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 숨통 틔운 33억짜리 지원사업, 볼멘 소리 나오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2020.12.02 15:01

업데이트 2020.12.02 18:27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된 영진위 ‘일자리 연계형 지원사업’ 선정 단편 ‘비디오 킬 더 라디오 스타’. 독립영화에서 주로 활동해온 배우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장선, 정하담, 한해인이 코로나19 속 배우로서의 고충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된 영진위 ‘일자리 연계형 지원사업’ 선정 단편 ‘비디오 킬 더 라디오 스타’. 독립영화에서 주로 활동해온 배우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장선, 정하담, 한해인이 코로나19 속 배우로서의 고충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어쨌든 창작을 계속할 수 있게 지원금을 준 건 괜찮지만, 급하게 진행되다 보니 지원작들 완성도엔 편차가 있죠. 실질적인 사업 목표가 창작자 지원이지 좋은 영상물을 만들어내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영화진흥위원회가 총 33억원을 들인 ‘일자리 연계형 온라인-뉴미디어 영상콘텐츠 제작지원사업’에 대한 영화 관계자의 평가다. 이번 사업은 영화계에서 그간 영화관 할인권 등 극장 위주 코로나19 구제책에만 치중한다고 비판받아온 영진위가 현장의 영화인들을 직접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지난 7월 29일~ 8월 11일 3인 단위 한 팀으로 공모를 받아 심사로 총 328팀을 선정해 각 990만원(인당 인건비 220만원, 제작비 330만원)씩 지원했다. 사업비는 영화발전기금 일부를 지난 3차 추경을 통해 편성했다.

영진위 '숏폼' 영상콘텐츠 제작지원사업
코로나19로 힘들어진 창작자들 겨냥해
공모 통해 선정한 328팀 총 33억원 지원
심사기준, 고르지 않은 완성도 등 비판 나와

지원받은 영상들은 지난달 16일 영진위 유튜브 채널에 공개됐다. 이 중 서울독립영화제가 따로 자체 심사한 15편은 지난달 26일 개막한 영화제에서 극장 상영하고 있다. TBS TV에서도 따로 선정한 20편을 7일부터 하루 4편씩 5일간, 24일엔 코로나 관련 작품 6편을 별도로 추려 방영한다.
영진위는 코로나19로 영화 제작이 중단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화인에게 창작 기회도 주고, 비대면 시대에 적합한 온라인‧뉴미디어용 5~10분짜리 ‘숏폼’ 영상을 활성화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취지를 내세웠지만, 이를 바라보는 영화계 시선은 엇갈린다.
먼저, 단 2주간 공모 받은 그간의 영화경력 및 짧은 시놉시스만 갖고 “프로젝트의 작품성 및 아이디어 참신성”(영진위 관계자)이란 두루뭉술한 잣대로 심사한 선정 결과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에 선정된 독립영화 감독은 “유일하게 나온 지원책이었기 때문에, 선착순 느낌으로 바쁘게 냈고 작품의 퀄리티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면서 “영화 경력과 함께 낸 서너 줄짜리 글이 무슨 변별력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기존에 열심히 활동해온 영화인들이 탈락한 경우도 있는데 선정의 투명성에 대한 이의제기가 생길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숏폼 영상물 활성화 측면에서도 급하게 사업이 진행되면서 전반적인 완성도가 고르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진위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328편 가운데 100편 가량은 공개 2주 동안 조회 수가 100회에 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영진위는 “심사 장벽을 낮춘, 영진위 사상 최대 규모 제작지원사업”을 자부했지만, 뒤집어보면 형식적 심사에 그친, 전시적 지원 사업처럼 비칠 소지도 있다.

이번 지원사업에 선정된 장우진 감독의 단편 ‘캠프 페이지’. 춘천역 부근의 옛 동명 미군기지에서 1972년 있었던 핵무기 사건을 회자하는 극영화다.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이번 지원사업에 선정된 장우진 감독의 단편 ‘캠프 페이지’. 춘천역 부근의 옛 동명 미군기지에서 1972년 있었던 핵무기 사건을 회자하는 극영화다.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물론 장벽을 낮춘 덕분에 창작자들이 코로나19 속 고민을 부담 없이 진솔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또 감독들 외에 자신의 목소리를 잘 낼 수 없었던 배우나 촬영감독 등 현장 스태프가 직접 연출에 참여해 지원받은 사례도 눈에 띈다. 지원서에 이름을 올린 각 팀 3인 외에 참여 스태프와 출연진에게도 제작비가 보수로 돌아가는 효과도 있다. 영진위 관계자는 “오는 5일까지 유튜브 상영을 마치고 이후 저작권은 모두 창작자 개인에 돌려줘 재가공‧재편집한 또 다른 창작물의 계기를 부여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영진위는 내년 예산에도 반영해 올해와 비슷한 35억원 규모로 지원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선 사업성과를 가늠할 지표에 더 섬세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서울독립영화제 김동현 집행위원장은 “코로나 시대 풍경이 노출된 창의적인 작품도 많았다”면서도 “‘숏폼’이라고 꼭 10분 안에 영화를 잘라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좀 더 영화적인 확장 방식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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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g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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