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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무제한, 고과·보고 없는 토스 “자유 주면 영웅이 나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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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이 회사에는 없는 게 많다. 직급이 없고 인사 고과, 조직별 성과지표(KPI)도 없다. 근태 체크 없고 휴가는 무제한이며 승인 절차도 없다. 회사 정보 공유와 1억원 상당의 스톡옵션은 차별 없이 전 직원에게.

[인터뷰]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 #중앙일보 x 블라인드 설문 '재직자 행복한 기업'에 2년 연속 선정

도전도 많다. 일 많이 한다고 ‘원양어선 같다’, ‘직원들이 회사 붙박이 가구’라는 소문도 돈다. 함께 일하기 힘든 동료에게 주는 ‘스트라이크’도 있다. 삼진이면 아웃.

그런데 행복하다고 한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와 중앙일보가 공동기획한 설문에서(1만개 사 재직자 7만 명 참여) ‘재직자가 행복한 10대 기업’에 2년 연속 선정됐다.

"승부처는 조직문화"라는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 사명은 '공화국 만세'라는 뜻이다. 사진 비바리퍼블리카

"승부처는 조직문화"라는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 사명은 '공화국 만세'라는 뜻이다. 사진 비바리퍼블리카

이곳은 비바리퍼블리카. 국내 유일의 핀테크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이자, 누적 가입자 1800만의 금융 앱 ‘토스’ 운영사다. 이승건(38) 비바리퍼블리카 대표를 지난달 19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토스 사무실에서 만났다. 팀장도 보고도 없는데 일에 몰입한다는 이 회사(이하 토스)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지속 가능한지 물었다. 그는 “잘하는 기업이 아니라 위대한 기업을 만들고 싶다”며 “구성원이 노예가 아니라 공화국의 자유민이 되면 영웅이 나온다”고 답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탑 다운(top-down)이 아닌데 효율적인가.  
단기적으로는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훨씬 어렵고 큰 결정을 매우 빠르게 할 수 있게 된다. 갈수록 그 속도가 빨라진다.
결정은 누가 하나.
최종책임자(DRIㆍDirect Responsible Individual)로 지정된 실무자가 한다. CEO인 내가 ‘이건 꼭 해야 됩니다’ 해도, 실무자가 공감하지 않으면 진행이 안 되는 구조다. 난 속이 타는데. 그런데 내가 하지 말자고 했던 ‘긴급재난지원금 신청ㆍ조회’나 ‘대출 맞춤 추천’이 대박나기도 했다. 그럴 때 ‘우리 구조가 건강하구나’ 확인한다.
그럼 CEO는 뭘 하나.
내가 지시하는 건 거의 없다. 좋은 분들 모셔오는 '채용'과 구성원들을 돕는 '코칭'에 시간을 많이 쓴다.
회사 평균 연령이 높아지면 보고와 지시를 원하지 않을까.
지금도 직원 대다수가 아이들 키우는 부모들이라, 어리진 않다. 그런데 보고와 지시 문화는 임원에게도 괴로운 거다. 우리는 채용할 때부터, 잘 경청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분들을 모신다.
‘어른아이’가 아닌 ‘어른’의 직장을 만들려는 것 같다.
맞다. 토스는 구성원을 어른으로 대한다. 신뢰와 위임의 문화 속에서 역량을 펼칠 분인지를 채용 과정에서 확인하고, 이후엔 걸맞은 신뢰와 자율을 준다.
멀쩡한 어른이 한국 기업에서 일하다가 퇴행하는 걸까.
첫 직장이 토스인 신입 팀원들은 토스 문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걸 보면, 기성 기업의 조직 문화가 능동적인 사람도 의존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는 게 아닐까. 대기업에서 토스로 오신 분들은 ‘불필요한 서류작업이나 보고가 없어 매우 개운하다’고 하신다.

문화 = ‘우리는 이렇게 성공한다’

왜 ‘기업 문화’에 꽂혔나?
1ㆍ2세대 벤처 기업이 반영 못 한,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기업문화를 만든다면 훌륭한 동료를 많이 모실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팀원이 20명을 넘어선 2015년 초부터 고민했다.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느끼고, 서로 공감하고, 성장이 중심인 기업 문화가 필요했다.
기존 벤처들이 반영하지 못했다?
사무실에 맥주 갖다놓고 편의점 설치하는 건 ‘복지’이지 ‘문화’가 아니다. 조직 문화는 ‘우리는 어떻게 성공하는가’에 대한 스스로의 정의다. 그전에 하도 실패하고 망하다 보니(※토스는 비바리퍼블리카의 9번째 서비스), 장기 생존 비결을 찾게 됐다. 그 과정에서 유연성, 자율, 정보공유 같은 원칙들이 나왔다.
기업문화도 좋지만, CEO가 비즈니스에 집중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나.
맞다. 비즈니스에 집중한다. 아무리 문화가 좋아도 사업이 성공하지 못하면 영향력이 있겠나. 사업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 문화는 잘못된 것이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토스 사무실. 사진은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격상 전 촬영됐다. 사진 비바리퍼블리카.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토스 사무실. 사진은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격상 전 촬영됐다. 사진 비바리퍼블리카.

