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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조가 있는 아침

(48) 팽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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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유자효 시인

유자효 시인

팽이
이우걸 (1946∼ )

쳐라, 가혹한 매여 무지개가 보일 때까지
나는 꼿꼿이 서서 너를 증언하리라
무수한 고통을 건너
피어나는 접시꽃 하나.

- 한국대표명시선100 ‘어쩌면 이것들은’

의인 열사가 그리운 시대

가혹한 자기 단련의 시다. 팽이를 치고 쳐서 최고의 속도에 이르면 무지개가 보인다, 아무리 나를 쳐도 꼿꼿이 서서 너를 증언하겠다는 결기가 드러난다. 이 시조의 대단원은 역시 종장이다. 그 무수한 고통을 건너면 접시꽃 하나 피어난다는 믿음이 그것이다. 시조 이미지 전개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의인을 만나기 드문 시대, 지사가 사라진 시대. 우리는 의인 열사가 그립다. 이런 지사는 어떤 가혹한 매가 내려치더라도 끝내 이를 견뎌 꼿꼿이 서서 너를 증언할 때 태어나는 것이다. 상처 입은 조개가 진주를 품듯, 시련 없는 성취는 없다. 한국은 의인 열사의 전통이 맥맥히 이어져온 나라다. 그런 의인들이 민족의 명을 이어 오늘의 우리가 있게 했다. 이 시대인들 왜 그런 이가 없겠는가? 어쩌면 이 순간 그런 지사가 태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승훈 시인은 “이우걸은 자연에서 현실을 읽고, 현실에서 고통을 읽고, 마침내 고통에서 그의 이상, 이상으로서의 자연을 읽는다”고 평했다. 1983년 중앙시조대상 신인상을, 1995년 중앙시조대상을 수상했다. 1983년과 2012년 윤금초·박시교·유재영과 함께 사화집 『네 사람의 노래』를 문학과 지성사에서 펴냈다.

유자효(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