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주춤해지면 내년 1월31일까지 계속되는 국립중앙박물관 ‘세한·평안’전에 가보시길. 길이 14m가 넘는 국보180호 세한도 두루마리가 ‘완전체’로 펼쳐진 모습이 장관이다. 실업가 출신 손창근(91) 선생이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작품을 올 초 국가에 기증한 걸 계기로 열리고 있다. 이를 포함해 문화재 203건 305점을 국민 공동 소유로 내놓은 선생에겐 오는 8일 문화유산보호서훈(문화훈장)이 수여된다. 참고로 문화훈장이 별도 분류된 2004년 이래 5개 등급 중 최고 높은 금관훈장은 여태 없고, 은관은 10여 차례 수여된 바 있다.
올해 이와 명암이 엇갈린 문화재 소식도 있었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 3대째 물려오던 보물 불상 2점을 경매에 내놓은 일이다. 국가지정문화재에 관한 상속세는 면제되지만 가업을 잇는 과정에서 가중된 재정난을 불상 판매 대금으로 해결하려 한 고육책이었다. 결국 국립중앙박물관이 구매하는 것으로 마무리됐지만 더 나은 해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지폈다.
“간송 사례를 전화위복 삼아 우리 문화재의 해외 유출을 방지하고 계속 보존할 수 있는 효과적 방안을 논할 때가 됐다.” 지난 1일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열린 ‘상속세의 문화재·미술품 물납제도 도입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에서 한국박물관협회 윤열수 회장이 한 말이다. 지난달 25일 이광재(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부동산·유가증권 외에 ‘서화·골동품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미술품’도 상속·증여세 물납대상에 포함시키는 내용의 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것도 이같은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
실은 10여 년 전부터 이런 요구는 있었다. 하지만 “상속세 낼 정도면 부자인데, 결국 부자 특혜 아니냐”는 비판에 막혀 주춤했다. 물납 대상 범위를 어떻게 할지, 심의는 누가 할지 같은 세부절차부터 현금납부자와의 형평성, 국가재정건전성 우려까지 논의할 게 태산이다. 그렇다고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일 아니다. 정준모 미술평론가(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는 “언제까지 기업 손목 비틀면서 문화 공헌 짜낼 거냐.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인데 부자들이 기분 좋게 기부·납세하는 나라 좀 만들자”고 토로했다.
문화재는 공동체를 묶어주는 공통의 유산이자 문화·관광자산 역할도 한다. 문화재·미술품 대납제도를 가장 먼저 도입한 영국의 경우 비틀스 멤버 존 레논의 편지와 작사 노트 등 대중문화 유산까지 세금 대신 받고 있다. 수집가의 선의와 희생에 기대야 할 정도로 가난한 나라가 더는 아니다. 미래 문화 자산에 투자한다는 자세로 견실한 국회 논의를 기대한다.
강혜란 문화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