타는 인부의 간식을 챙겨주고 있네요.

떠돌이 악사가 손풍금으로 춤곡을 연주하자 하역부들과 조르제타가 반주에 맞추어 춤추고, 젊은 하역부 루이지와도 춤을 추는데 이 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답니다.

미켈레가 배 위로 올라오자 조르제타와 루이지는 춤을 멈추지요. 무대 뒤로 흐르는 합창이 ‘그녀는 손꼽아 기다렸으나 임은 돌아오지 않고 숨이 멎었네’라고 비극을 암시해주고 있네요.

일을 마친 하역부들 간에 오직 술만이 괴로움을 잊게 해준다는 신세 한탄이 오가자, 루이지는 땀을 흘리며 빵을 벌지만, 사랑할 시간은 빼앗기고 있다며 인생의 허무함을 한탄한답니다. 삶의 무게에 눌린 젊은 청춘은 꿈을 피우지도 못하고, 파리의 화려한 조명이 흔들리는 배 위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하는 장면을 그려보세요.

조르제타도 자신의 꿈을 노래하며 물 위에서의 반복적인 생활을 청산하고 싶어하지요.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빛나는 별을 찾아 배 위를 서성인답니다. 같은 고향 출신인 루이지는 조르제타에게 이 답답한 현실을 도피시켜주는 탈출구이기도 하지요.

하역부들이 떠나자 두 사람은 뜨거운 키스를 나눕니다. 그때 미켈레가 배 위로 올라옵니다. 루이지가 아직 퇴근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자신을 루앙에 내려달라고 말하려 기다렸다고 둘러댑니다. 인상파 화가인 클로드 모네가 빛의 변화를 좇으며 수없이 연작한 루앙 대성당이 있는 그곳 말이에요. 미켈레가 배 밑 선실로 내려가자 조르제타가 2중창 ‘왜 루앙으로 가나요?’를 시작합니다. 그에게 왜 루앙으로 가려 하는가를 따지고, 루이지는 그녀를 홀로 온전히 차지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고통스럽다고 합니다. 두 남녀는 넘쳐흐르는 서로의 욕정을 겨우 억누르며, 일단 퇴근했다가 한 시간 뒤 안전한 시간에 루이지가 돌아오기로 합니다. 그녀의 성냥불을 신호로 말이죠.

우리도 아이와 함께 행복했었지. [사진 Flickr]

우리도 아이와 함께 행복했었지. [사진 Flickr]

미켈레가 다시 올라와 조르제타에게 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가를 묻습니다. 서로 사랑하며 아이와 함께 행복했던 날들을 회상하며 다시 애정을 되살리려 합니다. 아이의 요람과 그 모두를 감싸던 외투를 껴안으면서, 예전처럼 다가와 키스하던 그때로 돌아오라 애원합니다. 조르제타는 남편을 사랑하지만 모든 것이 변했다며 거절하고 선실로 내려갑니다. 그녀의 차가운 거절로 이제 비극은 필연이 되어버렸습니다.

미켈레가 담배를 피우며 분노를 삭이려고 성냥불을 붙이자 공교롭게도 조르제타의 신호로 오인한 루이지가 배로 올라오고, 미켈레는 그를 잡아 목을 조릅니다. 그녀를 사랑한다고 자백하면 살려준다는 말에 루이지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하지요. 분노에 휩싸인 미켈레는 오히려 그 말을 저주하듯 반복시키며 목을 더욱 조이고, 결국 루이지는 숨을 거둡니다.

미켈레는 루이지의 시체를 외투로 덮었습니다. 그때 조르제타가 갑판으로 올라와 마음에 상처를 주어 미안하다며 다가오는데, 그는 냉정하게 그녀를 외투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조르제타의 외마디 비명소리에도 불구하고, 센강은 루이지를 품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여전히 흐른답니다.

우리는 대화를 통한 서로의 소통에 미숙한 점이 많음을 봅니다. 부인이 이웃 여인을 흉보면, 남편이 공감하고 동의해주면 좋잖아요? 하나, 보통은 “당신도 똑같아, 남 욕할 거 없어”라고 면박을 주며 자기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임을 내세우지요. 이래선 소통이 될 리 없잖아요.

사랑으로 감싸주던 외투인데.... [사진 Flickr]

사랑으로 감싸주던 외투인데.... [사진 Flickr]

일부 남자는 직장에서 힘든 승진을 하고도 가족에게 자랑하는 것도 서툴답니다. 겨우 아내가 여부를 물어보아야 “응…. 됐어. 남들 다 되는 건데 뭐…”라며 쭈뼛거리면서도 아내의 칭찬을 기다리지요. 그럴 때 아내가 “그래? 월급은 얼마나 올라?”라 한다면, 소통은 어렵지 않겠어요? 그보다는, 아내가 다소 호들갑 거리며 우리 남편 최고라며 치켜 주면 좋겠지요.

메켈레와 조르제타도 그렇답니다. 서로 소통하며 메켈레의 애정을 받아주었다면 그리고 조르제타가 정착해 안정된 삶을 갈구함을 알아주었다면, 비극을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소통의 부재,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네요.

오페라 해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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