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의 야野·생生·화話] 선수협의 시계는 8년 전으로 돌아갔다

중앙일보

입력 2020.12.03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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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이대호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이 2일 서울 호텔리베라 청담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판공비 6000만원 ‘셀프 인상’ 논란이 불거진 데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뉴시스]

이대호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이 2일 서울 호텔리베라 청담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판공비 6000만원 ‘셀프 인상’ 논란이 불거진 데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뉴시스]

2010년 프로야구 선수 최저연봉은 2400만원이었다. 5년 뒤인 2015년, 2700만원으로 300만원 인상됐다. 올해 최저 연봉은 5년 전 그대로다. 다행히 내년 조금 올라 3000만원이 된다. 300만원 올리는 데 또 6년 걸렸다.

프로야구선수협 또 판공비 문제
2012년 비리 터진 뒤 바꾼 제도
이대호 체제서 과거로 뒷걸음질
누구, 무엇 위해 썼나 다 밝혀야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가 열심히 싸운 결과일까. 아니다. 지난해 말 선수협에 ‘최저 연봉 인상’을 제안한 건, 놀랍게도 KBO리그 10개 구단이다. 선수협이 “자유계약선수(FA) 몸값 총액 상한제 거부”로 나오자, 구단들이 대안으로 내놓았다. ‘FA 미아’를 방지하기 위한 FA 등급제, 선수의 1군 등록일수를 보호할 수 있는 부상자 명단도 모두 구단 쪽에서 꺼낸 카드다.

선수협은 그간 무엇을 위해 싸웠을까. 선수협은 오직 ‘FA 총액 제한’을 막기 위해 여러 개선책에 반기를 들었다. 그 선봉이 이대호(38) 선수협 회장이었다. 그는 4년 전 롯데와 총액 150억원의 역대 FA 최고액으로 계약했다. 올해 연봉 25억원을 받았다.

당시 선수협 사무총장이던 김선웅 변호사는 “KBO 개선안을 받아들이는 게 선수협 취지에 맞다”고 주장했다. 이대호 회장 등 선수협 대의원들은 지난해 말 김 총장 임기가 끝나자 연임 불가를 통보했다. 이 회장이 직접 김태현 사무총장을 영입했다.

바로 그 김 총장이 1일 돌연 사퇴했다. 한 언론이 그의 판공비 사용 내역에 의문을 제기한 직후다. 그는 사무총장 월급 외에 매달 250만원, 연간 3000만원의 판공비를 ‘현금’으로 받았다. 세금을 빼도 월 183만원, 연 1900만원이다. 지난 7년간 총장 판공비는 법인카드로 지급됐다. 김 총장은 4월 “현금으로 달라”고 요구했다. 용처가 불분명한 ‘총장 판공비’가 매달 200만~300만원씩 사무총장 집 인근 음식점, 편의점에서 쓰였다. 코로나19로 대외 활동이 어려운 시기인데도 판공비 사용은 줄지 않았다.

이대호 회장도 논란에 휩싸였다. 기존 선수협회장 판공비는 연 2400만원. 월 200만원이었다. 이 회장은 연 6000만원을 받았다. 최저 연봉 600만원을 올리는 데 11년 걸렸는데, 선수협회장 판공비는 하루 만에 3600만원 올랐다.

비판이 쏟아지자 이대호의 형이자 에이전트인 이차호 오투에스엔엠 대표는 1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판공비 인상은 이대호가 회장으로 뽑히기 전, 이사회에서 의결한 부분이다. (선수협회장이 무보수 명예직이라) 사실상 월급으로 지급됐다. 선수협회장 업무에 사비를 쓸 수는 없지 않나”라고 주장했다.

‘취임 전 결정된 판공비’라는 해명은, 엄밀히 따지면 거짓말이 아니다. 그러나 “억울하다”는 호소 역시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선수들이 이대호를 새 회장으로 추대하자, 그는 “판공비를 1억원으로 올려주지 않으면 맡을 수 없다”고 버텼다. 선수협은 고심 끝에 6000만원을 상한선으로 정했다. 선수협 이사로 참석한 10개 구단 선수 30명은 과반 찬성으로 의결했다. 2년간 공석이던 회장을 뽑는 게 급선무였다. 이대호는 그제야 회장직을 수락했다.

사정을 모르는 많은 선수가 이대호의 ‘결단’에 박수를 보냈다. ‘무보수’로 선수협회장이란 ‘짐’을 떠안았다고 믿어서다. 한 선수는 “회장 판공비가 6000만원인지 몰랐다. 서울을 오갈 때 교통비와 숙박비, 식대 정도일 줄 알았다. 어이가 없다”고 반응했다. 선수들이 분노해도 되는 이유가 있다. 프로야구는 선수 전원이 연봉의 1%를 선수협회비로 낸다. 그 돈으로 회장과 사무총장 판공비를 준다. 연봉 2700만원 선수가 낸 27만원이 모여 연봉 25억원 선수의 개인 계좌로 들어간 셈이다.

2000년 1월, 선수협은 어렵게 출범했다. 수많은 선수가 강제 트레이드나 연봉 삭감 등을 감수하고 지켜낸 단체다. 그런 선수협은 2012년 위기를 맞았다. 전 집행부가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됐다. 그때 선수협회장을 맡은 박재홍(현 해설위원)은 “내 회장 판공비는 2군 선수 처우 개선을 위해 전액 기부하겠다”고 했다. 박충식 당시 사무총장도 전임 총장 초봉에 못 미치는 급여를 자발적으로 더 삭감하겠다고 나섰다. 판공비 사용 방식을 법인카드 결제로 바꾼 게 그 시점이다. 기존 집행부 과오를 반성하고, 자금 집행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그 후 8년이 지났다. 연봉 25억원인 선수협회장은 판공비 6000만원을 사실상 받아냈다. 그러고도 기자회견을 열어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그가 영입한 사무총장은 슬그머니 판공비를 현금으로 챙겨 알 수 없는 용도로 사용했다. 겨우 벗어난 과거 그림자 속으로 뒷걸음질 친 모양새다.

다시 한번 근본적인 의문을 맞닥뜨린다. 선수협은 누구를 위한 단체인가. 그들이 보호한다는 ‘선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선수협회장과 사무총장은 무엇을 위해 수천만원의 판공비를 쓰나. 그 답은 누가 해줄 수 있을까. 의문투성이다.

배영은 야구팀장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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