토스는 지난해 1187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 4월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했다. 계열사도 4개. 토스증권과 토스뱅크(내년 공식 출범), 토스페이먼츠(LG유플러스의 PG 계열사 인수), 보험 대리점인 토스인슈어런스다. 총 현원은 750명. 대부분 올해 입사했다.

회사가 커졌다. 의도한 기업 문화가 유지될 수 있을까.
‘도덕성과 역량 있는 분을 모셔서 최대한의 정보와 자유를 준다’는 원칙은 그대로다. 규모가 커지니 소통할 장치를 만드는 식의 변경은 있다. 상호 신뢰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업의 시간은 여기에 많이 투입돼야 한다.
투자자는 단기 실적에 관심 있지 않나. 토스도 외부 투자를 많이 받았는데. 
그래서 장기적 관점을 공유할 수 있는 투자자를 모시려고 노력했다. 훌륭한 투자자는 위대한 기업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알기 때문에, 재무나 수치보다는 거대한 변화를 이끌 수 있나, 팀이 지치지 않고 그걸 꿈꾸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더라.

“일ㆍ삶 분리가 해법 아니다”

토스에서 워라밸은 포기해야 하나
‘일과 삶의 분리’라는 지금의 워라밸 개념은 직장인의 좌절감에서 온 것 같다. 이상한 상사나 말도 안 되는 일이 내려오니까 ‘내가 회사에 괜히 정을 줬네’라며 방어막을 치는 거다. 그걸 분리할 게 아니라, 일하는 시간 자체를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계약관계라도 하루 8~9시간 하는 일이 어떻게 삶과 분리되나.
토스가 생각하는 워라밸이란.
일과 삶이 시너지를 내는 것, 내 업무량과 속도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 개인 용무가 있으면 낮에 퇴근할 수 있고, 재충전이 필요하면 몇 달 쉬어도 된다. 토스의 모든 사람에게는 ‘내가 온전히 결정하고 실행해 종결짓는 일’이 꼭 있기에, 업무 주도감이 강력하다. 주체적으로 일에 몰입하는 경험, 훌륭한 동료들과 목표를 향해 함께 달려가고 해내는 쾌감이 회사에서의 시간을 즐겁게 한다.
출산ㆍ육아ㆍ건강문제 등 일에 몰입이 어려운 시기도 있다
개인사를 제쳐놓고 일만 하라는 게 아니다. 열심히 일하면 손해 보는 듯한 분위기가 아니면 된다. 일에는 호흡을 가다듬는 기간도 포함된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은 물론이고, 근속 3년마다 1개월의 리프레시 휴가(유급)를 준다.

“인간은 원래 일을 좋아한다, 그걸 해치지 않는 게 회사의 몫”, “어떻게 하면 팀원들이 더 일하게 할까 고민한 적 없다”라고 말하는 CEO를 보고 있자니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고 말하는 강형욱 훈련사나 ‘부모가 달라져야 아이가 바뀐다’는 오은영 박사를 대하는 기분이었다.

직원들이 일을 안 하는 건 알고 보면 회사 탓인가.
경영진은 회사를 새롭게 만들 수 있는 힘과 권능이 있는 위치 아닌가.
배신당한 적은 없나? 정보를 공유했는데 타사로 유출한다든지.
있다. 상처도 되고 회의도 든다. 그래도 ‘아니야, 일부 때문에 잘 지키고 있는 수백 명의 신뢰를 저버리는 건 말이 안 돼’라고 마음을 잡는다. 그런 사람은 조직에서 튕겨내면 된다.
토스가 안 맞아서 나가는 경우도 있을 텐데.
뾰족한 지향점이 있는 기업이다. 우리와 맞는 사람, 한국에서 2만 명쯤 될까 싶다. 보물 같은 분들이라 이분들이 '번 아웃'(심리적 탈진)을 겪지 않고 잘 쉬게끔 고민한다. 매월 마지막 금요일은 ‘F5(새로고침)데이’로 전사 휴무다.
퇴사자가 준 교훈도 있나.
퇴직 면담을 통해 개선점을 배우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전에는 좋은 성과를 내려면 그걸 지향하는 문화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위해선 오히려 팀원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줘야 함을 알게 됐다.

가족 같지 않고, 프로 스포츠팀 같은 회사

비바리퍼블리카는 ‘재직자 행복’ 설문 11개 항목이 고르게 높았지만 그중에서도 ‘직장 내 유대감’과 ‘조직의 윤리 신뢰’, ‘업무중요감’은 국내 9371개 회사 중 1위였다.

