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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He나 She 아닌 They"···‘제3의 성’ 새 페이지 연 페이지

중앙일보

입력

배우 엘렌 페이지. AFP=연합뉴스

배우 엘렌 페이지. AFP=연합뉴스

할리우드 배우 엘렌 페이지가 1일(현지시간)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름도 ‘엘리엇(Elliot)’으로 바꿨다고 밝혔다. 2014년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밝힌 이후 6년만에 이뤄진 두번째 커밍아웃이다.

당시 그는 LGBT(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 인권 증진을 위해 설립된 휴먼라이츠캠페인 재단(Human Rights Campaign Foundation, HRC) 행사에 등장해 “오늘 여기에 참석하게 된 이유는 내가 동성애자(gay)이기 때문이다. 더는 숨어서 거짓말하고 싶지 않다”고 커밍아웃했다. 2018년엔 댄서이자 안무가인 여성 엠마 포트너와 결혼했고, 두 사람은 서로를 아내라 불렀다.

이번 커밍아웃으로 페이지는 레즈비언에서 트랜스젠더로, 자신의 성(性) 정체성을 재정립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을 ‘그(He)’나 ‘그들(They)’이라고 불러달라 요청했다. 남성으로 살아가겠다면서, 3인칭 대명사 They를 써달라고 한 것이다.

언론과 SNS 사용자들이 주요하게 전한 페이지의 ‘선언’은 특히 이 대목에서 주목받았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성별 관념을 거부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남녀 이분법 거부하는 논바이너리

한국어에서 He는 남성을 지칭하는 ‘그’로, They는 복수의 사람을 지칭하는 ‘그들’로 통상 번역된다. 하지만 영미권에서는 이른바 ‘논바이너리(Non-binary) 젠더’를 지칭하는 단어로써 ‘They’를 사용하는 추세다.

생물학적인 남녀 외에도 성별을 전환한 남성 혹은 여성, 자신의 성별 특정하지 않는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성소수자가 존재한다는 이유에서 성소수자 단체들은 이분법적인 성별 관념을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들은 성별을 표기하는 M(Male·남성)이나 F(Female·여성) 대신 X를 사용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제3의 성’을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을 He/ She 대신 중립적 표현인 They로 불러달라고 도 했다.

결국 They는 새로운 사전적 의미를 공식적으로 얻었다. 미국 메리엄-웹스터 사전은 They가 “논바이너리 젠더 정체성을 가진 사람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고 정의한다. 영국 콜린스 사전도 “이렇게 불리기를 원하는 논바이너리 젠더 정체성을 가진 인간을 칭한다”고 명시했다.

한편 자신의 정체성을 논바이너리로 정립하고 ‘They’로 불러달라고 요구한 인사는 페이지가 처음은 아니다. 2018년엔 할리우드 배우 에즈라 밀러와 가수 마일리 사이러스가, 이듬해엔 영국 싱어송라이터 샘 스미스가 논바이너리라고 선언하며 자신을 ‘They’로 불러달라고 팬들에게 요청했다. 이들은 페이지처럼 트랜스젠더가 아니지만 자신의 성별을 남녀의 틀에 가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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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샘 스미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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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스미스 “나는 남성도 여성도 아니다”

샘 스미스는 커밍아웃을 하면서 ‘논바이너리’로 스스로를 정의하게 된 데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내 몸과 마음에선 항상 전쟁이 일어났다. 경우에 따라 내 머리는 나를 여성으로, 때로는 남성으로 인식했다. 가끔 ‘내가 성 전환을 원하나’라고 자문하기도 했다. 나는 남성도, 여성도 아니다. 그 중간 어디에 떠있다고 생각한다”

이어 그는 “논 바이너리는 자신을 남성·여성으로 뚜렷이 정체화하지 않는다. 논바이너리에게는 성중립적인 단어인 ‘그들’(they)이 어울린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They가 논바이너리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굳어짐에 따라 성소수자가 아닌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도 He/She와 같이 성별이 드러나는 인칭대명사 대신 성별 중립적인 대명사로 They를 쓰자는 움직임이 나온다.

이에 따라 공적 영역에서도 이분법을 탈피해 ‘제3의 성’을 인정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2018년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성별 항목에 남성(M)도, 여성(F)도 아닌 엑스(X)라고 적힌 출생증명서를 발급하기 시작했다. 남성으로 태어난 영화제작자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주는 또 공식적으로 논바이어리를 호칭할 땐 남·녀가 아닌 They를 쓰기로 했다.

미국에서도 공문서에서 ‘제3의 성’을 인정하는 주가 점차 늘고 있다. 올 초 메인주는 최근 출생증명서 성별 기재란에  M과 F 외에 ‘X’ 지표를 따로 마련했다. 캘리포니아·오리건·워싱턴·뉴저지주 등도 출생증명서에 성별을 ‘X’ 를 표기할 수 있도록 했다.

워싱턴 DC 교육 당국은 2019년 11월 새 학년부터 입학 신청서의 성별에 X성도 포함시켰다. 교육 당국이 X성을 인정한 것은 미 전역에서 처음이었다.

홍주희·이병준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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