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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실 대신 편의점' 10개월...열살 건우 62kg 됐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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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지원을 받고 있는 한 조손가정의 사례를 재구성한 기사입니다.

“오늘은 우리 외손주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코로나19로 급식을 못 먹게 된 저소득층 아이들은 편의점 방문 횟수가 더 많아졌다. 사진 특별취재팀

코로나19로 급식을 못 먹게 된 저소득층 아이들은 편의점 방문 횟수가 더 많아졌다. 사진 특별취재팀

우리는 저랑 외손주 건우(초 4·가명)와, 건우 누나(초 5) 셋이 살고 있습니다. 제 어미도 없이 크고 있지만 건우는 단 한 번도 제 속을 썩인 적이 없는 착한 애입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게 다 그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 못 가면서 생긴 일입니다.

<코로나가 감염시킨 교실②>

나는 마트에서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을 합니다. 여느 집처럼 애들을 돌봐줄 수가 없지요. 그 시간 동안 건우는 집에서 혼자 지내고, 학교에 못 가니 뭣보다도 끼니가 걱정입니다. 그래서 처음엔 밥을 차려두고 애들이 좋아하는 소시지 반찬도 만들어 뒀습니다. 하지만 도무지 혼자서는 챙겨 먹지를 않습니다. 그냥 다 쉬어버려 버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급식카드로 사 오는 건 초콜릿 우유뿐”

우리 애는 조손가정이다 보니 ‘급식카드’를 갖고 있습니다. 이걸 편의점 같은 곳에서 쓸 수 있지요. 그래서 얘기했죠. “불 써서 계란 후라이 만드는 것도 위험하니 전자레인지로 돌려먹을 수 있는 음식만 사 먹으라”고요. 공연히 라면 끓인다고 불 쓰는 것도 컵라면 먹는다며 뜨거운 물 쓰는 것도 맘이 놓이질 않기 때문입니다.

아, 그랬더니 건우가 맨날 초콜릿 우유, 커피 우유 이런 것만 사 먹어요. 이렇게 한 6개월 지나고 보니 얘가 살이 너무 쪄버렸어요. 초등학교 4학년짜리가 벌써 62㎏이나 나갑니다. 키는 이제 150㎝를 조금 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한번은 건우가 보는 앞에서 초콜릿 우유를 싱크대에 콸콸 다 쏟아버렸어요. 이런 거 그만 먹으라고 혼도 냈죠. 하지만 아무리 야단을 쳐도 혼자 있는 녀석이 뭘 먹겠습니까.

초등학교 4학년 건우(가명)는 코로나19로 식습관이 망가져 몸무게가 늘었다. 사진 특별취재팀

초등학교 4학년 건우(가명)는 코로나19로 식습관이 망가져 몸무게가 늘었다. 사진 특별취재팀

학교에 갈 때는 그래도 끼니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았습니다. 점심은 학교에서 급식 먹고, 저녁은 지역아동센터에서 챙겨 먹었으니까요. 요즘은 정말 애들이 제때 밥을 챙겨 먹나, 그게 제일 큰 걱정입니다. 그래서 드문드문이라도 학교에 가는 날은 그렇게 안심이 될 수가 없어요.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친척들한테 끼니 좀 챙겨달라고 부탁하기도 하는데 다들 먹고살기 바쁘니 그것도 어디 쉽나요.

“가정 형편 따라 편의점 가는 횟수 달라져”

코로나19 이후 청소년의 편의점 음식 섭취율.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코로나19 이후 청소년의 편의점 음식 섭취율.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한 번은 내가 너무 걱정돼서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렸어요. 그랬더니 우리 손주 녀석만 이런 게 아니더라고요. 요즘 애들이 모두 패스트푸드나 편의점 음식을 너무 좋아한다는 겁니다. 어떤 아이는 10㎏이 찌기도 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가정 형편이 좋은 애들은 편의점엘 가질 않는다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나니 참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건강도 건강이지만 공부도 아주 걱정입니다. 사실 건우한테는 “공부는 하고 싶은 만큼만 해라”고 말하곤 했어요. 남들처럼 학원을 보내는 것도 학습지를 시켜주는 것도 못했으니까요. 코로나가 처음 터졌을 땐 애가 온라인 수업에 안 들어온다고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주시더라고요. 수업은 안 듣고 그냥 스마트폰 게임만 했나 봐요. 그래서 스마트폰 없애고 폴더 폰으로 바꿔버렸어요. 그 덕분인지 요즘은 그래도 제법 수업 진도는 따라가는 모양입니다. 뉴스를 보면 온라인 도박이니 게임이니 만화니 정신 사나운데, 그래도 건우는 그런 거에 안 빠진 것만으로 난 고맙지요.

코로나19 이후 청소년 도박 상담이 늘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코로나19 이후 청소년 도박 상담이 늘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코로나로 힘든 아이한테 미안해”

코로나가 제발 좀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제일 걱정되는 건 코로나가 끝나도 지금 습관이 계속되면 어쩌나 싶은 건데. 그래도 학교라도 가야 우리 같은 집 애들은 조금이라도 더 보살펴주는 손길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코로나가 우리처럼 어려운 사람들한테는 정말 힘드네요. 코로나 같은 역병 때문에 우리 건우도 힘들고 공부도 그렇고, 건우를 보면 정말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특별취재팀=김지아·성지원·정진호·김정민·정희윤 기자 kim.jia@joongang.co.kr

중앙일보 기획 ‘코로나가 감염시킨 교실’. 김종훈 인턴

중앙일보 기획 ‘코로나가 감염시킨 교실’. 김종훈 인턴

① 학교 안간 고3, 2등급→4등급으로 ‘뚝’…“1년만 일찍 태어날 걸”
② 급식실 문 닫자 10살은 62kg 됐다…편의점으로 몰린 아이들
③ 문 닫은 학교 그 후…535만개 각자의 교실이 생겼다
④ “AI 선생님 1년에 166만원”…인공지능이 교육격차 좁혀줄까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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