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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출신에 백기완 선거운동…조미연 판사 '사찰 보고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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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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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전남에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나주시 남평읍 외조모 집에서 살았습니다. 열한 살까지 광주광역시에서 성장했고, 이후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광주민주화항쟁 발발 2년 전에 부모와 함께 상경했습니다. 86년에 성균관대 법대에 입학했는데, 본인 기억은 이렇습니다. ‘87년도는 많은 사건이 있었던 해였습니다. 그해 추웠던 겨울, 민중 후보 선거팀에서 문선대로 활동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고민했습니다.’ 당시 민중 후보라 불린 이는 백기완 후보였습니다.

이상언의 시시각각 #광주 출신으로 백기완 지지 활동 #변호사 남편은 봉사대상 수상자 #‘시련은 단련되는 과정’이 좌우명

‘졸업할 때를 맞아 슬슬 걱정되어’ 장래 희망이라고 말했던 판사를 목표로 사법시험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어렸을 때 판사가 되고 싶다고 얘기한 것은 어떤 영화의 여판사 모습이 인상 깊게 남았기 때문이지 거창하게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본인 진술입니다. 90년에 처음 도전해 5년 뒤인 95년에 합격했습니다. 6수 만의 성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교만을 꺾으시기 위해 연단시켰던 것’이라고 좌절 경험을 해석합니다. ‘어렵고 힘들지만 꿋꿋하게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힘을 얻곤 합니다.’ 이렇게 생각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지난 1일 윤석열 검찰총장을 제자리로 돌려보낸 서울행정법원 조미연 부장판사에 대한 정보입니다. 위 내용은 잡지 ‘고시계’ 1996년 10월호에 실린 그의 사법시험 합격기를 요약한 것입니다. 그 글은 성경 구절로 시작합니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순수한 금)같이 나오리라.’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되새기는 대목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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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부장판사의 삶은 대학 동창인 남편 임대진 변호사에 대한 기사(아이굿뉴스)를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임 변호사는 조 부장판사 합격기에 ‘신림동에서 종로까지 나와서 새벽기도로 나를 후원해 준 친구 대진’으로 소개됩니다. 임 변호사의 2015년 올해의 법조봉사대상(법조협회 주관) 수상을 계기로 작성된 기사에 따르면 그는 10년 이상 장애인과 함께 목욕탕에 가 때 밀어주기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무료급식 제공 단체에 목돈을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임 변호사는 인터뷰에서 “당신도 천사가 돼보지 않겠느냐”는 부인의 권유가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저희가 돈이 많아서 그러는 줄 아는 분도 있는데요, 집 담보대출금도 아직 못 갚았습니다”고 덧붙였습니다. 임 변호사는 서른이 넘어 사시에 합격한 늦깎이 변호사로 줄곧 경기도 수원시에서 활동해 왔습니다.

재판부가 공개한 윤 총장 직무배제 무효화 결정문은 10쪽입니다. 통상 가처분 사건 판결문은 한두 쪽에 불과합니다. 조 부장판사의 고민이 깊었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직무집행정지 처분이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한 검찰청법 취지를 몰각(沒却)했다.’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의 지휘감독권에 맹종할 경우 검사들의 독립성과 중립성은 유지될 수 없다.’ 결정문 속 문장들입니다. 사법 역사에 길이 남을 명판결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때 같은 재판부에서 일한 현직 판사는 “성실한 원칙주의자”라고 조 부장판사를 평가했습니다. 추미애 장관 폭주극에 핵심 조연으로 등장하는 한동훈 검사장,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이 조 부장판사의 사법연수원 동기(27기)입니다. 작금의 막장 드라마를 그가 편치 않은 마음으로 지켜봤을 듯합니다.

많은 사람이 짐작한 대로 조 부장판사를 향한 인신공격이 펼쳐집니다. 출신 지역 등을 근거로 자기들이 원하는 방향의 결과를 예상했던 이들이 인터넷에 배신감과 분노를 토해냅니다. 24년 전 글 속의 ‘정금으로 단련되는 과정’이 계속되나 봅니다. 다행히 그를 칭찬하는 댓글이 9대1 비율(네이버 기준)로 압도적이긴 합니다. ‘요즘 나오는 판결에 불만이 많았는데 그래도 법원밖에 의지할 데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 정상화의 신호탄이다’ 등이 보입니다. 민심이 이러합니다.

이상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