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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가 만든 법이 尹 살렸다, 조미연 판사가 꺼내든 두 법률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인사청문회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의 모습. 이 인사청문회는 윤 총장의 직무배제 집행정지가 인용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임현동 기자

지난해 인사청문회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의 모습. 이 인사청문회는 윤 총장의 직무배제 집행정지가 인용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임현동 기자

벼랑끝에 있던 윤석열 검찰총장을 살린 서울행정법원 조미연 부장판사의 집행정지 결정문에는 검찰총장의 임기를 보장한 검찰청법과 임명 전 인사청문회를 규정한 국회법이 언급돼 있다.

윤석열 살린 검찰청법·국회법, 모두 노무현 前대통령 관여

조 부장판사는 두 법률을 근거로 "입법자는 검찰총장으로 하여금 부당한 정치권력에 휘둘리지 않도록 임명 전 인사청문회로 철저히 검증하고, 임명되면 소신껏 일하도록 임기를 보장했다"며 윤 총장의 손을 들어줬다. 화제가 된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에 맹종할 경우 검사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유지될 수 없다"는 결정문의 문장도 같은 근거에서 비롯됐다.

윤석열을 살린 검찰청법과 국회법  

검찰총장의 중임 없는 2년 임기를 보장한 검찰청법은 1988년 13대 국회에서, 검찰총장 임명 전 인사청문회를 규정한 국회법은 2003년 1월 16대 국회에서 통과됐다. 아이러니한 건 두 법률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생전 강력한 검찰개혁을 주장했던 고(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역할이 있었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검찰청법 개정 당시 통일민주당 의원으로 공동발의에 참여했다. 2003년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도입은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었던 그의 대선 공약이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윤 총장이 노 전 대통령의 덕을 보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고 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지난해 12월 법무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선서하던 모습. [뉴시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지난해 12월 법무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선서하던 모습. [뉴시스]

두 법안 모두 검찰개혁의 결과물

노 전 대통령이 발의하고 약속했던 두 법안은 모두 그 시대가 요청한 검찰개혁의 산물이었다. 당시 권력을 잡았던 여권에서 각 법안에 난색을 표한 것도 똑같았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총장을 포함해 4대 권력기관장(검찰총장·경찰청장·국세청장·국정원장)의 인사청문회를 도입하는 공약에 대해 당선인 신분으로 "공약을 지킬 것"이란 입장을 재차 밝혔다. 당시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인사청문회를 하기엔 시간이 촉박하다"며 공약 유예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총장의 임기를 보장한 1988년 검찰청법 개정안도 그 발의 이유로 "검사가 직무행사의 엄정함을 잃게 되면 정의의 실현이 불가능해 권력으로부터의 검찰의 독립이 강력히 보장돼야 한다"고 적혀있다. 당시 발의 명단엔 노 전 대통령과 함께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이름도 들어있다.

1988년 검찰총장의 2년 임기를 보장한 검찰청법 개정안 제안 이유. [중앙포토]

1988년 검찰총장의 2년 임기를 보장한 검찰청법 개정안 제안 이유. [중앙포토]

檢개혁에 엇갈리는 두 가지 주장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지금 검찰개혁이란 용어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로 조롱을 받지만, 정치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은 검찰개혁의 중요한 축이었다"고 말했다. 윤 실장은 "그 기반을 닦는 데 노 전 대통령의 역할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조 부장판사가 결정문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주장을 배척하며 윤 총장의 임기 보장과 검사의 독립을 강조한 것 역시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2003년 검사와의 대화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오른쪽). 왼쪽은 윤 총장의 변호를 맡고 있는 이완규 변호사의 젊은 시절. 이 변호사는 "검사와의 대화 뒤 인사불이익을 받은 적은 없다"고 했다. [사진 유튜브 캡처]

2003년 검사와의 대화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오른쪽). 왼쪽은 윤 총장의 변호를 맡고 있는 이완규 변호사의 젊은 시절. 이 변호사는 "검사와의 대화 뒤 인사불이익을 받은 적은 없다"고 했다. [사진 유튜브 캡처]

추 장관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 여권에선 검찰에겐 확실한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검찰 스스로에게 독립성을 부여하고 개혁을 맡기는 것은 이미 실패했다는 것이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정리한 노 전 대통령의 자서전『운명이다』에서도 "제도 개혁을 하지 않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려 한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퇴임한 후 나와 동지들이 검찰에서 당한 모욕과 박해는 그런 미련한 짓을 한 대가라고 생각한다"는 노 전 대통령의 후회가 나온다.

조 부장판사도 결정문에서 "검찰의 독립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검찰 스스로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잃게 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런 검찰에 대한 법무부 장관의 통제는 "법질서의 수호와 인권보호, 민주적 통제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의 우려에 공감하면서도 윤 총장의 직무를 배제하는 것이 검찰 개혁의 일환이란 추 장관의 손을 들어주진 않은 것이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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