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우리말 바루기] 표준어가 된 ‘파이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4면

뮤지컬에 출연하느라 한동안  한국에 머물렀던 영어권 배우가 얼마 전 한국을 떠나며 기자와 인터뷰했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한국어로 ‘파이팅’을 꼽았다. 한국 관객들이 SNS 댓글로 응원을 보내주었는데 ‘파이팅’이란 표현이 아주 많았다고 했다. 처음엔 싸우자는 것인가 했는데 무슨 의미인지 알고 나서는 제일 좋아하는 말이 됐다고 한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선수들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요즘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의 입에서도 ‘파이팅’이란 말이 종종 나온다. 한국인들이 많이 사용하다 보니 이를 익혀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 등을 응원하는 용어로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의 ‘파이팅’이란 용어가 과거 영국에서 쓰던 ‘파이팅 스피릿(fighting spirit)’에서 왔다는 견해가 있다. 일본에서 응원할 때 사용하는 ‘화이토(ファイト, fight의 일본식 발음)’가 한국에서 ‘파이팅’ 또는 ‘화이팅’으로 변형돼 쓰이는 것이라 보는 사람도 있다.

2004년 국립국어원은 ‘파이팅’이 영어권에선 이런 뜻으로 쓰이지 않는 말이므로 ‘아자’ ‘힘내자’ 등의 우리말로 바꿔 사용하자고 결정한 적이 있다. ‘우리말 바루기’도 이를 다룬 바 있다.

하지만 외국인들마저 ‘파이팅’을 한국어처럼 인식하는 상황이 되자 사전도 바뀌었다. 최근 국립국어원은 표준국어대사전에 ‘파이팅(fighting)’을 표제어로 올렸다. ‘감탄사로, 선수에게 잘 싸우라는 뜻으로 외치는 소리’ 등의 설명을 달았다. 사전에 이렇게 올렸다는 것은 표준어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원래는 외국어이지만 우리말처럼 쓰이는 것이라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배상복 기자 sbba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