블라인드 앱에서 9371개 사 재직 회원 7만2109명이 응답한 '직장인 행복 지수' 설문 조사의 항목별 1,2위.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블라인드 앱에서 9371개 사 재직 회원 7만2109명이 응답한 '직장인 행복 지수' 설문 조사의 항목별 1,2위.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일에 몰입하는데 유대감이 높은 비결은.
토스는 가족 같은 회사는 절대 아니다. 프로 스포츠팀 같다. 피, 땀, 눈물을 함께 한다. 우승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며 좌절과 희열을 나누니 동지애가 생긴다. 내가 잠시 실패해도 정당한 인정을 받는다는 안정감도 있다.
피어 프레셔(동료 간 압박)도 있다고 들었는데.  
동료를 이겨야 한다는 게 아니라 ‘이렇게 훌륭한 사람들 속에 나도 끼고 싶다’는 것에 가깝다. 나를 잡아먹는 압박이 아니라, 이겨내면 성장할 것 같은 건강한 긴장감이랄까. 고과가 없으니 불필요한 견제는 없다.
고과가 없으면 평가와 연봉 협상은 어떻게 하나.
회사 전체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 달성 정도로 반기 성과를 측정한다. 연봉은 그 사람의 업계 최고가(價)를 재산정해 그보다 살짝 높게 준다. 경제적 안정을 어느 정도 얻으면, ‘동료에게 인정받고 싶다’, ‘내 커리어의 획을 그어보겠다’는 다음 단계의 욕구로 진화하더라.
스트라이크 제도도 있는데.
업무상 부정을 저지르거나 자율을 악용해 팀에 반복적 피해를 주는 경우에 해당한다. 먼저 당사자에게 직접 문제를 제기한 후 개선할 시간을 준다. 인사팀은 직장 내 괴롭힘은 아닌지 조사하고, 직원 위원회의 점검도 거친다. 3회 받아 퇴사한 사례는 토스 창립 이래 한 손가락에 꼽는다. 
나가라고 하면 순순히 나가나.
채용 과정에서부터 우리의 사상을 충분히 이해시키기도 했고, 업계의 탑 플레이어들이기도 하니까 그럼 더 적합한 조직을 찾아가겠다는 식이 대부분이다.

금융 전문 플랫폼으로

금융은 규제가 강하다. 정보 공유와 소통을 강조하는 토스의 문화와 맞을까.
규제가 촘촘한 금융 분야에서 서비스를 키우면 다양한 문제를 만나는데, 정보공유와 소통이 답이더라. 회사 상황과 당면 과제를 공개하면 다들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해결책이 나온다. 그래서 토스의 혁신이 가능했다.
네이버ㆍ카카오 같은 대형 플랫폼과 경쟁해야 하는데.
중국 시장을 보면 메신저 기반의 위챗에서는 소비자들이 간편한 송금ㆍ결제를 하고, 큰돈이 오가는 저축ㆍ보험ㆍ자산관리 등은 전문성 있는 알리페이를 주로 이용한다. 한국에서 금융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플랫폼은 토스뿐이다.

이승건은 어떤 사람

토스의 양육자, 혹은 조물주 같다.
나는 처음 깃발을 꽂았을 뿐이고, 이 문화를 이끄는 건 구성원이다. 회사에 문화적 변곡점이 생길 때마다 등장해서 해답을 제시하는 영웅 같은 동료들이 있다. 이분들이 문화의 수준을 올려왔다.
오전 9시의 토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 11시 전후로 출근한다고 한다. 사무실 가운데 놓인 등받이 없는 파란 의자가 이승건 대표의 자리다. 사진 심서현 기자

오전 9시의 토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 11시 전후로 출근한다고 한다. 사무실 가운데 놓인 등받이 없는 파란 의자가 이승건 대표의 자리다. 사진 심서현 기자

이승건 개인의 건강과 도덕성을 위해선 어떤 노력을 하나.
고등한 리더십은 동료들이 편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구조인가에 달렸다. 아픈 비판을 할 수 있는지, 그걸 정말 경청하는지. 저희는 분명히 얘기할 수 있는 조직이다. 그래서 나도 여기까지 성장했다.
누가 그런 비판을 하나.
모두가 (한다). 믿기 어렵겠지만 정말이다. 업무 메신저에서 DM(다이렉트 메시지)을 보내거나, 자리에 와서 ‘승건님 잠깐 만나요’라고 한다. 그러면 ‘아, 혼나는 건가’ 생각한다. 가면 중요한 얘기를 해주신다.

인터뷰 말미에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성장할 때 부모님이 어떠셨나.
과분한 사랑을 주셨다. 사람이 애정과 신뢰를 받을 때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를 어머니께 배웠다. ‘안 될 거야’라는 냉소적 시선은 틀렸다는 것을…. 저는 게으른 아이였는데 게으르게 살면 어머니의 사랑을 배신하는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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