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국말 노래로 ‘핫 100’ 정상 대관식…BTS, 빌보드 62년 역사 다시 썼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방탄소년단의 ‘라이프 고스 온’ 뮤직비디오. ‘온 마이 필로(on my pillowㆍ나의 베개 위에)’라는 노랫말에 맞춰 파자마 차림으로 등장한다. [사진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방탄소년단의 ‘라이프 고스 온’ 뮤직비디오. ‘온 마이 필로(on my pillowㆍ나의 베개 위에)’라는 노랫말에 맞춰 파자마 차림으로 등장한다. [사진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방탄소년단(BTS)이 또 한 번 새 역사를 썼다. 우리말로 된 신곡 ‘라이프 고스 온(Life Goes On)’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핫 100’ 1위에 올랐다. 한국어 노래가 싱글 차트 정상에 오른 건 빌보드 62년 사상 처음이다. 미국 빌보드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순위를 공개하며 “BTS의 대관식”이라고 축하했다.

신곡 ‘라이프 고스 온’ 싱글 차트 1위 #비영어곡 발매 첫주 1위도 처음 #“화려한 퍼포먼스보다 따뜻한 위로” #그래미 경쟁력 높아져 수상 청신호

방탄소년단은 ‘라이프 고스 온’이 수록된 새 앨범 ‘BE’로 전날 빌보드 앨범 차트 1위 소식을 전한데 이어 빌보드 양대 메인 차트를 동시 석권하는 진기록도 세웠다. 지금까지 ‘빌보드 200’과 ‘핫 100’에 동시에 1위로 진입한 가수는 미국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올해 7월 앨범 ‘포크로어’와 타이틀곡 ‘카디건’)와 방탄소년단뿐이다.

영어 아닌 곡이 발매 첫 주 1위에 오른 것도 사상 처음이다. 스페인어 곡으로 ‘핫 100’에서 2017년 16주간 1위를 하며 라틴팝 열풍을 일으킨 루이스 폰시와 대디 양키의 ‘데스파시토’, 1996년 14주간 정상에 오른 로스 델 리오의 ‘마카레나’, 1987년 로스 로보스가 리메이크한 ‘라 밤바’(원곡 리치 밸런스·1958) 등도 모두 첫 주 1위는 아니었다.

닐슨뮤직 데이터에 따르면 ‘라이프 고스 온’은 스트리밍, 디지털 및 실물 판매고 등에 비해 크게 저조한 라디오 방송횟수에도 1위에 올랐다. 라디오는 23~29일 한 주 동안 41만명의 청취자에게 노출됐다. 올해 8월 방탄소년단의 첫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영어곡 ‘다이너마이트(Dynamite)’가 1주차 1160만명에게 노출된 것과도 크게 대비된다.

아시아 가수로는 1963년 일본 사가모토 규의 ‘스키야키’ 이후 57년 만에 싱글 차트 1위라는 기록도 세운 ‘다이너마이트’는 발매 14주차를 맞아 전주 14위에서 이번 주 3위로 11계단 상승하며 역주행했다. 총 8곡이 수록된 이번 앨범에서 대화 내용을 담은 ‘스킷’을 제외한 7곡이 전부 ‘핫 100’에 진입했다. 13위에 오른 ‘블루 & 그레이(Blue & Grey)’를 비롯해 ‘스테이(Stay)’ 22위, ‘내 방을 여행하는 법’ 69위, ‘잠시’ 70위, ‘병’이 72위로 줄세우기에 성공했다. 방탄소년단은 트위터에서 “1위도 너무 감사한데 3위 안에 저희 곡이 두 개라니 정말 너무너무 감사하다”며 “더 좋은 앨범 들려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BTS 역대 ‘핫 100’ 10위권 곡들

BTS 역대 ‘핫 100’ 10위권 곡들

이로써 방탄소년단은 세 번째 ‘핫 100’ 1위 곡을 보유하게 됐다. ‘다이너마이트’ 이후 지난 10월 뉴질랜드 프로듀서 조시 685와 미국 싱어송라이터 제이슨 데룰로의 곡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새비지 러브(Savage Love)’ 리믹스 버전으로도 1위에 올랐다. 이 곡에는 한국어 가사가 일부 등장한다.

이처럼 석 달 만에 ‘핫 100’ 1위에 세 곡을 올린 건 호주 록밴드 비지스 이후 42년 만이다. 비지스는 1977년 12월 ‘하우 딥 이즈 유어 러브’, 이듬해 2월 ‘스테잉 얼라이브’, 3월 ‘나이트 피버’까지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 OST 3곡을 연이어 정상에 올렸다. 1964년 두 달 만에 ‘아이 원트 투 홀드 유어 핸드’ ‘쉬 러브스 유’ ‘캔트 바이 미 러브’ 등을 ‘핫 100’ 1위에 올린 영국 슈퍼밴드 비틀스를 잇는 기록이다.

‘라이프 고스 온’은 코로나19로 좌절한 이들을 흥겨운 디스코풍으로 위로한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뿌리이되, 한결 잔잔하고 담담하게 풀어낸 노래다.  『BTS: 더 리뷰』  를 쓴 김영대 대중음악평론가는 “화려한 퍼포먼스보다 따뜻한 위로를 택한 대범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해외 언론도 찬사를 쏟아냈다. 시사잡지 애틀랜틱은 “BTS가 이렇게 빨리 한국어 노래로 1위를 할 줄은 몰랐다”며 “사실상 라디오 방송도 없이 ‘핫 100’ 1위라는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고 했다. 이어 “미국 청취자들은 가사를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보컬 하모니가 선사하는 따뜻함으로 어려웠던 한 해를 위로하는 곡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BTS는 한국어 신곡으로 라디오 방송, 리믹스 앨범 발매, 번들 판매 등의 도움 없이 빌보드 1위로 데뷔하면서 인기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제공했다”며 “BTS가 모국어를 버리고 영어로 노래해야만 1위 곡을 낼 수 있다고 주장해온 이들에겐 질책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 “BTS는 인종 차별과 외국인 혐오에 뿌리를 둔 낡은 관습의 서구 음악산업을 뒤집어엎었다. 다른 사람이 복제할 수 없는 역사적 업적을 이뤄냈다”고 강조했다.

방탄소년단은 내년 1월 열리는 제63회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 후보에 올라있다. 한국 조지메이슨대 이규탁 교수는 “연이은 선전으로 경쟁력이 높아졌다”며 “다양성을 인정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 충분히 수상을 노려볼 만하다”고 전망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