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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은 반기문보다 못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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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정치에디터

고정애 정치에디터

무수히 쏟아진 ‘윤석열’ 논평에서 이 말이 눈에 들어왔다.

여권의 검찰총장 날리기 시도 #정권안보·장기집권 의제일뿐 #‘윤석열 블랙홀’ 예상 못했나

“난 원래 尹(윤석열 검찰총장)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이건 너무 심했다.”

이른바 ‘태극기’와 함께하는 김진태 전 미래통합당 의원의 말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 총장을 직무 배제하자 올린 글이다. 김 전 의원은 ‘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긴 하다. 2019년 7월 윤 총장 인사청문회에서 그가 제기했던 의혹들(당시 여당에선 전혀 문제없다고 했다)은 지금 여당의 레퍼토리다(국민의힘은 ‘왜 딴소리하냐’는 입장이다).

김 전 의원은 통화에서 “추 장관이 미친 짓거리를 하니…. 윤 총장이 좋으니 나쁘니 하는 건 나중에 따지고 지금은 윤 총장에게 다부지게 대응하라고 주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태극기’의 기류가 바뀐 건가”란 질문엔 “워낙 추 장관이 미우니까”라고 했다.

이처럼 세상은 윤 총장을 중심으로 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기이한 주장을 쏟아내는 추 장관과, 뒷받침하려는 여권의 사투 그리고 모르는 척 아닌 척하며 방향 몰이 하는 대통령과 청와대가 수시로 등장한다. 여기에서 야당의 존재감은 없다. 의원 만나는 게 업무인 청와대 정무수석이 청와대 앞에 온 국민의힘 의원들은 안 만나고 송파구의 조기축구회엔 갈 정도다. 대신 검사들이 들고일어났다. 이러는 사이 윤 총장을 찬양하던 사람들이 이를 갈고, 이를 갈던 사람들이 관심을 쏟는다. 매일 되풀이되는 권력 막장극이다.

서소문 포럼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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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현상’은 이의 산물이다. 차기 대선 구도에서 3강(이낙연·이재명)으로 나온다. 최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TK(대구·경북)를 연고로 한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으로 보낸 윤 총장의 TK 지지율이 27%였다.

현 집권세력을 두고 통치보단 권력쟁투에 능한 집단이라고 말한다. 이들이 ‘검찰총장을 날리고 싶은 것’(역대 레임덕 대통령마다 느낀 유혹이다)과 ‘날리기로 한 것’이 다른 차원의 기예란 걸 모를 리 없다. 이들로선 날리고 싶은 이유가 차고도 넘친다고 느낄 수 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부터 월성 원전 1호기 조기폐쇄까지 청와대로, 권력의 핵심부로 조여 오는 검찰의 칼날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지금 막아야 덜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러나 날리기로 한 건 정권 차원의 도박일 수밖에 없다. 지금의 ‘윤석열 블랙홀’이 만들어내는 혼돈이 방증이다. 현 집권세력이 그런데도 감행한 건 종국엔 감당할 수 있고 불리하지 않다고 계산했기 때문일 수 있다. 근래 만난 여권 인사들은 이런 답을 했다.

“대선 후보로서 윤석열에 대해서 우린 겁을 안 낸다. 총장일 때 윤석열이 파워풀한 거지 대선 후보론 그렇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윤 총장이 대선에 못 나온다고 본다. 검증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다.”

“윤 총장이 부각될수록 우리의 선거 구도가 좋아질 수 있다. 우리에겐 반기문보다 윤 총장이 좋은 상대다.”

2017년 대선 국면에서 한때 구(舊)여권의 기대주였다가 주저앉으면서 사실상 분열 속에 대선을 치르게 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보다 못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윤 총장이 실제 정치를 할지 모르겠다. 합법·불법의 이분법적 사고를 하는 법조인 대통령의 폐해를 목도하는 지금 또 다른 법조 출신 정치인의 성공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또 정치 또한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직군이란 걸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지도자의 등장이 달갑지도 않다.

그런데도 여권의 산법(算法)이 그러하다면 동의하기 어렵다. 반 총장은 정치인으로선 자생력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유형이다. 윤 총장은 이들과 달리 대통령에 맞서면서 정치적 자산을 쌓아가는 축이다. 김무성 전 의원은 “오히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에 가깝다. 다만 능력과 강단은 이 총재가 능가한다”고 했다. 현 정권에 대한 심판의 정서도 강해지고 있다. 단순 대입할 상황이 아니란 의미다.

현실에선 그러나 180석 가까운 거여(巨與)가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윤 총장 내몰기에 총력을 기울인다. 오늘의 ‘검찰개혁’은 강준만 전북대 교수식 표현으론 문재인 정권의 ‘정권 안보’와 ‘장기 집권’에 도움되는 의제일 뿐이다. 강 교수는 “문재인 정권이 (이에 오버하면서) 민생 의제에 소홀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이는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한 ‘부동산 약탈’로 이어졌다”(『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고 진단한다. 공감한다. 그래서 궁금하다. 날리겠다는 결정이 여전히 옳다는 생각인가.

고정애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